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제 기여의 시대, 무형유산 등재 경험 없는 개도국 적극 도와야”

필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전문가 지원계획’에 따라 2013년 12월 2일부터 7일까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열린 제8차 ‘무형유산보호 정부간회의’에 다녀왔다. 무형유산보호협약 제정 10주년을 맞아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담론의 현주소를 24개 위원국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직접 파악해볼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이번 회의에서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새로이 등재된 우리나라 김장문화의 등재신청서와 영상자료 제작에 직접 참여한 인연도 우리 정부의 대표단에 필자가 포함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인 사업이 결실을 거두는 현장에 있고 싶다는 개인적인 희망 외에도, 등재를 결정하는 표결을 앞두고 진행되는 질의·응답 및 토론 과정에서 혹시라도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의 등재신청서는 이미 심사보조기구에 의해 만장일치의 ‘등재권고’ 의견을 받았었고, 정부간회의의 의장에 의해 모범적인 사례로 표결 전 공식 언급되었다. 김장문화에 대해서는 심사보조기구의 등재 권고 의견이 발표된 후, 어느 위원국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안 수정을 제안하지 않았으며, 의장은 이에 즉시 등재를 선포했다. 기나긴 준비와 심사 과정을 고려할 때 의외로 등재 결정이 신속하게 내려져서 다소 놀라울 정도였다. 무형유산 보호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온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이러한 결과에 대표단 모두 기쁜 마음으로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고, 회의장에 있던 각국의 대표들로부터 따뜻한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회의에서 유산의 등재 결정은 정부간위원회의 여러 임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와 함께 무형유산의 향후 보호 방향을 결정짓는 여러 가지 중요한 토의와 결정이 이루어진다. 특히 심사보조기구의 종합 심사평은 유네스코의 무형유산 사업의 기본 철학과 방법론, 문제의식 등을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유네스코의 무형유산과장을 역임했던 아이카와 씨가 종합심사평을 발표했는데, 신청서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진단과 주문을 했다. 무엇보다도 유형유산과 구별되는 무형유산 담론의 특징과 강조점들, 예를 들어 문화상대주의, 문화다양성의 보존, 지속 가능한 유산 보호계획 등을 신청서에 일관성 있게 잘 담아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신청서와 함께 제출되는 영상 자료도 유네스코 무형유산 사업의 시각을 반영하여 만들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관광용 영상 자료 등을 짜 맞춰 제출한 일부 국가는 심사 의견에 그 부적절성이 적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등재 결정의 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 심사보조기구의 의견이 거의 절대적임을 감안할 때 향후의 등재신청 작업을 위해서 반드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내용들이다.
이제까지 유네스코가 계속 강조해 온 ‘개도국의 역량 강화’는 각국이 무형유산의 보호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할 때뿐만 아니라 등재를 신청하는 데도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네스코의 문화인류학적 무형유산 담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맞춰 설득력 있게 신청서를 작성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영상자료를 제작하는 데에는 많은 경험과 전문적 지식, 유·무형의 자산이 요구된다. 한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에도 유산의 등재가 몇몇 나라에 집중된 점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이 등재 경험이 적은 아태지역의 다른 나라들에 자문을 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이는 매우 효과적인 문화 원조, 즉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의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문화유산 방면의 ODA는 직접적인 보호·보존이나 연구의 영역에 집중되어 왔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사국의 전문가와 같이 등재신청 작업을 하거나 다국가 등재의 방식을 취한다면 문화 간 소통이라는 성과와 함께 역량 강화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정부간회의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무형유산 분야에서는 개도국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이 분야에서 한국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기여를 한다면, 국제사회의 문화 영역에서 성숙한 리더십을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한국으로서도 이러한 협력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무형유산 사례에 대해 배우게 되고, 여기서 얻어진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시각에 기반한 무형유산보호 담론을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는 이제까지 우리 유산의 등재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온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전 지구의 문화다양성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가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장문화 다음은? 농악과 제주해녀문화 신청 예정 줄다리기는 3국 공동 추진 무형유산은 전통 문화인 동시에 살아있는 문화이다. 무형유산은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들의 환경, 자연, 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해온 각종 지식과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을 아우른다. 무형유산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집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로 구전에 의해 전승돼 왔다. 유네스코는 1997년 제29차 총회에서 산업화와 지구화 과정에서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무형유산을 보호하고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를 채택했다. 이후 무형유산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커지면서 2003년 유네스코 총회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문화유산 보호 활동이 건축물 위주의 유형 문화재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 즉 무형유산으로 확장되었음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현재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유산은 93개국 282건이며 한국 유산은 ‘김장’을 포함해 16건이다. 문화재청은 2014년 농악, 2015년 제주해녀문화를 등재 신청 종목으로 선정했으며, 또 2015년에 ‘줄다리기’ 를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공동등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한국 무형유산: 종묘제례 및 종묘 제례악(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강강술래(2009년), 남사당놀이(2009년), 영산재(2009년), 제주칠머리당 영등굿(2009년), 처용무(2009년), 가곡(2010년), 대목장(2010년), 매사냥(2010년), 줄타기(2011년), 택견(2011년), 한산모시짜기(2011년), 아리랑(2012년), 김장(2013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