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사대화 한국 교직원 오프라인 초청 프로그램
2001년부터 20년간 매년 한·일 교사들을 서로 초청해 양국 간 대화와 소통의 다리를 놓아 온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취소됐다. 기세등등한 바이러스 앞에서 온라인으로나마 교류의 갈증을 풀어오던 양국 교사들은 지난 1월, 마침내 일본에서 다시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소설 『설국(雪国)』의 첫 문장이다. 2020년 1월,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 20년의 긴 터널이 끝나면 무엇이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던 차였다. 눈의 나라는 아니겠지만, 더욱 돈독해진 양국의 우의, 지속가능하고 새로운 방식의 교사 교류 등이 이 프로그램 포스트 20년의 풍경이 아닐까 기대했다. 그런데 막 빠져 나온 터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코로나19라는 이름의 감염병이었다. 터널 끝의 세계에 대한 설렘을 멋쩍게 만드는 반전이자, 모두를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전격적인 기습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 후 3년 이상 지속되면서 한일교사대화 대면 교류는 중단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나 잊을만 하면 재발하던 한·일 간 외교적 긴장 관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어졌던 한일교사대화가 아니었던가. 2001년 이래 단 한번도 거르는 법이 없던 한국 교사들의 일본 방문이 2020년 2월 무산됐고, 그해 여름에는 일본 교사들의 한국 방문마저 취소됐다. 고립과 단절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그 사이 감염자 증가세는 꺾일 줄 모르고 각종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코로나19는 적수가 없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의 인터넷 용어)’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의 전통과 명맥을 완전히 단절시키지는 못했다. 방문 교류가 좌절된 현실은 생각에만 머물던 일들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의 지난 20년을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2020년 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센터(ACCU)와 앞서 방일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여러 교직원들의 도움을 받고 각종 자료를 모아 『유네스코 한일교사대화 20년사』를 발간했고, 같은 해 교육학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프로그램의 효과성 연구도 실시했다.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의 주관기관인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ACCU는 상호 방문이 불가능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온라인 방식의 교류도 추진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최로 2020년 가을부터 3년 동안 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전환해 실시됐고, 2021년과 2022년에는 한·일 초·중고생 온라인 공동수업이 진행됐다. ACCU도 2020년 가을 대면 행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한·일 양국 선생님들을 초청해 한·일 교원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2021년과 2022년 초에는 한국 교직원 온라인 초청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하지만 온라인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될수록 비대면 활동에 대한 아쉬움과 대면 활동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데도 가지 못하는 현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고 야속해서였을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 1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엿새 동안 일본에서 열린 한국 교직원 오프라인 초청 프로그램은 매우 뜻깊다. 상호 방문 프로그램의 재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한경구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직원 3명과 국내 교사 9명 등 총 12명이 참가한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학교 방문과 교사 대화 일정이 생략됐지만, 참가자들은 코로나19 시기 온라인 교류의 성과를 공유하고 코로나19 이후의 교류에 대해 논의했다. 시즈오카현의 미시마시와 가나가와현 하코네마치의 지질 명소 방문을 통해 지질 공원 연계학습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시간도 가졌다. 보호지역에 초점을 맞춰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학교 기관 방문, 교사 간의 토의 못지 않게 프로그램의 밀도와 심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였다. 상호 토의 시간에는 지역 소멸과 그에 따른 학교 통합이라는 현실을 양국이 공동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각자의 활동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국 교사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지혜를 모으고 서로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다.
올 여름이면 일본 선생님들이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무척 기대된다. 코로나19가 공식적으로 종식되지 않은 탓에 코로나19 발생 전보다 초청 규모가 작아졌고 학교 현장 방문 등에서 어느 정도 제약은 불가피하겠지만, 한일교사대화 교사 방문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재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학생이나 시민이 아닌, ‘교사 간의 교류’다. 교사는 지식과 학생, 사회와 학생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양국을 상호 방문한 2000여 명의 교사들은 지난 20년 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얻은 경험과 역량을 학생들을 위한 보다 좋은 수업을 제공하는 데 활용해 왔다. 특히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 참가를 계기로 유네스코학교 사업에 더 큰 열정을 갖게 됐다고 말한 한국 교사들이 적지 않다. 방문단의 일원인 동료 한국 교사나 일본 교사들을 만나면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음을 확인하고 연대의 끈을 실감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번 한국 교사들의 일본 방문과 올 여름의 일본 교사 한국 방문을 기점으로 유네스코학교의 활성화 측면에서도 크게 이바지해왔던 한일교사대화 방문 프로그램의 새로운 20년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다.
신종범 네트워크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