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TED Contest’ 최우수 발표작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청소 시간에 친구들과 재미있는 얘기를 하다가 그만 아뿔싸, 방광의 힘줄을 놓고 말았습니다. 유아기에 마쳤어야 할 과업(?)을 6학년이 되어서도 끝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 당시 무척 수치스러웠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시는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맞나요? 이 일이 있고난 후, 수치심을 느낄 만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고, 수치심을 느낄 때의 그 감정이 너무 싫어서 일부러 제 안의 수치심을 무디게 만들고 뻔뻔함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여기 저처럼 수치심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브라질의 쓰레기 처리장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브라질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수치심을 느끼길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쓰레기 처리장을 뒤져야 하는데 이 일을 할 때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으면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정확히 말하자면, 빈곤이라는 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낄 권리마저 포기한 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도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아프리카 기아 얘기가 나올 때마다 보신 사진일 것입니다. 사진에서 보듯 아프리카에는 기아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은 꿈도 꾸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사는 데에는 세계적인 분배적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부패, 경제 구조, 일부 선진국과 거대 다국적 기업의 횡포로 인해 부채와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기아로 이어져서 그들 국가 주민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그들을 일부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의 노예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몇몇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은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프랑스 학자는 거대 다국적 기업의 재산에 대하여 “이제 그들은 너무 많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르는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드렸던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얘기를 듣고 수치스러우신 분 계신가요? 이 이야기에서 수치심은 너무 뜬금없는 감정 같은가요? 여러분은 분명 저 사진을 보시면서 함께 고통스러움을 느끼고 연민을 느꼈을 겁니다. 이 연민은 정의감으로도 이어졌지요. 그러나 곧 이 감정은 이 문제의 가해자인 일부 선진국과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한 두려움과 이 세계에 대한 무력감으로 변하고 맙니다. 무력감과 두려움은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여러분은 불편한 마음을 외면하며 내가 뭘 한다고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정당화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신 이유입니다.
인권을 보장받고 있는 우리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저들의 고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들은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권에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겠죠.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불평등에 대응할) 무기는 자연스레 우리의 손에 들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일부에게 점점 치중되고 있는 세계의 부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빈곤국가의 국민들에게 정의로운 방법으로 분배되어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우리 안의 수치심을 일깨우는 데서부터 시작합시다.
최예지 안성 가온고등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