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식 아나바다 운동으로 기후변화 극복합니다”
태국은 이웃한 동남아시아권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 여건이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태국이 이웃나라들보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 중 하나로 선정됐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태국은 역내 국가 중 가장 선진화된 기후변화 대응정책을 구비하고 있으나, 실제로 미얀마, 방글라데시와 더불어 ‘2011년 세계에서 기후위기지수(CRI:Climate Risk Index)가 가장 높은 나라 10개국’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여행 책자 등을 통해 태국은 우기와 건기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한 아열대성 기후를 지닌 대표적 국가로 소개되었으나, 근래에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건기 중 홍수 발생과 이로 인한 예기치 못한 인적, 물적 피해로 태국 중남부지역이 고통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 50년 만에 찾아온 홍수로 약 420명이 손 쓸 틈도 없이 재해의 희생양이 된 안타까운 소식은 태국이 더 이상 기후변화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 주도한 향후 50년 내지 100년 뒤의 기후변화 시뮬레이션 결과는 더욱 염려스럽다. 현재의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수도 방콕을 포함하는 태국 중부 지역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태국 정부는 일찍부터 민관협력 차원에서 수자원 보호, 재생가능에너지 이용 등을 골자로 하는 대응정책 수립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 분야에서 외국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받아들이는데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2005년을 전후로 해외 펀딩의 도움을 통해 기후변화교육 실천을 장려해왔다. 이와 함께 국제기구 등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후변화교육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번 호에서 소개하는 태국의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 사례 또한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방콕 시내에 위치한 방콕 기독 중고등학교(BCC:Bangkok Christian College)는 전교생이 약 60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 학교이며, 해외 펀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학교의 영어 주임교사인 윌라이완 인시(Wilaiwan Insee·60) 씨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많은 영문 자료들이 태국어로 적절히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고 있음을 깨닫고 기후변화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가 위치해 있는 방콕 중심가는 중상류층 거주민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역 주민들이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이를 태울 때 나오는 유독가스로 인해 공기가 급격히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는 재활용한다면 충분히 활용 가능한 물건들도 많았는데 말이죠.”
인시 씨는 영어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학생들과 함께 직접 학교 주변에 버려진 폐품들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과 비슷한 ‘5R+C’(Reject, Reduce, Reuse, Repair, Recycle, and Cultivate: 비닐 사용을 ‘거부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쓸 수 있는 물건은 ‘다시 쓰고’, 고장 난 물건은 ‘고쳐 쓰고’, 생활 용품은 ‘재활용하고’, 우리 스스로 기후변화 극복의지를 ‘길러나가자’) 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학생들은 물론 학교 당국 또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5R+C’를 첫 시작으로 교내의 불필요한 전기 사용 절약, 폐품 재활용 방과후 활동 등을 하나씩 더해나갔더니 학부모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었습니다.”
인시 씨는 이 모든 활동을 ‘환경지킴이 캠페인’(BCC Eco Ranger Campaign)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해 관리했고, 2013년에는 학교 정규 활동의 일환으로 확대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생들이 학교 주변 상가와 거주지역을 돌면서 다양한 환경보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던 지역 주민들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는 물론 지역 사회의 쓰레기 배출량이 감소했고, 학교 바자회 등을 통해 소개된 플라스틱 패트병 활용품 등 재활용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 또한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교내 전기사용량이 전년 대비 15%나 감소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플라스틱 제품 소비를 줄이고 이를 적절히 재활용하기만 해도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을 없앨 수 있어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경험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에요. 앞으로 제가 가르친 학생들 스스로 기후변화 대응활동을 이끌어 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인시 씨는 앞으로도 학생과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재활용품 장터(Hello, Market)와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운동(Say No Plastic)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앞으로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기후변화교육 분야에서 계속 협력할 수 있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
이동현 과학팀
참여 학생 한 마디 / 나팟 쿨루차코른(Napat Kulruchakorn), 방콕 기독 중고등학교 9학년(중3)
“배운 것 나누고 실천하는 게 지구온난화 막는 첫걸음”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저나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모두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 실시한 ‘BCC Eco’처럼 실제 생활과 연계해 직접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아요. 보통의 캠페인처럼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통해 피부로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BCC Eco는 효과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 동생과 다른 주변 사람들이 기후변화 대응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가 배운 내용을 다 함께 공유하고 학교 바깥에서도 항상 실천하려고 합니다. 저의 이런 노력이 바로 에너지 사용과 효율적인 자원 이용을 통해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해요.” ■
‘동작 그만! 기후변화’… 아시아 기상 지키는 RICE 프로젝트 지구촌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 등 심각한 재해를 입으면서도 무지와 가난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Asian RICE Project)가 지구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현상에 취약한 아시아 개발도상국이 스스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교육 및 기술을 지원하는 활동이다. 올해부터 한위는 이 프로젝트를 ‘유네스코 브릿지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로 개편, 시행할 예정이다. 그간 펼쳐온 아시아 기후변화교육 프로젝트 중 우수 사례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RICE란? : ‘Regional Initiative for Climate change Education’의 약자로 ‘지역주도적 기후 변화 교육’을 의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