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 후기
2017년 11월 13일 유네스코 제39차 총회에서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이 채택된 것을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 시 제기되는 국가 간, 지역 간, 계층 간, 공동체 간, 성(性) 간 불평등과 취약성을 극복하고 이해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7월 5일 유네스코 회관에서 개최되었다. 필자는 윤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의 국제법적 함의와 국내 이행의 가능성에 관한 발표를 요청 받고 기쁜 마음으로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개회식에 이어 첫 발표는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위원인 한양대학교 철학과 이상욱 교수가 ‘유네스코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의 윤리적 함의 및 관련 국제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이 단순히 기후변화라는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한 추상적 원칙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취약 집단이나 기술 이전 등을 포함하여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사안들에서 구체적 행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들며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록 각국의 이견 때문에 실제파급 효과는 미지수지만, 해당 선언이 사전주의적 국제 연대의 도덕적 당위성이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결론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필자는 선언에 포함된 윤리원칙 중 국제법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지, 그러한 국제법적 원칙이 국내에서 어떻게 이행될 수 있는지를 발표했다. 처음 발표를 준비할 때는 윤리원칙이 법 원칙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초 국경적 피해방지의무, 사전주의 원칙, 지속가능발전,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 연대 원칙 등 국제법학자로서 친숙한 원칙들이 포함되어 있어 놀랍고 반가웠다. 필자는 이러한 내용이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국내에서 이행되기 위해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국가별 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충실히 달성해야 하고,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 기본 로드맵을 수정·보완할 때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청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이선경교수는 ‘교육 측면에서 본 유네스코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의 의미, 국내 현황 및 대응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 교육이 과학적, 기술적 측면에 치중하면서 제한적인 개인적 실천만 강조하는 지식 전달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여기서 윤리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학교육은 더는 가치 중립적일 수 없으며,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과학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혁적 학습을 통해 기후변화 및 기후변화 윤리에 대해 비판적 소양을 갖춘 생태 시민이 더 많아지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통해 지구의 지속가능성도 커지리라는 것이 이 교수의 결론이었다.
3인의 발표에 이어 정부 관계자, 연구자,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바로 미래 세대를 대표하는 학생들의 발언이었다. 학생들은 기후변화가 현재세대가 직면한 문제이지만, 정작 그 영향을 더 많이 받고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은 청년 세대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보다 능동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하며, 교육을 통한 개인의 의식 변화가 한 집단의 거시적 변화로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내비쳤다.
기성세대로서, 학생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속가능발전이야말로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1) 아니던가. 기성세대가 기존의 생활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고 기후변화에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청년 세대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결국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이 때문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고, 우리 각자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유네스코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은 현세대가 환경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청년세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이며, 지금의 우리에게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선언이다.
청년들의 지적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동시에 이런 청년들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가 반드시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각자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고, 그러한 노력이 결과를 맺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의 도움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기후변화 문제 대응을 위해 교육, 과학, 문화 측면에서 많은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1) 1987년에 발표된 유엔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브룬트란트 보고서)에 명시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정의.
심상민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