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관이 만난 사람: 서정호 국가기록원 기록연구사
유네스코에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기록유산 보존과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2004년 제정된 ‘유네스코 직지상’이 있다. 또한 한국은 유네스코와 함께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의 기록유산 보호 활동에 앞장서 온 기록유산 보존에 관한 선도 국가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유네스코 본부 기록유산팀에 파견돼 이러한 활동에 두루 참여해 오고 있는 국가기록원의 서정호 기록연구사를 만나 보았다.
안녕하세요. 기록관리 전문가로서 유네스코 기록유산팀에서 일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유네스코 사무국에서 근무하게 되셨는지요?
국내에서 기록물 수집·관리를 담당하고 국제적으로 세계기록관리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Archives, ICA) 등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행정안전부가 공고한 유네스코 파견직에 합격해 유네스코 사무국에서 근무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기록유산 분야에서 한국이 독보적으로 많은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담당하는 업무도 그 연장선일까요? 새롭게 만들어진 기록유산팀에서 추진중인 사업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는 국가기록원과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1997년 등재)을 비롯,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기록문화 강국입니다. 그간 국가기록원은 국제기구 활동과 국제 전시회 및 회의 개최, 개발도상국을 위한 기록관리 연수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기록문화 정신과 그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려 왔습니다. 국가기록원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저는 유네스코 본부의 기록유산팀(Documentary Heritage Unit)에서 국제기록유산센터 설립과 운영 관련 지원, 오는 9월 예정된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개최 준비, 세계기록유산 등재 제도 개선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사라 여쭤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위안부 기록물(‘Voices of the Comfort Women’) 등재 보류 이후 기록유산 등재 제도 개선 논의는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지 궁금합니다.
국가기록원에서 과거사기록물 수집을 담당하면서 기록물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제강점기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물의 등재가 보류되고있는 현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2017년 유네스코는 위안부 기록물 등재 보류 후, 국제자문위원회 권고사항을 근거로 해당 기록물의 등재를 한-일간의 대화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지속적인 대화 회피로 한-일간 논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유네스코는 기록유산 사업 전반에 대한 메커니즘을 개선하고자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의 목적은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기록물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여러 기록물이 조속히 등재되어 후대에 온전히 전달되고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마중물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의 근무가 거의 2년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 업무를 직접 겪으며 기대와 달랐던, 혹은 새롭게 느끼게 된 부분이 있으신지요?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제가 느낀 지금의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기록유산을 보호하겠다는 본래 목적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업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가운데 전반적으로 운영 시스템이 미흡했고, 기록유산 보호보다는 목록 등재와 홍보성 사업에 집중된 것도 안타깝습니다. 정치적 문제로 인한 회원국 간 갈등으로 사업의 미래도 불안정하고, 해당 분야 국제 전문가와 사무국 간 협업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가까이 운영되면서 쌓인 국제적 인지도와 지역적·세계적 네트워크 등은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회원국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사업인 만큼, 현재 논의 중인 기록유산 사업 개편을 잘 마무리하고, 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제도로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기록유산 분야에서 한국의 지난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당대 정치, 문화 등 생활상이 잘 담겨 있고 기록의 객관성 및 공정성이 인정된 세계적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기록문화는 세계적으로 우수하며, 해당 분야에서 한국이 펼친 사업도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기록은 국가의 근간이다”라고 역설한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기록은 한 민족의 정신이자 국가를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향후 한국이 우수한 기록문화 및 그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산업 활성화, 기록의 보편적 접근 보장 및 지식정보 사회 실현, 남북 공동 등재 유산 발굴을 통한 한반도 평화 기여 등 기록을 활용한 여러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길 희망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지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
서정호 기록연구사는 국가기록원에서 국제협력 및 해외기록물 수집·관리 업무 등을 담당했으며, 현재 유네스코 사무국 기록유산팀에서 파견전문가로 근무하고 있다. 취미로 검도와 수영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