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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첫 번째 하루가 시작된 2026년, 여러분의 올해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기대와 설렘이 뒤따르는 변화도 있고, 걱정과 우려로 이어지는 변화도 있을 텐데요. 올해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도 작지 않은 변화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올해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의 교육 과정에 확대 적용되는 ‘사회정서학습(Social Emotional Learning, SEL)’이에요. 사회정서학습이란 학습자가 각자의 마음 건강을 챙기면서 이 세상과 건강하게 관계맺는 법을 익혀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혹시 그거 인성교육 같은 거 아니에요?”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사회정서학습의 핵심에 가까이 있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질문들도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텐데요. 학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이 그간 왜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사회정서학습은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지금’ 그것이 이토록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들이죠. 오늘 뉴스레터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년 에미상의 주요 8개 부문을 휩쓴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드라마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마음이 건강한 어른’을 길러내는 게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함께 찾아보아요.
*오늘 뉴스레터에는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전이나 결말이 이 드라마가 높이 평가받는 핵심 요소는 아니지만, 그 어떤 스포일러도 원치 않는 분을 위해 미리 귀띔해 드려요.
+ ‘조용한 제이미’에게서 우리가 놓친 것은
제이미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조용한 아이입니다. 부모님의 말을 특별히 거스른 적도 없고, 부모 역시 비록 넉넉한 환경은 아니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양육 방식이라 할 순 없지만 두 자녀의 양육에 최선을 다했죠. 그런데 어느날 새벽, 이 평범한 가정에 중무장한 경찰들이 들이닥칩니다. 그러고는 살인 혐의로 제이미를 체포하죠. 드라마는 학교와 경찰서, 제이미의 집을 오가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제이미는 혐의를 부인하지만 모든 증거는 제이미를 향합니다. 부모 역시 처음에는 ‘우리 애가 그럴 리 없다’며 반발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비탄에 잠긴 채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뭘 더 해야 했을까?”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눈물을 참기 힘들 이 장면에서 제이미 부모의 질문과 마주한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져보게 됩니다. 그리고 되묻게 됩니다. 제이미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부모의 책임일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다면 그건 학교와 교육의 책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죠.
오늘날 십대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거를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내놓은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들(스트레스 인지율, 범불안장애 경험률, 자살률)은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는 언제나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십대들의 삶의 만족도와 행복 수준이 상위권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죠.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찾아내고 도움과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기대한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청소년 자살 원인 보고서를 심층분석해 2024년 12월 제194회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한 EBS의 ‘스스로 떠난 아이들 – 학교는 코드블루’ 기사는 “학교의 노력에도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을 발견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힘든 학생만 선별하는 교육과 지원으론 이런 대규모 자살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위기 학생을 지원하는 데서 더 나아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끝없이 좌절하거나, 자신의 좌절감을 다른 이에 대한 분노로 돌리는 근원적인 힘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일회성 강의나 이벤트성 교과외 활동보다 가정,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 전반에 걸친 꾸준하고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목숨을 건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생존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 및 자신이 속한 세상과 협력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마음이 건강한 어른’을 길러내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첫 단추로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실천하고,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도전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역량을 습득하는 과정”을 교육 전 과정에 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올해부터 시행되는 프로그램들의 핵심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 학교는 왜 제이미의 이상 징후를 찾아낼 수 없었을까
사회정서학습은 1990년대에 미국의 비영리 단체 CASEL(Collaborative for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이 구체적인 개념과 방법론을 확립한 이래 세계 각국에서 주목받아 왔습니다. 물론 학생들의 정서와 감정을 챙기는 일이 소위 ‘국·영·수’와 같은 전통적인 인지교육(cognitive education)만큼이나—혹은 그 이상으로—중요하다는 주장이 처음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교육’이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시간을 뺏을지도 모른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이러한 인식은 2011년 조셉 듀락(Joseph Durlak) 시카고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내놓은 대규모 연구를 기점으로 반전될 수 있었는데요. 해당 연구는 학생의 정서적 역량이 학업 성취도와 통계적으로 강력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후의 여러 후속 조사에서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잘 디자인된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에 투자한 1달러는 11달러의 가치로 되돌아온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을 정도이지요.
이러한 인식 전환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서학습은 여전히 학교에서 어엿한 ‘주류’의 위치에 오르지는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소년의 시간》에서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는 제이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이상 행동을 미리 감지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제이미의 살인 동기와 도구를 찾기 위해 학교를 탐문하는 형사들의 눈에 비친 학교는 도저히 아이들을 건강한 마음을 갖춘 성인으로 길러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죠.
