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있는 명동 거리에서는 크고 작은 시위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시위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하지만, 요즘 따라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장면이 많이 보여요. 자신의 권리와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호소하는 시위가 아니라, 특정 국가의 국기를 찢고, 특정 국적 사람만을 겨냥한 욕설이 스피커를 타고 퍼져 나가는 모습들… 시위와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소중한 권리이지만 그것이 혐오 표현과 폭력적인 언어로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자유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지금처럼 진실과 허위정보가 뒤섞여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대에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인지, 어떤 관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스스로 점검하는 일도 더 중요해졌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서로의 생각을 빠르게 연결해 주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혐오를 복제하고 확산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말합니다. 혐오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내게 학습된 혐오를 다시 ‘배우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그 출발점이 바로 ‘관용(tolerance)’이에요.
오늘은, 우리가 함께 다시 꺼내 보아야 할 단어 하나, ‘관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왜 ‘세계 관용의 날’일까요?
1995년, 유네스코 회원국들은 「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며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관용이란 세계의 다양한 문화, 표현 방식, 인간 존재 방식에 대한 존중, 수용, 그리고 감사이다.”
관용은 단순히 ‘그래, 그냥 넘어가자’ 하는 무관심이나 방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타인의 인권과 자유를 인정하고, 나와 다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능동적인 태도를 말해요. 서로의 생각과 가치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되, 그 다름이 폭력과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와 개인이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죠.
이 선언을 바탕으로 유엔 총회는 1996년 결의를 통해 11월 16일을 ‘세계 관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olerance)’로 지정했습니다. 학교와 지역사회 곳곳에서 관용의 가치를 다시 상기하고, 혐오와 차별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자는 뜻이 담겨 있어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릅니다. 생김새, 언어, 성격, 믿는 것,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까지. 관용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요. “나와 다르다”를 “네가 틀렸다”로 바꾸지 않는 연습,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관용’입니다.
+ 유네스코와 관용, 왜 함께일까요?
유네스코는 창설 이후 줄곧 한 가지 문장을 붙잡고 일해 왔어요.
“평화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유네스코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는 관용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먼저, 평화와 비폭력의 문화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전쟁과 갈등, 폭력을 줄이고, 대화와 협력의 문화를 키우는 교육·연구·캠페인을 이어가고 있죠. 민주주의·세계시민교육, 인권·포용을 통해 인종·종교·성별·국적·장애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도록,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축입니다. 유네스코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동시에, 혐오 표현과 차별 선동에는 법·정책·교육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각국과 협력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교육이 핵심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공유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세계 관용의 날을 기념해 유네스코는 1995년 ‘유네스코–마단지트 싱 관용과 비폭력 진흥상(UNESCO-Madanjeet Singh Prize)’을 제정했습니다. 과학·예술·문화·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용과 비폭력의 정신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를 2년마다 선정해 시상하며, 우리 사이의 갈라진 틈을 잇는 사람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어요.
+ 세계 관용의 날, 이렇게 함께 해요

세즈 작가가 그린 이번 11월 세계기념일 캘린더에는 서로 다른 언어, 옷차림, 피부색을 가진 친구들이 둥글게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어요. 관용은 거창한 선언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을 걸어보는 용기’, ‘다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정성’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다정하게 건네고 있습니다. 이처럼 관용은 비록 추상적인 단어 같지만 아주 작은 습관으로도 시작할 수 있어요. 몇 가지 제안을 드려볼게요.
- 혐오 표현에 ‘좋아요’ 대신 ‘잠시 멈춤’을 – 오늘 하루만큼은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을 보았을 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먼저 확인해 보세요. 가능하다면 정중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아니면 적어도 좋아요나 공유는 멈추는 것부터요. 내가 누르지 않은 한 번의 클릭이, 혐오의 확산 속도를 조금은 늦출 수 있습니다.
- ‘다른 문화권 친구’와 10분 대화하기 – 회사 동료, 학교 친구, 유학생 이웃… 오늘 만날 수 있는 사람 중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 한 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한국에 살면서 좋았던 점이 뭐예요?” “요즘 뉴스 보면서, 혹시 불편하신 건 없었나요?” 대화가 길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10분이 각자의 세계를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될 거예요.
- 나의 ‘선입견 리스트’를 적어보기 – 요즘 뉴스나 SNS를 보며 자주 떠올렸던 생각들을 떠올려 보세요. “요즘 ○○ 사람들은 다…” “그 세대는 원래…” 이처럼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문장을 조용히 적어 보고, 그 옆에 이런 질문을 붙여 보세요. “이건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들은 이야기일까?” “이 말을 당사자가 들으면 어떨까?” 작은 자기 점검이, 관용으로 가는 가장 솔직한 시작점이 됩니다.
-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오늘 한 번만 더 꼼꼼하게 – 오늘 하루, 내가 보는 기사나 영상 중 단 한 개만이라도 출처는 어디인지, 다른 관점의 기사도 있는지, 자극적인 표현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정확한 정보 위에서만 건강한 토론과 관용이 자랄 수 있으니까요.
관용은 어느 한쪽만의 미덕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지키는 안전망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쉽게 내뱉었던 말들을 잠시 멈추고, ‘나는 정말 이 사람을 알고 있는가?’, ‘이 뉴스는 누구의 목소리만 담고 있을까?’를 묻는 순간, 이미 우리는 관용의 연습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11월 16일, 세계 관용의 날을 맞아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너그러워지길, 그리고 그 관용이 다시 누군가의 안전한 하루가 되길,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조용히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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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후원홍보센터 최연수 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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