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수상자 김유선 교수
우리가 활동하고, 혹은 병들거나 죽는 것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이 작은 세포들의 삶과 죽음을 연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올해로 23번째를 맞은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학술진흥상을 수상한 김유선 아주대 교수는 바로 그런 세포의 삶, 특히 세포의 죽음(cell death, 세포사멸)의 방식에 대한 이해와 조절 기전을 연구하는 과학자입니다. 6월 14일에 열린 시상식에서 만난 그에게 이 작은 세포 속에 담긴 비밀, 그리고 여성과학자로서의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2024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학술진흥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과 함께,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포의 죽음의 방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세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대한 연구입니다. 세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는 곧 우리 몸의 질환과 연결되는데요. 세포가 죽음을 회피하는 경우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이 암입니다. 암세포는 죽음을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잘 죽일 수 있을지를 찾아내려 합니다. 반면에 세포가 너무 쉽게, 많이 죽어서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이 퇴행성 신경질환, 즉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같은 병이에요. 여기서는 암세포와 반대로 세포가 죽지 않게 잘 보호하는 게 관건이고, 그러려면 세포가 어떻게 죽는지를 알아야겠지요? 제 연구가 바로 그 부분에 관한 연구입니다. 암세포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열 수 있기에 로레알에서 저에게 이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수상 자체보다도 이번 수상 과정에서 이 상의 가치를 알게 되어 더욱 기뻤습니다. 저와 실험실의 제 후배들이 열심히 하는 일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로 인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후배와 동료들에게 이런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해요. 더불어 부모님께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해 드릴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시상식에 오셔서 제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시며 부모님께서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감사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시상식에서 “살아있는 세포의 일정에 우리(연구자)의 일상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도전과 성실함이 연구의 핵심”이라고 하셨는데요. 내 일상을 오롯이 연구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 여전히 여성 과학자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요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학계의 여성 비중을 늘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세포를 키우고 배양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이 꾸준히 밥을 주고 아픈지 살펴보고, 숨쉬게 해 주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실험이 세포의 일정에 맞춰 인큐베이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이어져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절대적인 ‘시간’을 연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해내기 어려울 때가 많죠. 예를 들어, 실험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아픈데, 나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실험을 하는 시간에 대한 지원 시스템, 즉 출산 및 육아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 여학생들의 경력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여성 차별을 극복하는 데 핵심일 것입니다. 사회적인 통념이 바뀌는 계기 또한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다른 여성 동료들을 보면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든 것 같았습니다.
과학은 감각이 필요한 일이며, 여성은 그러한 타고난 감각이 뛰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유네스코가 말한 대로 ‘여성이 함께하는 과학’이 꼭 필요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특성을 보완해 주고, 다양한 각도에서 서로 들여다봐 주면서 균형을 이룰 때 한국의 과학이 발전하는 데 더 잘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교수님의 발자취는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여성 동료와 후배들에게 귀감과 용기가 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도 이러한 영감이나 도움을 주신 연구자 또는 멘토가 계셨나요?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는 동안 연구 동료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이와 성별, 국적에 상관 없이 서로에게 과학에 대한 영감을 주고받고 있어요. 미국, 대만,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시기에 늘 같이 밥을 챙겨 먹으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던, 작은 문제를 같이 풀어나갔던 그 친구들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과학을 대하는 생각이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어요. 덕분에 한 곳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기도 했고요. 지금도 해외 학회를 하면 다 같이 만나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어요.
+ 과학계에서 여성과학자로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도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차세대 여성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격려의 메시지가 있다면요?
실제로 학생들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작은 일인데, 이거 해서 뭐해요?”라고요. 그런 질문을 당연히 던질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이 아예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비록 우리는 직접 약을 개발하진 않지만 그 약이 작동하는 ‘기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굉장히 작은 조각이 맞지만, 큰 퍼즐판에 ‘한 조각’이어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100개 퍼즐 조각 중 1개만 없어도 퍼즐은 완성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수많은 논문 중에서도 이것 하나가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이학 쪽은 처음에는 여학생들이 많다가도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그 숫자가 적어집니다. 숫자가 적기에 활동의 폭도 작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끼리라도 과학 연구에서의 네트워킹이 잘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활동적으로 다양한 자리에 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기회를 만들어 보세요!
📝 인터뷰를 마치며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큰 퍼즐판에 ‘한 조각’이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말, 100개 조각 중 1개가 없으면 퍼즐은 완성될 수 없다는 말이 특히 와 닿았어요. 아주 작게만 보이는 지금의 나의 노력도, 연구도, 글도, 커다란 퍼즐판을 맞추기 위해선 꼭 필요한 거겠죠. 마치 작은 세포들이 모여 몸을 이루는 것처럼요. 작은 하루, 작은 일상, 작은 목소리가 모이고 모이면, 커다란 무언가를 분명 만들 수 있으리라 믿어요. 작은 세포 같을지라도 없어서는 안될 여러분의 하루하루를 응원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최연수 전문관, 이윤하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