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해로 기억되나요? 생활이나 신상에 큰 변화가 있었다면, 올해는 유독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에 부임한 주재관에게도 2025년은 특별한 한 해였을 텐데요. 유네스코 다자외교의 현장에서 처음 공식 업무를 시작한, 때론 긴장도 되고 때론 뿌듯하고 보람찼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번 파리통신에서는 주재관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되짚고, 동시에 새해에 유네스코에서 주목해야 할 주요 ‘관전 포인트’도 꼼꼼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 내용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우리 얼른 읽어 보아요.
유네스코의 2025년을 돌아보며, 2026년을 바라보다

제 기억 속에서 2025년을 떠올리게 만들 단어는 역시 ‘변화’입니다. 특히 유네스코 회원국으로서 미국이 보여준 입장 변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나 ‘다양성·형평성·포용성’과 같은 가치에 대해 공공연하게 다른 입장을 표명해 왔는데요. 여기서 더 나아가 결국에는 유네스코에서의 세 번째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미국은 유네스코 헌장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사무총장에게 탈퇴를 통고했고, 이는 2026년 12월 31일자로 발효됩니다). 이로 인해 유네스코 또한 다시 한번 재정적 측면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탈퇴로 인해 예산 압박도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네스코 사무국과 회원국은 기구의 차기 4년 단위(2026-2029년) 사업 및 예산을 결정하기까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고려를 해야만 했습니다.
두 번째 큰 변화로는 유네스코 리더십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40년 만에 프랑스 파리 본부가 아닌 제3국에서 개최되었던 제4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새로운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공식적으로 임명되었는데요. 지난 8년간 유네스코의 수장으로 활동했던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의 오드레 아줄레(Audrey Azoulay) 전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이집트 국적의 칼레드 엘-에나니(Khaled El-Enany) 신임 사무총장이 선출되어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기구 역사상 최초로 아랍 출신 사무총장을 선출하며 작지 않은 변화를 택한 유네스코. 이러한 조직을 이끌 엘-에나니 사무총장 앞에는 유네스코의 재정난, 유엔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 기후변화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 등 여러 도전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신임 사무총장이 이러한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의 향후 행보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2025년은 유네스코 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적지 않았던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2026년 새해에 일어날 일도 올해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라 예상되는데요. 그중에서 제가 뽑은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유네스코의 ‘개혁’입니다. 유엔은 2025년에 창설 80주년을 맞았고, 이를 계기로 유엔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혁 프로젝트인 ‘유엔80 이니셔티브’를 개시했습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80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엔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임무(mandate)를 검토하며, 구조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유네스코 역시 유엔 전문기구 중 하나로서 ‘유엔80 이니셔티브’에 동참하게 되는데요. 특히 미국의 탈퇴로 인해 또 다시 재정난을 겪게 된 상황에서 기구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임무를 검토하며 구조를 개혁하는 일은 유네스코에도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8년 전 오드레 아줄레 전 사무총장이 취임하자마자 했던 일도 ‘전략적 전환(Strategic Transformation)’이라는 이름의 유네스코의 개혁 작업이었습니다. 그만큼 유엔과 유네스코의 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개혁의 한계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엘-에나니 신임 사무총장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만큼, ‘유엔80 이니셔티브’와 연계하여 어떠한 개혁이 어떤 방식으로 나올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026년 유네스코의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바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유네스코가 ‘본연의 임무’에 어떻게 집중하는지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유엔 시스템 내에서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를 천명하는 유네스코로서는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유엔 체제 전반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는 등 다자협력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이 결코 반갑지가 않습니다. 이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유네스코는 다른 국제기구와는 차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raison d’être)를 증명해 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엔80 이니셔티브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임무의 검토’인 만큼, 유네스코는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의 방벽을 세우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유네스코가 수행할 다양한 활동에 대한 평가도 결국 기구 본연의 임무 달성 여부에 비추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일상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점점 더 커져 있을 것이다.”
(Peace is a daily task of construction, laying the foundation brick by brick, maybe one day it will start growing.)
브라질의 음악인이자 정치인인 지우베르투 지우(Gilberto Gil)가 평화에 대해 한 말입니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렸던 2025년, 여러분은 일상에서 어떤 모습의 평화를 조금씩 쌓아볼 수 있었나요? 저는 2025년과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새해에도 유네스코와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함께 국제무대에서 차곡차곡 평화를 쌓아가는 일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 쉽지 않은 길에 저의 하루하루의 일과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또한 그러한 노력이 우리 모두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더 평화롭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께서도 새해에도 변함 없이 저희들의 활동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백영연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