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월요일 저녁 6시.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건물의 가장 큰 회의실에서 한국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상영되었습니다. 전 세계 각 회원국 관계자, 유네스코 사무국 직원, 그리고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파리 시민 약 400여 명이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유네스코 대회의실로 모였는데요.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9월의 파리에서, 그것도 유네스코 본부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현장에서 함께한 백영연 주재관이 그 내용을 전합니다.
영화 보기 딱 좋은 계절인 가을에, 그것도 영화 예술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이하 대표부)가 ‘한국 영화의 밤(Korean Film Night)’ 행사를 개최한 첫 번째 이유는 다름 아닌 ‘외교’를 위해서입니다. 영화 상영이 무슨 외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외교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배경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교, 즉 각국 정부 대표가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행위는 ‘전통 외교(traditional diplomacy)’라 할 수 있는데요. 두 국가 사이에서 진행되는 양자 외교(bilateral diplomacy), 또는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여러 국가를 상대로 하는 다자 외교(multilateral diplomacy)도 모두 이 전통적인 의미의 외교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행사는 어떤 형태의 외교인 것일까요? 바로 한 국가가 상대국 국민을 대상으로 자국의 매력을 선보이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외교, 즉 ‘공공 외교(public diplomacy)’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부가 유네스코라는 다자 외교 무대의 회원국과 사무국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마음도 얻기 위해 정성껏 기획하고 추진한 외교 활동이었던 것이죠. 공공 외교라는 의미에 걸맞게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직접 행사장을 방문했는데요. 대표부는 한국의 전통주와 다과가 제공된 사전 리셉션을 통해 사무총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에게 우리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는 성과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한국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상영된 두 번째 이유는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주인공 소녀를 중심으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조망합니다. 이들은 때론 상처받고 좌절하면서도 결국엔 세대를 뛰어넘어 연대하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그 모습에서 관객들은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인공이 청년들이라는 점도 영화와 유네스코 간의 연결 고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유네스코는 청년을 자체 우선순위 그룹(Priority Group)으로 설정하고 모든 활동의 기획 및 평가 과정에서 반드시 청년에 대한 영향이나 기여 정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는 청년을 특별히 더 고려하거나 배려해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실질적인 주역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요. 이 점에서 한국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영화를 상영한 것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유네스코에서 상영되었던 마지막 이유는 영화의 제목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김혜영 감독의 영상 메시지가 공개되었고, 차기 작품 촬영 일정으로 행사장에 나오지 못한 감독을 대신해 제작자인 송원석 대표가 현장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한 관객은 영화 제목에서 ‘괜찮아’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나는 괜찮아. 너도 괜찮아? 우리는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김혜영 감독의 설명을 대신 전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의 평안을 확인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 설명을 듣고 나니,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에 평화의 방벽을 쌓고자 하는 유네스코에서 영화가 상영된 이유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국제기구라는 다자 외교의 장은 ‘총성 없는 외교 전쟁터’라 불리기도 할 만큼 각 회원국이 자국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평화’와 ‘대화’를 강조하는 유네스코 또한 다자 외교의 장이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대표부는 이러한 공공 외교의 자리를 통해 유네스코의 고유한 가치를 되새기는 동시에,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회원국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이러한 대표부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함께 이러한 활동이 꾸준히 이어질 때, “모두가 괜찮을 수 있는 세상”도 더 일찍 실현될 수 있을 테니까요.
백영연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