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첫눈송이 전 유네스코 카불 사무소 직원
지난 8월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혼란상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탈레반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인권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송첫눈송이 전 유네스코 카불 사무소 직원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하는 아프간 현지 소식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얻고 있다. 현지 활동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송 전 직원이 바라보는 아프간의 현 상황에 대해 『유네스코뉴스』가 들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한겨레』를 통해 전하고 계신 기사가 많은 주목을 받는 것과 더불어 아프간 현지 유네스코 지역사무소에서 근무한 필자의 이력도 눈길을 끄는데요. 현지 근무 당시 주로 어떤 일을 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2015년부터 3년 반 동안 아프간의 유네스코 카불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국가 재건 사업의 일환이었던 ‘아프가니스탄 문화창조경제 프로그램’의 설립부터 운영까지 참여했습니다. 유네스코와 같은 개발협력기구는 분쟁 지역의 현장에는 필수 인원만 파견했기에 당시 제가 담당했던 업무 영역이 상당히 포괄적이었습니다만, 주로 문화분야 사업 중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전파와 무형문화유산 보존 활동 등을 맡았고 문화재 불법 반출 근절과 관련한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분쟁지역에서 문화업무를 하며 특히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고 느꼈던 점은 테러와 가난의 대물림으로 지속적인 패배감을 안아왔던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내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희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작고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 개발을 조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숱하게 지역 축제를 꾸리고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장려하고 전통 음악과 악기 연주 기법을 복원시키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요.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문화적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느낌으로써 전통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자신과 공동체를 잇는 문화적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 정권 하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활동들이기에, 저희와 협업했던 현지 예술인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현재 상황이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 아프간에서 끝없이 이어진 전쟁이 마침내 끝났지만, 현지 주민들은 평화에 대한 희망보다는 또다른 억압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지인들을 통해 전해지는 분위기는 어떤지요?
이번에 아프간을 점령한 탈레반은 자신들이 20년 전의 탈레반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정상 국가로 발돋움하고 국제 원조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기준에 어느 정도 맞춰가겠다는 이야기인데,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있듯 탈레반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현지에 남은 친구들로부터 여성에 대한 탄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간 국제 사회에 협력했던 인물들에 대한 색출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는 중인데, 그 상황이 매우 끔찍합니다. 지방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아직 조직 내 권력 구조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이기에 탈레반이 전 지역에 단일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국제 사회의 감시도 아프간 전역에서 효과를 보기 녹록치 않은 상황입니다.
— 국제사회는 아프간의 현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일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가 어떤 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펼치는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뼈아픈 이야기이지만 이번 아프간 사태는 국제 원조 사상 가장 큰 실패 케이스로 기록될 것입니다. 국가 재건에 수많은 국제 전문가와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지만 장기 전략이 부족했고, 아프간 정부에 권한을 넘겨주는 식의 출구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을 그 원인 중 하나로 들 수 있습니다. 아프간 정부 역시 지난 20여 년간 국제사회에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끝없이 부패하는 결과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수많은 다른 수혜국에서도 적잖이 목격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국제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프간의 상황을 잊지 않고 끝까지 주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속적으로 탈레반의 행보를 지켜보고 감시해야 하며, 훗날 국제 원조가 재개될 때는 단순한 전문가 파견을 통한 인도주의 및 개발 사업 진행을 넘어 아프간 현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합니다. 현지 전문가에 더 큰 권한을 주고,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형태의 사업 진행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일부 한국인들은 아프간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정작 난민들을 ‘우리 땅’에 정착시키는 문제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인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역시 숱한 전쟁으로 힘겨운 시기를 지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6·25 전쟁의 끔찍함을 몸소 체험한 세대가 아직 살아 있으며,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8월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 당시 비행기에 매달리던 이들의 모습을 보며 1950년 흥남 철수 당시 필사적으로 뱃머리에 매달리던 우리 민족의 참상을 떠올린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지금 아프간 상황의 비참함과 절박함, 그리고 무기력함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비단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큰 담론까지 끌어오지 않더라도, 그저 ‘공감’과 ‘이해’를 표하는 것에서부터 아프간 국민들을 돕기 위한 우리의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유네스코뉴스』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