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차질을 빚은 분야 중 하나인 동시에 가장 큰 변화를 이루어 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2020년에 겪었던 혼란과 고통을 거울삼아 바이러스로 멈춰서는 교육이 아닌,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변화가 교육계 전체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교육권을 함께 지켜 나가려는 연대의 정신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뒤로 미루지 않는 정책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기회의 가격표
유네스코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세계 교육 현황 인터랙티브 지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1년이 되던 1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는 여전히 8억 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데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는 지구상 모든 학생의 절반이 넘는 숫자로, 31개 국가에서는 여전히 학교가 완전히 문을 닫았고 48개 국가에서는 평시보다 제한된 형태의 대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나마 지금의 상태는 전국 단위 휴교령이 내려진 나라가 무려 190개에 달했던 지난해 4월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숫자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아직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기에 더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회복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의 미래가 열린 지금이야말로 교육계가 해묵은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모두를 위한 교육’을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이유에서다. 2030년까지 목표로 한 교육 분야 지속가능발전목표(SDG4)의 달성 현황이 목표치를 밑돌고 있는 상황을 주시해 온 유네스코 역시, 코로나19가 각국의 교육 정책과 예산 집행을 지금보다 더 후퇴시키는 것을 막고 단순한 원상 회복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 물러선다면 남은 10년간 SDG4를 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표 지점이 원상 회복에 있든 새로운 출발에 있든, 교육 당국들은 우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현재까지 얼마만큼의 교육 차질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학습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어느 정도의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조사를 벌여 왔다. ‘청구서’의 금액을 확인해야 그에 맞는 수입 및 지출 계획을 다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취합된 결과에는 그간의 교육 공백으로 학생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 왔는지, 방역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떠안긴 교육 부재의 대가가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국가에서 학교가 완전히 폐쇄된 기간은 평균 3.5개월(14주) 정도다. 이는 전국 단위 휴교령이 내려진 기간을 취합한 것으로, 지자체 단위에서 별도로 취한 학교 폐쇄 조치를 포함할 경우 이 기간은 평균 5.5개월(22주)까지 늘어난다. 이처럼 학교 대신 집에서, 혹은 그것마저 여의치가 않아 다른 어딘가에서 배회하며 학생들이 잃어버린 교육의 기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그 기회의 실질적인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는 OECD가 지난해 9월 발표한 「학습 손실의 경제적 충격」 보고서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촉발된 장기간의 교육 공백은 21세기가 끝나는 향후 80년 동안 세계 주요 국가에서 약 1.5%의 GDP 감소를 야기할 것으로 예측했다. 교육 공백이 학업 성취도 저하를 가져오고, 이것이 장기적이며 지속적으로 개개인의 임금 하락과 생산성 저하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다. 이 수치를 주요 국가의 2019년도 GDP에 대입해 보면 미국은 약 14조2000억 달러(약 1경 5740조원), 우리나라는 약 1조5000억 달러(약 1656조 원)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게다가 이 수치는 각국이 한 학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학업 손실을 기록한다는 가정하에 나온 것인데, 앞서 소개한 유네스코의 발표대로 이미 전 세계의 평균 학교 폐쇄 기간(22주)은 한 학년의 3분의 2를 넘어서고 있다.
평등하지 않은 교육 손실의 무게
유네스코는 교육 손실 기간과 그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 손실의 정도가 ‘평균치’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우려하고 있다. 그간 여러 국제기구와 언론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양상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계층별, 인종별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 기회의 상실에 따른 피해 역시 취약하고 소외된 계층일수록 훨씬 심각하게 입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OECD의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지난해 학업 손실을 입은 주요 국가의 초·중·고 학생들의 소득이 평생 동안 평균 3%가량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러한 소득 감소가 주는 충격은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등교 중지 기간 동안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옆에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원격 수업에 참여하며 학교와 달리 문을 닫지 않은 학원에서 배움을 지속해 온 아이들과, 집에 홀로 남겨져 학교가 문을 열었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 끼니 걱정부터 해야하는 아이들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격차는 ‘3%’라는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K-방역’의 성과와 함께 교육 분야에서도 잘 발달된 원격 교육 인프라를 활용해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대처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사IN』도 지난 1월 17일자 기사에서 “코로나19가 발행한 장기 할부 명세서를 받아든 집단은 가난하고 취약한 아이들”이라며, 학생들의 교육 손실을 그저 ‘평균값’으로 바라보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교육 공백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살펴볼 때,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고, 교육 공백으로 인해 가난하고 취약한 아이들이 “더 큰 충격”을 받는 동시에 “더 낮은 복원 가능성”을 갖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코로나19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떠안게 되므로 이를 보완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네스코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으로 최소 2400만 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계층의 회복 탄력성을 높일 적극적인 대책이 없이는 인류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넘어 불평등과 빈곤, 사회적 양극화를 줄일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에 스테파니아 지아니니(Stefania Giannini) 유네스코 교육 사무총장보는 1월 29일자 유네스코 홈페이지 기고문을 통해 전 세계가 포용과 회복, 그리고 전환에 초점을 맞춘 진정성 있는 교육 복구 패키지를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지아니니 사무총장보는 “가장 먼저 학교가 안전하고 포용적으로 문을 여는 것이 시급하며 (중략) 특히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각 학교가 ▲다시 자녀를 학교로 보내지 못할 수도 있는 가정을 파악해 필요한 재정 지원을 하고 ▲이들 학생이 그간 뒤쳐진 학업 성취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필요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학교에서 적절한 보건 및 영양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지금, 최대한의 지원을
