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 한 번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는 걸까요? 먼저 우리나라 대표단을 구성하는 외교부와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직원들이 있고, 이들과 함께 또는 이들을 도와 현장을 누비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처 직원들이 있죠. 이와 더불어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위원 역시 총회 현장을 찾습니다. 당연직 위원장인 교육부장관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공무원, 관련 기관·단체 대표, 학계 인사 등으로 구성되는 위원들 중에서 지난 11월 사마르칸트 총회에 동행한 위원은 3명이었는데요. 김성열 부위원장(경남대 교육학과 명예석좌교수), 정종섭 문화·정보커뮤니케이션분과위원장(한국국학진흥원장), 고상원 인문사회·자연과학 분과위 부위원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각각의 전문 영역에 따라 여러 회의와 행사에 참석하면서 유네스코에 대해, 혹은 그 속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 위원들이 각각 보내온 상세한 후기가 궁금하다면 각각의 링크를 통해 읽어보시고, 그 종합판이 궁금하다면 각 후기들의 내용을 세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해 본 이번 뉴스레터를 주목해 주세요!

+ 40년 만에 파리 밖,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그 느낌이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먼저 어떤 점이 눈에 띄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성열 부위원장 (이하 김)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오랜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로,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교역의 중심지였지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났는데요. 총회가 열린 의회 센터(Congress Center)를 둘러보면 우즈베키스탄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이곳을 중앙아시아 지역의 국제회의 중심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 듯 보였어요.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한 후 사마르칸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과의 짧은 대화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종섭 분과위원장 (이하 정)
사마르칸트는 과거 문명들이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서로의 삶을 교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도시였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장소 선정은 유네스코가 문화를 바탕에 둔 평화롭고 조화로운 미래에 대한 의지를 다시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 낯선 장소에서 열린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사상 최초의 아랍 출신 사무총장을 압도적 지지로 선출했습니다. 리더십 교체 현장을 지켜본 소감은 어떠하셨나요?
고상원 분과위 부위원장 (이하 고)
유네스코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이집트 출신 칼레드 엘-에나니가 연단에 올라 아랍어로 연설을 시작한 뒤 자연스럽게 영어와 프랑스어로 이어가던 장면이 깊은 인상을 줬어요. 이는 단순히 여러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아요. 앞으로 유네스코가 문화다양성, 다언어성, 새로운 포용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선언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장면이라고 봤습니다.
정
저도 보다 문화적으로 다양해지고 포용력 있는 유네스코를 향한 기대를 갖게 해 줬던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엘-에나니 신임 사무총장이 유네스코가 ‘문화적 가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요.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에는 서로의 삶과 기억을 이해하는 문화적 접근이 더욱 절실하니까요. 그러한 상호 이해가 협력의 지속가능한 토대임을 환기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각기 다른 조직에서 파견된 인원들 간의 협력 등, 총회 현장에서 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김
일반정책토론과 교육분과 세션에도 참석하고, 브릿지 사업 관련국과의 면담 자리에도 함께했던 제가 지켜본 바로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하 한위) 직원들의 노력이 특히 눈에 띄더군요. 한위 직원들은 한국 대표단으로서 총회에 참석하는 외교부 직원과 주유네스코대표부 직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는데요. 지원이라고는 하나, 그 일들은 주요 의제 검토 및 발언문 작성, 대표부와 의제 검토 협의, 대표단 발언 지원, 분과별 주요 동향 파악, 타 국가위원회와 주요 사안에 대한 공조, 총회 주요 결과의 정부 관련 부처 및 기관 공유 등 결코 만만하다고 볼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대표단이 동시에 여러 다른 분과 회의에서 발언해야만 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생기면 대표단을 대신하여 발언하기도 했어요. 토론 세션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지원사업을 특별히 언급하며 감사를 표한 수원국 대표들이 적지 않았는데,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는 이러한 발언 뒤에도 한위 직원들의 역할이 있었어요. 전면에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도 각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외교활동을 수행한 셈이죠.
+ 이번 총회에서 채택된 신경기술 윤리 권고는 유네스코가 이루어낸 또 하나의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이를 비롯해 총회에서 채택된 주요 결과들을 총평해 주신다면요?
고
이번 총회에서 눈에 띈 점은 여러 회원국이 유네스코를 다시 ‘생각의 실험실(laboratory of ideas)’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들고 싶습니다. 그동안 유네스코의 지적 리더십이 다소 약해졌다는 시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2021년에는 AI 윤리 권고를, 올해는 신경기술 윤리 권고를 채택하면서 유네스코가 여전히 국제 규범을 제시하고 세계적 논의를 이끄는 중요한 플랫폼임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일수록 신기술의 윤리 기준을 다자 협의의 틀 안에서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인데요. 유네스코는 이번 권고 채택을 통해 다시금 존재의 이유를 보여준 셈이죠.
정
문화 분야 의제들을 다룬 문화분과위원회 논의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제 문화가 국제협력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 자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화는 더 이상 예술과 나란히 하는 한 분야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사회적 회복력을 떠받치는 토대이며 평화와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구조적 요소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어요. 이러한 흐름은 최근 유네스코가 개최한 세계 문화정책 및 지속가능발전 회의에서 제시된 방향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데요. 문화는 글로벌 공공재이며, 기술과 환경, 경제와 평화의 교차지점에서 인류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자원이라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다양성과 보편성이라는, 어떻게 보면 서로 상충될 수 있는 두 중요한 가치를 어떻게 공존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될 겁니다.
+ 마지막으로 미국이 재탈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적잖은 변화를 맞게 될 유네스코에서, 한국이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고
미국의 이번 탈퇴 선언은 단순한 재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제기구 운영의 신뢰와 구조적 균형에도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무대’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과 구성이 크게 변화한 속에서 새로운 막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미국이 남긴 부담을 과도하게 떠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공백을 대체하거나 민감한 의제를 앞장서 수용하는 방식 대신, 변화한 환경을 정확히 읽고 그 속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역할을 세심하게 판단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죠. 한국은 이미 경쟁력을 보유한 AI 윤리, 신경기술 윤리, 디지털 전환, 문화유산의 디지털 보존 등의 분야에서 유네스코와 협력을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축적해 온 교육정책과 과학기술정책 경험은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사람 중심 접근’과도 잘 맞닿아 있죠. 과도한 정치적 부담 없이 기여할 수 있는 이러한 영역을 중심으로,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신뢰를 쌓는 실질적 기여 방안을 추구해야 합니다.
김
저는 유네스코 총회에 다녀오면서 두 개의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먼저 유네스코 안팎을 누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유네스코에 이바지하는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할도 유네스코 내에서 더 키울 수 있을까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유네스코로부터 지원을 받아 빈곤을 벗어났고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성과를 이루어 낼 또 다른 나라는 등장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함께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정
칼레드 엘-에나니 신임 사무총장이 유네스코가 ‘문화적 가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한국은 이미 디지털 문화유산 보존, 창작 생태계 강화, 미디어 접근성 확대 등에서 문화적 기반을 탄탄히 다져 왔고, 이러한 경험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쌓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과장된 역할보다는, 강점을 살린 책임 있는 협력을 통해 문화적 리더십을 발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