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의 성장을 도운 유네스코학교 활동
“숭고한 교육관을 바탕으로 본 재단 건학이념 구현에 열과 성을 다하시어⋯.” 지난 2월, 인천교구청에서 가톨릭교육재단 소속 교사로서 20년 근속을 맞이하여 받은 공로패에 적혀 있는 문구는 10년 전 같은 자리에서 받은 ‘10년 근속 공로패’에 적혀 있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년 전에는 참으로 오글거렸던 그 문구를 읽으면서 이번에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 제 모습을 보며, 그간 유네스코학교와 함께하며 생겨난 제 안의 변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응당 선배들이 했던 기존 방식을 철칙처럼 따르며 선·후배 사이에 조용히 묻혀 지내왔던 제게, 처음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 대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게 만든 것은 2012년에 학교 내에 모의유엔 동아리를 개설하면서였습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동아리를 꾸리기는 했지만, 모의유엔 활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은 학생이나 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동아리의 모든 활동을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며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국제 이슈를 중심으로 토의와 토론을 진행하는 동아리의 정체성에 맞춰 문화 간 이해를 통한 포용성을 체득하는 국제이해교육을 접목시켜 보았고, 그에 따라 모의유엔회의에 걸맞는 태도와 가치를 공부하고 나니 학생들의 토의도 보다 내실있게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소통과 이해, 토론과 결론이라는 똑같은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교육활동에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토론에서 국제사회의 협력과 평화를 외치던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와서는 약한 친구를 조롱하고 따돌리는 ‘정글의 법칙’에 충실히 따르는 것을 목격하고는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6년에 교장으로 부임하신 이완희 신부님께서 유네스코학교 가입에 대한 의견을 물어오셨습니다. 안내 공문을 보니 가톨릭 학교의 지향점과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하시면서요. 그렇게 유네스코학교의 ‘전(全)학교적 접근’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학교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간 동아리 학생들이 학습하고 발표했던 문화다양성이나 인권, 협력 등의 학습개념이 학급으로 환류되지도, 행동과 실천으로 확장되지도 않았던 문제를 이것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유네스코학교에 가입한 뒤 다양한 강연과 연수에 참여하면서 유네스코학교의 교육목표가 학생들로 하여금 ‘전지구적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갖게 하고 ‘책임감 있게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제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내용을 만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행동과 실천이야말로 교육의 목표임을 배우고 나니, 당장에 학교에서 이를 적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이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 등이 제공하는 세계시민교육 교원연수에 참가해 학교에 접목시킬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고, 이를 수업에 적용함으로써 학생들이 다른 사람과 다양한 문화를 공정하게 대하는 태도를 체득하도록 했습니다. 영국문화원이 개설한 세계시민교육 연수에서는 문제인식과 문제해결을 핵심 요소로 하는 기업가정신교육을 접했고, 아산나눔재단의 ‘티처프러너’ 프로그램에서 배운 다양한 디자인씽킹(design-thinking) 노하우는 학생들의 소속감과 자기효능감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익힌 노하우는 작년에 시작한 학교특색 자율활동인 ‘유네스코이념교육’을 지도하기 위한 값진 자산이 되었습니다.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게 된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교사로서 제 자신의 성장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보람이었습니다. 유네스코학교를 통해 비로소 배움이란 ‘경험을 새롭게 성찰해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곧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체득한 경험과 변화는 곧 저만의 차별화된 ‘퍼스널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전 지구적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학생들을 초대하면서 스스로에게도 ‘가르치는 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습니다. ‘앎’을 ‘삶’으로 비춰보고, 그러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공로패에 새겨진 ‘건학이념 구현’이라는 말은 곧 가톨릭의 교육이념인 ‘생명존중’과 ‘연대를 위한 공존’을 구현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유네스코학교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교사로서 ‘환경도서 온책읽기’를 지도하고, 인도네시아 학생들과 ‘커뮤니티매핑 공동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기술로 개도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특강을 준비하면서, 유네스코학교 교사로서 되새겼던 그 마음가짐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경임
인천대건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