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는 1990년‘모두를 위한 교육’을 출범시킨 이래 세계적으로 기초교육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학비를 없애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교육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교육복지정책을 채택했으며, 교사를 양성하고 학교를 신설하는데 노력했다. 그 결과 1990년에 85.8%에 불과한 학령기 어린이의 초등학교 취학률이 2010년에는 94.3%까지 증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여전히 100% 달성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고, 지역 및 국가별로 격차가 존재하나, 역사적으로 오늘날만큼 어린이가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보편진리로 자리매김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모두를 위한 교육’의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머나먼 여정이 남아 있고,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EFA와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달성을 이룰 때까지 고삐를 늦추면 안 되며, 새로운 세계적 도전에 맞춘 미래교육의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EFA지역회의의 결론이었다.
제13차 EFA국가조정관 아태지역회의(2월 26-27일/태국 방콕)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EFA의 성과와 향후 추진방향을 설정하는 정례 회의이다. 회의를 통해 역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EFA 달성 현황과 과제들을 공유하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우수사례와 경험들을 공유하는 장으로 활용된다. 이와 함께 이번 회의에서는 EFA의 기한이 2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미래교육의제에 대한 논의를 개시하였다는 점에도 큰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유네스코방콕사무소는 이번 국가조정관회의와 연계하여 Post-2015 교육분야 개발의제에 대한 지역협의(2월 28일-3월 1일/태국 방콕)를 유니세프 지역사무소와 공동으로 잇따라 개최했다. Post-2015 지역협의는 2015년에 종료되는 MDGs의 후속 목표들을 설정하기 위한 논의과정의 일환으로 교육분야 미래의제에 대한 논의를 지역차원에서 진행한 회의였다. 현재 MDGs와 EFA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미래의제의 경우에도 연계성을 가지고 설정되어야 하는 만큼 Post-2015 의제에 대한 협의는 MDGs와 EFA의 후속 의제 모두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그림1 참조).
(그림 1) EFA와 MDGs의 관계
이번 지역회의의 참가자들은 국제사회가 기존의 ‘모두를 위한 교육’을 넘어‘모두를 위한 양질의 학습(Quality Learning for All)’을 목표로 미래의제를 설정하는데 기본적으로 동의하였다. 지난 10-15년간의 국제적인 노력으로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교육 접근성과 취학률 차원에서 큰 성과를 보였고, 이에 따라 전례에 없던 초등학생 수의 급증을 가져왔다. 이런 교육 접근성에 있어 양적 확산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문제는 이런 양적 확산이 바로 교육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인도의 경우 최근 교육권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96%의 학령기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으나, 그 중 58%가 5학년이 되어도 간단한 문장도 읽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며, 학생들이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의 지원으로 학교에 가고 있지만 실제로 취학률의 증가만큼 ‘배움’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도 좋은 교사가 부족하여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수업을 받을 경우에도 이후 직업세계를 넘어 생애 전반에 요구되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FA에서 ‘양질의 배움(Quality Learning)’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교육의 양적 확산에 치중하지 않고, 학생을 중심에 둔 배움에 집중하자는 배경에서 나타난 변화이다. 1990년 좀티엔 회의부터 배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부분적으로 있었으나, 교육 접근성 자체가 상대적으로 더 큰 문제였던 시기에 우선순위에서 질적인 접근이 소외되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여도 빈곤 퇴치와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무리한 양적 교육 확산 정책에 따라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움이 새로운 의제로 각광받고 있다. 아울러, 이런 배움에 대한 강조는 개발학에서 투입이 아닌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과중심론(result-based approach)과도 일맥상통하여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2011년 발간한 교육분야 중장기전략을 ‘모두를 위한 배움(Learning for All)’으로 설정한 바 있으며, 최근 유네스코와 브루킹스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미래교육지표에 대한 연구사업도 ‘배움 매트릭스(learning metrics)’에 집중하고 있어 이러한 방향전환을 반영한다.
그러나 여전히 ‘양질의 배움’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으며, 배움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 등의 미래 의제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불확실한 실정이다. 일부 EFA 달성 자체가 아직 미진한 국가의 경우에는 초등학교에서 기초문해와 수리력을 향상시키고 중등교육의 접근성을 확대한다는 소극적인 접근을 취하는 한편, 일부 선진국과 전문가들의 경우에는 21세기의 변화에 맞춘 교육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꾀하는 적극적 접근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은 과거 산업화에 기반한 공장식 학교 제도를 탈피한 혁신교육론으로, 학교에만 집중된 교육이 아닌 학생 중심의 다매체 평생학습과, 단순암기가 아닌 자기주도학습(Learning to learn)과, 국영수의 인지적 기술(cognitive kills)을 넘어 소통법, 협상법, 창의력 등의 비인지적인 21세기 기술(noncognitive 21st century skills)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문제는 과연 기초교육 보편화 자체가 미진한 개도국들이 이와 같은 혁신교육론을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 역량의 문제가 제기되며, 중도국과 선진국의 경우에도 과연 이러한 다차원적인 배움을 국제목표로 측정하고 비교 분석할 수 있는 검증된 보편 메커니즘이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21세기 기술에 초점을 맞춘 유네스코 및 OECD 등 국제기구 차원에서 다양한 지표들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으며, 연구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나 이를 얼마나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과거 EFA와 MDGs들이 몇몇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을 위주로 하향식으로 설정되었던 반면, 이번 Post-2015 의제의 경우 회원국과 시민단체를 포함한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상향식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2015년까지 EFA는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국가별 점검과정과 지역 협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MDGs의 후속의제에 대한 논의도 유엔 전체 차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런 장을 통해 ‘양질의 배움’에 대한 세부적인 해석법과 측정법은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겠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미래교육의제를 설정할 ‘2015 세계교육회의’의 유치국으로 이와 같은 논의과정에 보다 긴밀하게 참여하고,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국내 차원의 준비와 의제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