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타임머신 / 그땐 이런 일도] 한위 60년 뒤안길 들여다보기 II
올해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설립된 지 60돌을 맞는 해이다.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국민적 여망을 안고 탄생한 유네스코한위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교육·과학·문화 활동을 펼치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1991년 유엔 가입 이전까지는 한위가 세계로 통하는 ‘한국의 창’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 60년, 역사의 뒤안길에 새겨진 한위의 발자취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
대한민국 최초로 집대성한 한국문화의 정수
1957년 <유네스코 한국총람> 3년여 만에 발간
1954년 1월 30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설립된 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사업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를 세계에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한국의 과거와 오늘을 교육·과학·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집대성한 책 <유네스코 한국총람>(이하 한국총람)의 편찬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세계인에게 낯선 동방의 작은 나라였다. 6·25전쟁 참전국가들 사이에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나라’ 정도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유네스코한위는 1954년 유네스코 본부의 ‘동서문화 교류 10년계획’에 따라 <한국총람> 편찬에 착수한다. 이 계획은 문화교류를 통해 동서양의 정신적 유대를 더욱 굳게 하고 평화의 초석을 놓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었다. 먼저 <한국총람>을 완성한 후 이를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우리로서는 한국의 정체성을 찾고 우리의 빼어난 문화와 전통을 널리 알리고 이해시킬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총람>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전란으로 인해 문헌과 자료가 흩어지거나 소실된 부분이 많았다. 빈약한 예산 탓에 유네스코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고통도 뒤따랐다. 자료와 예산 부족이라는 큰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네스코한위 관계자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헌신 덕분이었다.
한국학계의 최고권위자들은 물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총망라되다시피 해 무려 170여 명이 자료수집과 집필에 나섰다. 이후 3년여의 산고 끝에 <한국총람>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57년 5월. 한국의 교육·과학·문화의 전통, 발전과정 및 현황을 집약해 우리 문화의 정수를 우리 학자들이 집대성한 최초의 현대서적이 탄생한 것이었다.
<한국총람>은 본문 16장과 부록을 합해 모두 73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과 치밀한 내용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신문 칼럼에서 <한국총람>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자료의 방대함과 편집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1957년 5월25일자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본문의 제1장은 한국의 교육·과학·문화의 각 분야에 걸쳐 그 형성과 발전 과정이 담겼다. 전체의 서설을 대신하는 것으로 한국 현대문화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제2장부터는 각 부문별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내용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제2장 종교 민속, 제3장 언어 문자, 제4장 교육, 제5장 인문과학, 제6장 사회과학, 제7장 자연과학, 제8장 문학, 제9장 미술, 제10장 음악 무용, 제11장 연극 영화, 제12장 체육, 제13장 홍보, 제14장 도서관 박물관, 제15장 고적 천연기념물 관광, 제16장 국제 교육 과학 문화 현황이 담겨있다.’
유네스코한위가 발간한 <한국총람>의 제작을 대행한 곳은 당시 대형 출판사였던 삼협문화사, 책의 가격은 7700환이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그 시절 쌀한 가마니(80㎏)의 가격이 약 4240환이었으니 ‘쌀보다 비싼 책’이었던 셈이다.
3년 후 영문판 한국총람 탄생 언론서 세계에 한국을 비칠 ‘민족문화의 거울’ 극찬 유네스코한위는 국문판 <한국총람>을 발간한 후 곧바로 영문판 제작에 나섰다. 국문판의 내용을 토대로 문헌과 자료를 보충해 <한국총람>을 영어로 발간하는 일이었다. 200여 명에 달하는 집필자와 번역자가 참여하고 4000여만 환(추산치 약 1억 6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형 사업이었다. 2년여의 산고 끝에 1960년 마침내 ‘한국문화의 세계백과사전’이라 할 SURVEY>(유네스코 코리안 서베이)가 세상에 나왔다. 사실 이때만 해도 우리 고유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릴 만한 책자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성을 띤 공보 당국의 선전 팸플릿이나 리플릿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문판 <한국총람>이 탄생했으니 사회 각계의 기대와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950쪽에 이르는 영문판 <한국총람>을 두고 당시 언론에서 보도한 기사를 보면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한마디로 ‘오대양 육대주를 두루 발 없이 달려줄 한국문화의 사절’이 바로 였다. 1960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는 칼럼을 통해 영문판 <한국총람>이 세계에 한국을 비칠 ‘민족문화의 거울’ 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영문판 <한국총람>이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적(?)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문판 <한국총람>은 유네스코 본부의 원조를 신청한 일본 등 12개국의 국제문화교류출판물들과 자웅을 겨룬 끝에 수위로 꼽혀 이례적으로 국제상금(장려금) 2000달러를 획득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문판 <한국총람>의 국제적 문헌가치가 높았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