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세계기념일
5월 3일 세계 언론 자유의 날 5월 16일 세계 빛의 날 5월 21일 발전과 대화를 위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 5월 27일~6월 2일 세계 문화예술교육주간
세상을 보는 창, 얼마나 맑고 깨끗할까
미디어 세상은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다. 휴대전화기에 속속 뜨는 뉴스를 보며 우리는 쉽게 “세상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는 종종 놓치곤 한다. 우리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미디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어떻게 ‘걸러내야’ 할까. 지난 5년간의 미디어 환경을 면밀하게 분석한 유네스코의 보고서 안에 그 답이 있다. 진화하는 미디어, 헷갈리는 우리 “페이스북은 미디어가 아니라 기술기업일 뿐이다.” 지난 4월 11일, 마크 저커버그 […]
부여, 망국의 한 대신 찬란한 역사로 기억될 땅
지난 2014년 동안 단 한 번도 해체된 적이 없는 탑 안에는 어떤 놀랄 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지난 2015년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의 백제 관련 유적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면서 백제의 옛 도읍지들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그중 부여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실 부여는 700여 년에 달하는 백제의 역사 중 마지막 123년 만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의 끝자락,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을 맞은 장소다. 이 때문에 부여는 백제의 황금기를 지켜보았던 이웃 도시들보다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부여에서 나온 유물이나 현재 그곳에 남아있는 문화유산만으로도 충분히 당시의 백제 문화가 찬란하고 또 눈부셨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가 이를 증명하고, 또한 지금부터 이야기할 정림사지 5층석탑이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부여를 찾으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정림사지다. 이곳에 정림사지 5층석탑이 있기 때문이다. 목조 건축물을 흉내 내서 지은 이 석탑은 특히 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새벽에 가서 볼 때 그 우아함에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운치 있는 자태를 뽐낸다. 이 석탑을 주의 깊게 살펴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멀리서 보면 아담하게 느껴지던 탑이, 가까이 다가가 보면 훨씬 웅장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 가진 완벽한 비례감 덕분이다. 탑신의 기둥은 살짝 안으로 들어가 있으며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지도록 하여 안정감을 주었고, 지붕돌은 옆으로 길게 뻗어 나가다가 끝이 살짝 올라가 경쾌함을 자아낸다. 찬란했던 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백제는 마지막 숨을 고르며 정림사지 5층 석탑과 같은 명품 문화재를 남길 수 있었는지, 나는 이 점이 늘 궁금하다. 이것 말고도 이 탑에 호기심이 생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아직 단 한 번도 해체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석가탑이라고 부르는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에서는 해체 보수 과정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왔다. 옆 동네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과정에서는 당시까지 실화로 여겨지던 서동 설화의 이야기와 배치되는 내용이 담긴 사리봉안기(미륵사를 창건하고 사리를 봉안한 계기를 새겨둔 것)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옛 석탑을 해체할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진실을 향해 성큼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여태껏 한 번도 해체 보수 되지 않은 석탑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무려 1400여 년간 지켜온 비밀의 내용이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기에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순간의 아픔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 탑은 한때 평제탑(平濟塔)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백제를 정복하고 세운 기념탑이라는 뜻이다. 왜 사비 시대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이 탑이 이러한 오명을 쓰게 된 것일까. 그것은 탑신에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점령할 때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복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정방은 백제를 멸망시킨 후 자기의 전공을 어떻게 해서라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이 석탑에 아픈 상처를 남겼으리라. 백제 멸망의 순간을 지켜본 것도 모자라 그 아픔이 몸에 새겨지는 수모를 겪었지만, 1400년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백제 문화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탑. 이것이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일지 모른다. ‘부여’ 하면 많은 사람들이 ‘삼천궁녀와 낙화암’으로 대변되는 망국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에 깃든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는 부여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부여는 백제 부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왕이 치열한 개혁을 펼쳤던 곳이자, 마지막까지 백제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 피웠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모두 함께 기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태성 역사강사· 저술가 ◈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
의지의 인간, 우주의 별이 되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현 인류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다. 호킹 박사의 업적은 우주의 기원과 구성, 변화를 연구하는 현대 우주론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로 대표되는 블랙홀과 관련한 그의 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현대 과학에 남겨진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다. 호킹 박사는 탁월한 학문적 성과 외에도 일반인을 위한 저술과 […]
인공지능, 마음까지 품을 수 있을까?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인류. 이는 미래 사회를 그리는 각종 SF 작품의 단골 소재다. 작가들은 그 모습을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그리기도 하지만, 대개 인공지능과 인류가 함께하는 미래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이런 경향의 바탕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훨씬 초월한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아무리 빼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의 마음을 갖기는 불가능하리라는 전망이 자리한다. […]
세계시민의식 교육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유럽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선 어김없이 북한 문제가 대화 소재로 오른다. 내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들은 북한 문제에 대해 꽤 많은 걸 이미 알고 있고 관심도 깊다. 북한과의 정치적 대립 역사와 김일성에서부터 내려온 김정은의 외교적 전략, 중국과 미국, 일본을 포함한 한반도 긴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내가 쩔쩔매는 형국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화젯거리로 올라오면 […]
우리는 모두 ‘유네스코 프렌즈’
지난 6년간 나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부위원장 일을 맡았다. 이 일을 막 시작한 2011년, 큰 포부를 가지고 당시 정우탁 본부장에게 한국위원회의 비전, 프로그램과 일하는 방법 등을 A4 용지 한 장에 요약해 주었고, 정 본부장 주선으로 몇몇 팀장과 면담과 토론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당부하던 일도 생각이 난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사실 이러한 작업은 굳이 부위원장이 나서 챙길 일은 […]
2018 유네스코 한일교사대화 한국교직원 일본 방문 프로그램에 다녀와서
한-일 양국 교사들의 상호 이해를 높이고 교육 관련 논의를 위한 ‘2018 유네스코 한일교사대화 한국교직원 일본 방문 프로그램’이 지난 1월 진행됐다. 20여 년 전인 1997년, 교육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교육 현장과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청년 교사 의 눈에 비친 당시 일본 사회와 학교는 경이로움과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학교는 언제쯤 이렇 게 선진화된 시설과 교육환경을 […]
유네스코 회관 건립, ‘명동 시대’ 열다.
사진으로 보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54년에 설립됐지만, 이후 몇 년간 사무처는 자체 건물 없이 서울 남대문과 시청 근처 임대 사무실을 전전하며 업무를 처리했다. 이에 위원회의 든든한 새집을 짓 기 위해 1958년 ‘사단법인 한국유네스코후원회’가 출범했다. 후원회는 서울 중구 명동2가 현 유네스코회관 부지 관리권을 기증받아 1959년 공사를 시작했고, 1967년에 지상 13층, 지하 1층 규모의 유네스코회관이 완공됐다. 당시 서울의 […]
제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서의 유네스코
광화문을 거닐다가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 간판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한 때 혁명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용어였다. 어렸을 때는 ‘5·16 군사혁명’(5·16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가 군사 정변 정당화를 위해 붙인 명칭-편집자 주)이란 말을 듣고 자랐다. 요즘은 급격한 변화를 상징하듯, 혁명은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쓰인다. 우리는 정치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 교육혁명 등 혁명의 일상화, 일상의 혁명화 속에서 살고 있다. 혁명은 특수 전문 용어를 넘어 일반 보통명사로 쓰인다. 한편, 혁명과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모든 혁명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