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
코로나19 때문에 작년에 처음 온라인 방식의 워크숍을 개최할 때만 해도 다음번에는 마스크를 벗고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결국 올해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 역시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9월 6일부터 16일까지 정식 참가자와 옵서버를 포함한 10개국 15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워크숍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지난 4년간 제도 개편을 이유로 신규 등재를 중단했던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2022-2023년도 신규 등재 신청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이번 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은 온라인 진행의 강점을 살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아랍권,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폭넓게 초청했다. 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참가 희망국이 제출한 신청서의 내용과 준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총 4개국 8명을 정식 참가자로, 6개국 7명을 옵서버로 선발했다.
이번 워크숍에서 다룬 기록물은 ▲모리셔스의 노예무역 관련 기록물 ▲오만의 오스만 제국 시기 서한과 운문 ▲팔레스타인의 코란 필사본 ▲짐바브웨의 20세기 원주민 관리부서 연보 등이다. 신청국들은 그간 기록유산 등재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랜 기간 공들여 신청서를 준비해 왔고, 따라서 지난 10여년간 워크숍에 참여해 온 국제 전문가들은 올해 기록물들이 여느 해보다 이야깃거리가 다양하고 지역적 범위도 넓다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번에 검토한 등재신청서 중에는 바로 제출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문가들의 세심한 조언을 거치면서 한층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특히 모리셔스는 하나의 등재신청서를 두고 5명이 동시에 워크숍에 참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해당 기록물이 지니고 있는 세계적 중요성(World Significance)에 대한 서술이다. 등재 신청 주체는 해당 기록물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바탕으로 신청서를 작성함에도 해당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세계적 중요성을 서술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모리셔스의 경우 국가기록원 등에 산재해 있는 노예 무역 관련 기록물들을 면밀히 분석해 작성한 초안에 담긴 세계적 중요성 기술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이에 워크숍 참여 전문가 중 1인이 해당 기록물과 같은 범주이지만 식민지를 경영한 영국과 프랑스의 관점에서 서술한 기록물이 남아공에 현존하고 있음을 조언함으로써 등재신청서가 거시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전과 달리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간의 시차만 10시간이 넘는 방대한 지역으로부터 참가자들을 초대한 것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작년의 온라인 개최 경험과 정보통신 기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주요 기록유산 관련 이슈 및 워크숍 참가 전 숙지를 요하는 내용은 사전 수강 플랫폼을 통해 공유됐고, 실제 등재신청서의 수정 및 심화 논의는 하루 3시간씩 시차를 고려해 진행함으로써 충분히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비록 현장 개최 워크숍에서처럼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악수하며 온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기술의 도움에 힘입어 시공간적 제약 없이 전문가와 소통하고 의사를 교환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은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모든 참가자들이 기탄 없이 등재 희망 기록물과 그에 수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을 설명하고 성공적인 등재를 위해 갖춰야 할 사항을 학습하며 교류했던 올해 워크숍은 모두에게 소중한 학습과 소통의 장을 제공했다. 이는 단지 화상회의 기술 발전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 기록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 참여해 온 전문가 그룹의 노련함과 성실하게 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해 온 참가자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향하고, 기술은 사람이 정의하는 것’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워크숍이 마무리된 후 참가자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준비하고 진행한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에 참석하게 돼 감사했다는 마음을 표하는 한편, 이번 기회가 향후 자국에서 준비 중인 기록유산의 성공적 등재 및 다양한 연구와 사업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간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유산이나 무형문화유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식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기록유산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기록물의 잠재적 가치에 눈을 뜨는 국가들이 늘어가는 현상을 보면, 향후 기록유산 분야에서 국제 협업이 더욱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지난 10여년간 100여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성공리에 진행해온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은 앞으로도 지역적 장벽을 넘어 인류사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소중한 기억들이 전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마중물이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동현 문화팀 선임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