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 되는 이유.”
스마트폰 사용을 두고 자녀와 ‘밀당’을 하는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질문입니다. 교실에서 스마트폰을 두고 고민하는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2023년 유네스코가 발간한 『2023 세계교육현황보고서』는 매우 유용한 자료였을 거예요. “화면 노출 시간은 자기 통제력과 정서적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불안과 우울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한글 요약본 p.19), “전문가들은 화면 노출 시간 규제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영문 보고서 p.157)고 언급한 이 보고서를 전 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인용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죠. 이처럼 세계 각국은 학생들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데요. 교육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화제가 됐던 유네스코의 보고서가 발간된 지 1년 반, 그 사이 전 세계 학교에서 스마트폰은 어떤 운명을 맞고 있을까요?
+ 사용 금지 추세는 확산 중
결론부터 말하면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는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교육현황보고서 블로그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나 정책을 마련했다고 보고한 교육 당국의 수는 전체의 40%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이는 1년 전의 30%에 비해 10%p, 개수로는 19곳이 증가한 것이며, 특히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증가 추세가 두드러졌습니다(25%p).
어떤 방식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막는지, 어떤 학교급을 대상으로 이를 시행할 것인지는 국가마다 달랐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다양했습니다. 호주에서는 9개 주 중 2개 주에서, 미국에서는 50개 주 중 20개 주에서 관련 규제가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일괄 금지 대신, 혹은 일괄 금지와 더불어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덴마크와 프랑스는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독일의 일부 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학생들의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이유로 금지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주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프랑스는 올해부터 중학교(collège, 11-15세 )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제출토록 하는 ‘디지털 휴식(pause numerique)’ 제도를 시범 실시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 스마트폰은 위험하니까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학습,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이 ‘뇌를 썩게 한다(brain rot)’거나 영구적인 뇌 손상을 유발한다는 식의 주장은 의학적 측면에서 다소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와 24시간 붙어있는 스마트폰에서 구동되는 SNS의 중독적인 특성이 학습에, 그리고 학습자의 웰빙에 어떤 식으로든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14개국 초등-고등교육 단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알림이 오는 스마트폰을 근처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과제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한 번 흩어진 주의력을 수습하는 데 20분이 걸린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단지 학습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스마트폰을 통해 매 순간 연결돼 있는 SNS와 디지털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끼치는 신체적·사회정서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장시간 사용으로 인한 시력 및 자세 문제와 수면 장애, 신체 활동 감소로 인한 비만 위험 증가 등에 대한 증거는 계속 쌓이고 있으며, 불안과 우울증, 충동 조절 장애 등과의 연관성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메타(Meta)는 자사의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10대 소녀의 32%가 해당 앱 사용 후 자신의 신체에 대해 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는 자체 보고서를 내놓았고, 짧은 영상 플랫폼인 틱톡(Tiktok)이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39초마다 신체 이미지 관련 콘텐츠를, 8분마다 섭식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SNS나 메신저 앱을 통한 사이버 폭력과 성착취 관련 사건은 발생 빈도와 규모 면에서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의 압박에 직면한 메타는 작년 9월부터(한국에서는 올 1월부터) 청소년들의 부적절한 콘텐츠 노출과 사용 시간 등을 제한하는 ‘10대 계정’을 인스타그램에 도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금지가 가장 나은 방법일까?
이처럼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해 도입되고 있는 대책들은 대개 ‘수업 중엔 스마트폰을 끄라’는 수준을 넘어 학생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 놓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포착한 《타임》지는 학생들이 등교 때 스마트폰을 넣어두면 하교 때까지 열 수 없도록 만든 파우치 제품을 2024년 ‘올해의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SNS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는데요. 영국과 미국에서는 13-14세까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는 서약 운동이 번지고 있고, 작년 11월 호주에서는 만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세계 최초로 통과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는 조치가 인권 침해라는 견해를 유지해 오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에 그 입장을 뒤집으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사실 인권위의 입장과 상관 없이 이미 국내 학교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스마트폰 규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초록우산과 《시사IN》의 조사에 따르면, 이미 국내 초·중·고 학생의 62.6%는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소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의 중독성과 과도한 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증거는 이미 충분하고, 앞으로도 더 쌓여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오로지 일괄 수거, 혹은 금지뿐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은 고민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교내 스마트폰 금지 관련 기사마다 언급되는 유네스코의 2023년도 보고서에도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의 유해성과 각국의 대책이 소개되어 있을 뿐, ‘금지’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보고서는 오히려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로부터 차단하는 것은 학생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교육계가 신기술의 유용성과 위험성 및 한계를 면밀히 파악함으로써 학생과 교사가 “세상의 변화에 맞춰 조정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영문 보고서 p.159). 따라서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다는 이유로 일단 ‘금지’라는 대책을 도입했다면, 그것이 정말 최선의 해결책이기도 한지를 평가하고 검토하는 일도 뒤따라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금지 조치가 학생들의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학생들은 이미 스마트폰 금지 정책에 맞서 다양한 방법으로 ‘몰폰(몰래 폰 하기)’을 할 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것을 또 막기 위해서는 금지보다 더 센 대책을 고민해야 할까요? 아니면 앞으로도 무한 반복될 숨바꼭질을 끝내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예컨대 ‘스마트폰 말고는 즐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환경’부터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 미래를 위한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 때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켰던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오늘날 현대인의 건강과 집중력을 앗아가는 주범으로 스마트폰—과 거기에 깔린 앱—을 지목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집중력을 뺏겨버린 잘못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그렇게 중독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스템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만의 원인을 개인의 게으름이 아닌 생활양식과 식품 산업 전반의 흐름에서 찾고,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이 아닌 구조적 불평등에서 살펴볼 때 더 근본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기기에 중독된 잘못이 단지 사용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것을 빼앗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금지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을 꺼야만 한다면, 그 다음에는 사용자가 앱을 더 자주 열고 거기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할 방법만을 고민해 온 기업들이 중독성을 완화할 방안을 내놓도록 요구하고, 각자가 스마트폰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잘 알고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더 나은 교육과 도움을 제공할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말고도 여가 시간을 즐기고, 꿈과 소망을 올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오늘날의 아이들이 유모차에 앉아있을 때부터 눈앞에 스마트폰을 갖다놓은 것은 바로 어른들입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스케줄을 짜 주고, 본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마트폰 이용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 또한 어른들입니다. 그런 어른들이 학생들을 스마트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내놓는 대책이 ‘금지’ 수준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학생들을 설득하지도 어른들 스스로를 안심시키지도 못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바로 그 보고서에서 유네스코가 강조했듯,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술이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금지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require something more than banning)”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