계층 간의 교육 손실 격차를 줄이는 것과 더불어, 각국이 교육 분야의 정책 우선 순위를 뒤로 미루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을 대비하는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다. 포용과 회복, 그리고 전환을 위한 교육 복구 패키지를 마련하는 것도, 안전하며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 꾸준한 정책적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충격을 받은 저소득 국가들은 그 손실 규모가 당장 눈에 띄지는 않는 교육 분야 지출을 재정 지출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미루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해 발간한 「코로나19 상황에서 교육 및 훈련에 대한 재정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이 코로나19 피해 회복을 위해 투입한 구호 자금의 0.78%만이 교육 분야로 들어갔으며,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교육 지원 활동도 1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 불평등 해소에 중점을 두고 교육 재정을 운용하는 국가도 5개 중 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이라는 시한을 약속해 둔 상황에서, 지금 교육 투자를 뒤로 미뤄두면 그 뒤 몇 년간의 교육 지출 금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해 9월에 발간한 정책보고서 「SDG4 달성을 위한 지출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행동」에는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현재 필요한 지출을 뒤로 미룸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더 큰 재정적·정책적 어려움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2015년 당시 SDG4 달성을 위해 중-저소득 국가에 필요한 교육 재정은 연간 3400억 달러였지만,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해당 국가들이 SDG4 진척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남은 10년 동안 이들 국가에 필요한 교육 재원 규모가 연간 5040억 달러로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교육 재정 부족분의 규모도 연간 390억 달러에서 1480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리고 지난해에 닥친 코로나19 사태는 여기서 추가적으로 약 335억 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들게 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드리 아줄레(Audrey Azoulay)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지난해 9월 8일 각국 재무장관들이 참석한 유엔 회의에서 “지구촌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교육 투자의 우선 순위를 높이는 데 주저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선진국이 지구 전체의 교육 위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할 것을 요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피해 회복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교육’을 위해 지구촌 전체의 교육을 함께 챙겨야 한다는 호소는 일견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유네스코는 ‘바로, 지금, 최대한의 지원’을 교육에 투입하는 것이야말로 코로나19가 추가적으로 야기한 비용을 최대 75%까지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코로나19로 추가 재원이 필요하게 될 분야가 학습 격차 만회(remediation), 학업 중도 포기 방지(re-enrolment), 학업 중도 포기자의 재교육(second chance education) 등인데,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교육 손실을 입은 학생들의 학습 격차를 줄임으로써 학습자의 중도 포기율을 낮출수 있고, 중도 포기자가 줄어들수록 재교육에 드는 비용 역시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보고서에서 이러한 학습의 연속성을 유지해 주기 위한 구제책을 내놓은 영국과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사례를 소개하며, 교육 지출을 뒤로 미루지 않는 것이 이 위기로부터 더 일찍, 더 적은 비용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모두의 힘으로 교문을 활짝 열 때
현재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앞다퉈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며 자국 경제가 더 깊은 침체의 터널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다수의 시민들 역시 이 비용을 기업의 도산을 막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며, 당장 먹을 것조차 구할 돈이 없는 이들을 위해 당연히 써야 할 것으로 여기고 그러한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지원이 더 늦어질수록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고통의 크기도 더 커질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유네스코는 교육이야말로 지원이 늦을수록 더 큰 고통과 부담이 되어 향후 세대를 괴롭힐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각국이 정책 집행 항목의 우선 순위에 교육을 놓고 그러한 지원이 교육 중단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은 취약 계층의 교육권 회복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학교에서 미처 꽃피우지 못한 미래 세대의 잠재력은 현 세대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의 눈에는 얼마나 큰 비용으로 여겨지고 있을까? 그리고 교육은 경제 회복과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와 항구적인 지구촌의 평화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을까? “우리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에게 투자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이 더 회복 탄력적이고 친환경적이며 포용적인 방향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스테파니아 지아니니 유네스코 교육 사무총장보의 말처럼, 유네스코는 이 엄중한 시기에 교육 분야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야말로 유엔이 경고한 ‘세대적 재앙’(generational catastrophe)을 극복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교육이 약속할 장기적 회복은, 교육의 공백을 더 크게 느꼈고 가장 먼저 학교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교문을 활짝 열어주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