연구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음에도 사회정서학습이 학교에서 굳건히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024년에 발간된 정책가이드 『Mainstreaming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in Education Systems(교육체계 내 사회정서학습의 주류화 방안)』에서 유네스코는 ▲아직까지도 교육 시스템이 교과 지식 습득과 인지적 성취에 치중돼 있고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과목들로 가득찬 빽빽한 커리큘럼을 소화해내면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 압박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며 ▲위태로운 교사-학생, 교사-학부모 관계 속에서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교사들은 이미 정서적으로 소진(번아웃)된 상태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는 올해부터 우리나라 교육 전 과정에 적용되는 사회정서학습이 단순히 ‘정규 교육 시간 확보’를 넘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챙겨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초등 1학년을 ‘인성교육 집중학년’으로 지정하면서 학생들이 학교 적응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정서 역량을 조기에 형성하도록 하는 등, 각 교육청들은 올해 사회정서학습을 촉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교육 방안들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한편으로 지난해 서울교육정책연구소가 내놓은 서울시 초등교사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들은 여전히 사회정서학습의 개념과 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수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단순히 문제 행동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수업이 아니라 교과나 학급 활동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사회정서학습을 위해 추가 인력과 예산, 학생과 학부모들의 협조 또한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정서학습이 보다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만이 아니라 교육 소비자라 할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가 모든 과정에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더 세심한 지원과 정책적 노력을 꾸준히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 제이미의 일탈을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드라마에서 심리 상담사 에린과 면담하는 제이미의 말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제이미가 겪었던 혼란과 분노의 근원에 한발짝 다가가게 됩니다. 친구 살해로까지 이어지는 제이미의 분노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그 모든 일이 제이미의 스마트폰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조용히 방에 있는 아이를 보며 안심하는 부모의 뒤에서 타인을 향한 혐오의 문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 비뚤어진 젠더 관점이 조용히 확산된 것이죠.
오늘날 십대들의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SNS가 내재하고 있는 확증편향, 에코챔버(밀폐된 시스템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며 (왜곡된) 신념이 증폭되고 강화되는 현상) 등의 여러 문제점들을 직시한 각국 정부는 최근 십대들의 SNS 사용, 모바일 기기 사용 제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요. 영국에서는 아예 《소년의 시간》을 모든 중등학교에 무료로 방영하도록 하면서 이 작품의 인기를 2023년 제정된 ‘온라인안전법’의 강화를 위한 추진 동력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호주에서도 만16세 미만의 SNS 플랫폼 이용을 전면 금지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우리나라 역시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올 3월부터는 모든 학교에서 수업 중 학생들의 스마트기기 사용이 전면 금지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강력한 조치들이 매우 의미있는 대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금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축소해버릴 수 있는 일괄 금지보다는 그러한 불안과 분노를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죠. 지난해 5월 세종시 세종여성플라자에서 《소년의 시간》을 중심으로 청소년·청년의 온라인 혐오문화에 관한 강연을 한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가 말했듯, 이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가 청소년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가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적지상주의, 폭력, 불평등과 차별, 빈곤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문제로부터 영향을 받는 청소년들의 감정은 지금 어떤 언어로, 어떤 경로를 통해 확산되고 있나요? 그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언어가 일부 극단적 커뮤니티에서 비롯된 혐오의 언어이고, 그것이 유통되는 경로가 SNS라면 일차적으로 그 둘을 규제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원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등한시한다면 이는 결국 반쪽짜리 처방밖에 될 수 없을 겁니다. 유네스코가 사회정서학습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처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없이 개인의 심리적 대처 능력에만 집중할 경우 사회정서학습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마음을 챙기는 일이 교육의 ‘희망’이 되려면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소년의 시간》의 끝부분에서 제이미의 가족들은 아빠 에디의 생일을 조촐하게 축하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제이미가 없고, 축하를 받는 아빠나 축하를 하는 가족들도 마냥 기뻐할 순 없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이젠 ‘살인자의 가족’이란 낙인 속에서 결코 편치 못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해 연말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주목했던 대만 타이베이 흉기 난동범의 부모 모습도 떠오르게 됩니다. 십수 명의 무고한 사상자를 내고 자신도 목숨을 잃은 20대 아들을 대신해 부모들은 언론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국민들에게 자식의 잘못을 사죄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그것이 오로지 부모만의 잘못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교육이 든든히 받쳐주길 바라죠. 교육이 내놓아야 할 답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올해 사회정서학습 교육과정의 전면 도입을 앞두고 서울시 교육청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대 다수가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한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대답이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잘 이어지지 못했다는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회정서학습은 그간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의 마음을 챙기고 인성을 길러주겠다는 교육 목표를 보다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역량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합니다. 예컨대 ‘타인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추상적으로 강조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관점 수용 기술’,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기술’을 직접 가르치고 연습시키겠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이 정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며 학교 현장과 학생들의 가정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이 보다 구체적인 희망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와 목소리로 이를 뒷받침하는 모두의 관심과 의지가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집중하는 올해 교육 방안은 각기 다른 발달 특성과 실천 전략을 필요로하는 중학교, 고등학교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적용되어야 할까요? 개인 맞춤 교육을 가능케하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도구는 여기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나아가 ‘모든 아이와 어른이 매일 존중받고 안전하며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느끼는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먼저 시작해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실천은 무엇일까요? 이 모든 일에 ‘함께’ 관심을 가질 때, 올해 우리의 학교는 ‘마음이 건강한 어른을 길러내는 곳’을 향해 한발 더 내디딜 수 있을 거예요.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