클래식, 월드뮤직, 힙합 등 음악 분야는 다양하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세계의 날’로 정한 분야는 단 하나 재즈이다. 유네스코는 왜 재즈를 기리기 위해 ‘세계 재즈의 날’을 제정했을까. 4월 30일 ‘세계 재즈의 날’을 맞아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본다. |
매해 4월 30일은 ‘세계 재즈의 날’이다. 2011년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했다. 유네스코는 “국적과 문화 차이를 넘어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소통을 증진하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원동력으로 재즈가 지니는 가치를 전하고자” 세계 재즈의 날을 정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달리 말하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평화와 화합, 자유와 공동의 번영이라는 이념과 재즈가 지닌 본질과 가치가 연결된다는 뜻이다.
수많은 음악 장르 중 유네스코는 왜 재즈를 콕 집었을까. 음악이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수단임은 분명하다. 음악을 통해 내면을 치유할 수 있고 평화로울 수 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의 이런 특성을 재즈가 독점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음악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오히려 클래식은 역사가 깊고 힙합은 ‘핫’ 하며 월드뮤직은 지역적 정서를 담고 있다. 재즈의 역사는 100년이 안 되었고, 대중적이지도 않으며 토착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재즈의 해’가 제정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문화 간 화해의 해’(International Year for the Rapprochement of Cultures) 권고안을 공포했고 UN 총회에서 이를 의결해 2010년을 ‘세계 문화 간 화해의 해’로 지정했다. ‘세계 문화 간 화해의 해’는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문화·문명·사람 간 화합을 증진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을 다시금 강조함으로써 문명 간 대화를 활성화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세계 재즈의 해’는 바로 ‘세계 문화 간 화해의 해’의 성과를 지속시키기 위한 후속 조치의 성격이다. 특히 모든 문화와 문명은 서로로부터 파생되고 기인하므로, 다양성은 인류를 위한 풍요로움과 혁신의 원천을 구성한다는 개념을 강화시키기 위한 결정이다.
여러 세대를 거쳐 소통의 매개체로 강력하게 자리 잡은 음악이 다른 문화의 음악들 사이에서 융합하고 조화로운 형식을 창조하고 또 다른 수많은 문화와 소통할 때, 문화 간 화해는 완성된다고 유네스코는 판단했다. 그리고 재즈는 이 과정의 완벽한 사례이다.
재즈는 미국 남부에서 유래했지만, 아프리카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유럽 모두의 음악적 전통을 병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재즈는 전세계를 가로지르며 진화했고, 다른 나라와 지역의 음악들로부터 최고의 것을 차용해 오며 그 자신을 국제적인 예술의 형식으로 만들어왔다.
재즈는 수많은 언어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인종, 지역, 종교, 민족을 넘나들며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아랍과 서방 국가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있는 재즈 그룹 ‘Massar Egbari’의 사례가 그 예이다. 이집트의 젊은 음악가로 구성된 이 그룹은 동양음악과 록, 재즈, 블루스를 넘나든다. 이 그룹은 자신들의 콘서트에 서방 음악가를 초청해 합동 연주를 하는 방식으로 ‘문화 간 대화의 수단’으로써 음악의 유용함을 증명하고 있다.
재즈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음악이다. 각 악기 연주자들 간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대화가 연주의 근간을 이룬다. 정해진 악보에 얽매이기보다 변화가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장르와 교류하거나 협업이 손쉽게 이뤄진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세계 재즈의 날’이 사람들의 화합, 대화와 협력 증진의 도구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유네스코는 ‘세계 재즈의 날’을 정하며 단순히 이름 짓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재즈를 통해 유네스코가 하려는 일을 알리고 실질적 협력과 소통이 일도록 돕고 있다.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을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한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허비 행콕은 소통, 문화, 그리고 예술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려 노력해온 인물이며,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허비 행콕에게 문화 간의 상호이해를 도와 청년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세계적인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부탁했다. 허비 행콕은 이를 위해 공연뿐 아니라 청소년들을 위한 재즈 클래스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 재즈의 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즈를 느끼고, 재즈가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지고, 이를 통해 유네스코가 원하는 화합의 정신을 체득해 가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이를 위해 ‘세계 재즈의 날’에 매해 주관 도시를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유네스코의 공식 초청을 받은 재즈 뮤지션, 재즈클럽, 재즈협회 등이 참여하고, 모든 연주 영상은 생중계 이후에
유네스코 세계 재즈의 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게재된다. 재즈가 태동한 뉴올리언즈가 첫 번째 주관도시였고, 터키 이스탄불이 그 두 번째, 그리고 3회를 맞는 올해는 일본의 오사카이다.
물론 주관도시에서만 공연과 재즈교실 등의 프로그램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유네스코 국가위원회에서도 나라별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국내에서도 오사카의 공식행사에 맞춰 기념콘서트와 JAM파티 등이 서울 대학로 일원에서 열린다. 이외에도 유네스한국위원회가 위촉한 ‘세계 재즈의 날 홍보대사’인 나윤선 씨의 보컬 워크숍 등이 준비되고 있다. 4월 30일 따사로운 봄날의 기운을 만끽하며 재즈의 향기에 취해보길 권한다. 재즈 안에서 평화와 화합이 함께 하길.
■ 2013년 ‘세계 재즈의 날’ 주관 도시였던 이스탄불에서 열린 축하 공연 모습. ‘세계 재즈의 날’ 기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