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만난 박경리 작가의 발자취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인 원주는 박경리 작가가 한국 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추앙받는 『토지』를 완성한 곳이다. 특히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변모한, 작가가 18년간 글을 쓰던 옛집은 내딛는 걸음마다 대문호의 작품 세계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문학의 공간이다.
“원래의 대지, 본질적인 땅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원주라는 이름 그 자체를 나는 사랑했는지 모른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박경리 작가는 통영 태생이면서도 원주와 각별한 연을 맺고 있었다. 그는 무려 25년이 걸린 『토지』 집필 기간 중 18년 동안을 이곳에서 머물면서 소설의 마지막 4부와 5부를 완성했다. 원주에서 『토지』를 탈고한 박경리 작가는 1996년 비영리 문화예술재단인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했고, 1999년 토지문화관을 개관해 입주 작가들을 돌보며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 2008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토지문화재단은 국내외 문인과 예술인들에게 창작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박경리 문학상’을 제정해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인간애를 잃지 않는 작가정신을 지닌 소설가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처럼 대작가와 작품을 기리고 후대 예술가를 지원하는 노력들이 어우러진 끝에 원주시는 2019년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지정됐다.
박경리 작가가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낸 집은 『토지』를 테마로 박경리 선생의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옛집과 집필실은 그대로 남아있고, 집 주변은 『토지』의 배경지를 주제로 꾸민 3개의 테마공원으로 꾸며졌다. 이들 공원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 들녘을 연상시키는 ‘평사리 마당’, 아역 주인공인 홍이에게서 이름을 따온 ‘홍이 동산’, 그리고 평사리에서 신작로와 철길을 거쳐 용정으로 떠나가던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 ‘용두레벌’을 각각 주제로 삼았다.
문학공원 안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작가의 발자취와 작품 세계를 톺아보기 좋은 ‘박경리 문학의 집’이다. 그저 층별 전시를 찬찬히 둘러봐도 좋지만, 문화 해설을 신청해 들으면서 둘러보면 거대한 산맥 같은 문학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흔적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박경리 선생님의 유품이 남아있는 2층은 선생님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공간이에요. 쓰시던 책상을 그대로 옮겨 놓아 육필 원고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어요. 1년에 만 장의 원고지를 쓰셨는데, 출판사에 넘겨진 그 원고를 쌓으면 4미터가 넘는 분량이랍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보는 전시가 흥미로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육필 원고지 옆에 놓인 몽블랑 만년필이 눈길을 끈다. 박경리 작가의 유일한 사치품이었다는데, 얼마나 꾹꾹 눌러 오래 썼는지 투명테이프로 칭칭 감은 모양새다. 농사를 지을 때 쓰던 호미와 손수 옷을 지을 때 썼던 반짇고리, 직접 조각한 소녀 조각상 등 작가가 남긴 유품을 보며 작가의 생활을 짐작해 본다.
해설사를 따라 박경리 작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손수 깐 돌길을 지나자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원래 작가의 텃밭이었던 이곳에는 작가와 작가가 좋아했던 고양이 동상이 서 있다. 집 안에는 후배 작가들이 찾아오면 내어주던 사랑방과 책이 가득한 서재, 커피를 즐기던 소파와 부엌 식기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생전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는 집필실에는 스탠드와 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는 이곳에서 오직 원고지와 펜에 기대어 『토지』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오랜 세월 글을 쓰게 했을까.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박경리 문학공원을 나서는 길에 만난 ‘박경리 문장전’이라는 야외 전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왜 쓰는가 하는 물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과 통합니다. 그것은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 물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합니다.”
원주 여행자 노트
한지테마파크 | 조선시대부터 한지로 유명했던 원주에서 한지를 테마로 한 다양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강원감영 | 조선시대 강원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관아로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옛 건물이 관전 포인트다.
뮤지엄 산 |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전원형 미술관으로 자연속에서 전시를 감상하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글, 사진 우지경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