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서로 양보, 시리아 유산 이슈는 격론 대결
유네스코가 중요한 일을 해냈다. 이번 집행이사회에서 지난 수년간 끌어왔던 예루살렘 세계유산 관련 안건들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의 합의로 일괄 처리되었다. 이들의 합의는 박수갈채를 받았고, 그 중재 역할을 맡았던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미국, 러시아 대표부 대사에게도 찬사가 돌아갔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성지로 여기는 도시다. 특히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은 세 종교에서 한결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이 곳에 기원전 9세기 솔로몬 왕이 1차 신전을, 서기 1세기 헤롯왕이 2차 신전을 지었다고 하나, 오늘날 이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7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지은 바위사원(황금 돔으로 유명)과 알 아크사 사원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사원의 무그라비 문(Mughrabi Gate)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 목조가교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에 또 다른 불씨를 당겼다.
원래 이 사원은 통곡의 벽 광장과 축대 오름길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2004년 폭설과 지진으로 이 축대길이 무너지면서 이스라엘이 임시로 목조가교를 설치했다가 안전과 미관을 고려해 2007년 2월 다리 공사를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공사를 위해 성전산 밑을 파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사원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찍이 이들 사원을 포함한 예루살렘 구 도시와 그 성벽은 요르단의 신청에 의해 1981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당시 미국은 예루살렘이 요르단의 영토가 아니고 관련국인 이스라엘의 동의도 얻지 못했으므로 세계유산 신청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세계유산위원회는 투표로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이후 아랍 국가들은 세계유산위원회와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등에서 이스라엘에 의한 예루살렘 세계유산 파괴를 집요하게 문제 삼았고, 특히 2008년부터는 무그라비 오름길(Mughrabi Ascent) 복원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 문제로 집행이사회 의사일정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번 집행이사회 기간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은 5월 중으로 파리에서 전문가 회의를 개최하고 또 예루살렘에 전문가를 파견하여 그 결과를 6월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와 10월에 열리는 차기 집행이사회에 보고하기로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갈 길이 멀기는 해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작지만 중요한 신뢰의 주춧돌이 하나 놓인 셈이다.
이 합의는 이번 집행이사회의 최대 성과로 꼽을 만하다. 많은 이사국 대표들이 유네스코의 존재 의의와 그 사명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발언에 나섰다.
그러나 한껏 고조된 축하 분위기는 이사회 폐회식에서 불거진 시리아 세계유산 파괴에 관한 격론으로 빛이 바랬다. 비이사국으로서 특별 발언을 신청한 터키 대표가 시리아 정부가 자국 세계유산을 파괴하고 있다고 규탄하자, 이사국인 시리아 대표가 즉각 그것은 알카에다와 연결된 테러리스트의 행위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미국, EU, 이집트, 파키스탄 등이 터키를 지지하면서 가세하고, 러시아, 중국, 베네수엘라, 쿠바 등은 그러한 논의가 유네스코를 정치화하는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유네스코의 주요 의사결정 기구에서 회원국들의 집단세력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번 이사회에서도 박물관의 역할 증진에 관한 국제규범 제정 여부 안건을 토의하면서 중남미 국가들이 문화재 불법 반출입 퇴치에 박물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표현을 결정문에 추가할 것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며 이를 반대하는 서구 국가들과 장시간에 걸친 공방전을 벌였다. 결국 이 표현이 결정문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평화의 문화 고취라는 유네스코의 사명을 먼저 생각하면서 합리적인 절충안을 제시하려는 이사국이 많지 않았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선진국과 개도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특정 사안에 대해 사전에 깊이 있게 연구하고 준비하여 한국이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국제협력본부장 임현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