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s와 한반도 평화’ 토론회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해 대북협력 사업의 원칙과 방향에 관한 준거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에 주목하고, SDGs가 남북협력 및 국제사회의 대북협력이 나아갈 방향을 안내할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SDGs 와 한반도 평화’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 1월 17일에는 언론 토론회를 열어 보고서의 내용을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문경연 전북대 교수, 정구연 강원대 교수, 김성경 북한대학원대 학교 교수가 참여한 이번 토론의 일부를 『유네스코뉴스』 지면에 소개한다. 토론회 전문은 『프레시안』에 게재되었다.
김성경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는 무엇이며, SDGs와 한반도 평화는 어떤 연관이 있나?
문경연 SDGs는 환경, 지속가능성, 경제, 거버넌스, 평화, 정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지구 공동의 도전 과제들과 목표를 포함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등 모두에게 이행 의무가 발생하는 ‘전 지구적 개발 목표’다. 여기에는 당연히 남북도 포함된다. 따라서 SDGs를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SDGs 가 한반도 평화를 가속화‧공고화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게 만들 수 있을지가 과제다.
정구연 (이번 연구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SDGs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개발협력 사업이 한반도 안보 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즉, 여러 개발협력 사업들이 북한에 적용됐을 때, 혹은 적용될 환경을 고려 해봤을 때 그것이 북한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안보적 관점에서 풀어보았다.
김성경 북한 외무성과 유엔 기구들은 지난 2016년 SDGs를 반영한 ‘유엔 북한협력 전략 2017-2021’을 채택했다. 이 문서 채택의 의미와 내용은 무엇인가?
문경연 이 문서는 SDGs와 북한의 국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한 북한과 국제사회 간의 협력 로드맵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문서가 동유럽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헬싱키 협정에 버금간다고 생각한다. 이 문서는 북한 당국과 북한에서 사업하고 있는 유엔의 14개 기구들이 협의해서 서명한 것이다. 북한과 유엔 기구들이 2년 동안 협의해 이 문서를 준비했다. 물론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문서가 있었지만, 유엔 기구와 북한이 개발협력을 어떤 원칙과 가치 아래 추진할 것인지 밝힌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문서에는 인권이 처음으로 명시됐으며, SDGs를 북한이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물론 이것이 북한의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말과 원칙을 북한이 14개 유엔 기구와 함께 서명했다는 것 자체가 큰 출발점이자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북한이 이 문서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해야 한다.
김성경 북한 연구자들은 북한이 김정은 체제 하에서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겠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위 문서에 인권 등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은 이러한 북한 내 변화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남북 간에는 안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북지원이나 개발협력이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 않나?
정구연 지난해 남북 간 군사적 측면에서 신뢰 구축 조치가 있었는데, 이는 개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의 결과는 아니었다. 일종의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신뢰 구축 조치였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인도적 지원‧개발 협력과 당국자들 간 탑 다운 형식으로 생겨나는 신뢰 구축 조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양 조치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문경연 2017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 위기에 직면 했던 한반도에는 지난해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때문인가? 아니면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미국 대통령과 달라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와는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뢰는 1995년부터 남한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북한과 지속적으로 진행했던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 교류 등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관계가 좋지 않더라도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은 지속돼야 하고, 그래야 새로운 환경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안보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교류협력 문제가 급물살을 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발협력을 먼저 하면 안보 문제도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김성경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북지원과 교류협력 사업이 활성화되고 적극적으로 진행됐지만 이러한 활동 들이 남북관계에 종속되어 작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문경연 종속되어 작동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동안 너무 종속적이었던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다른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과 달리 한국의 안보 위협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간 군사‧정치적 대치 상황에서 이를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기제로 개발 협력이나 대북지원 등이 활용될 수 있다. 다만 단순한 지원과 원조로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루기 어려웠다. 국제 기구나 국제사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 원칙 등을 북한과 지속적으로 협상하면서, 때로는 자신들의 기관을 북한에서 철수시키는 등의 강수를 두면서, 북한과 계속 협의했고 대북지원 사업을 지속해왔다.
김성경 대북지원이나 개발협력을 논의할 때 남북이 갖고 있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국제사회는 가치나 원칙을 기준으로 북한에 강수를 둘 수 있지만 남북관계는 민족 문제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남한이 북한에 이같은 원칙을 강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와 남한을 다르게 대한 것 같은데?
문경연 물론 민간 단체들이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을 시작하게 된 것만으로도 신뢰 형성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를 단순히 북핵 문제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김성경 그런데 과거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이 있다. 북한의 핵 보유 문제다. 그냥 적대하는 상황에서, 즉 절체절명의 군사적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대북지원과 개발 협력은 대화의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북한에 핵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지원과 개발협력을 진행하는 것은 과거와 다를 것 같다. 남한은 핵이 있는 북한과 교류나 경제협력을 진행할 수 있을까?
정구연 북한에 핵이 있는지 여부보다는 북한이 비핵화 과정을 얼마나 추진했는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즉,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얼마나 취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이다.
문경연 북한은 체제 안정을 얻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 지금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얻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북한이 이 기회를 날려버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어떻게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상국가로 가려고 할 것이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포기 의사를 밝혔고 정상국가로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잡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더 이해할 수 있고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북한의 노력을 지원해줘야 한다.
김성경 북한에 핵이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대북 지원이나 개발협력에 대해 여전히 북한에 ‘퍼주기’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정구연 이 논란은 결국 남한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나 개발협력을 제공했을 때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태도가 변할 것인지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곧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중요해졌는데, 지금까지 북한 입장에서 취한 비핵화 조치는 ‘미래 핵’에 대한 비핵화였다. 2차 정상회담에서 ‘현재 핵’에 대한 조치 혹은 그에 준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을지에 따라 퍼주기 논란 문제도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문경연 ‘퍼주기’는 북한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표현이기도 하다. 사실 북한의 경제규모를 고려했을 때 남한에서 말 그대로 ‘퍼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북한을 많이 지원한 것도 아니다.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한 핵심은 북한에 ‘무장 해제하라. 그럼 우리가 준다’라는 것인데, 이같은 인식은 잘못된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 논란과 관련해 대북지원 민간 단체들과 정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모니터링 등 여러 원칙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또 대북지원이 다양화되고 여러 사업들이 진행된 만큼 한국 사회 내에 이데올로기 대립은 더 커졌는데 이 부분을 완화하려는 노력은 많지 않았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들고 나온 것도 대북지원이나 개발협력을 진행할 때 동포애, 민족애, 평화 등의 프레임으로는 보수를 떠나 진보도 설득하기 어렵다는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김성경 남북 간 협력에 정부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나 시민사회도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구연 유네스코에는 교육이라는 특성이 있다. 사회권 측면에서 유네스코 같은 기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은 국제사회의 특정한 기준과 관계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문경연 유네스코 베이징 사무소에서 대북사업에 대해 상당히 많은 요구사항들이 있고, SDGs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북한에서 워크숍을 개최한 경험도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와 SDGs를 비롯해 다양한 교류 협력을 진행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여전히 국제 제재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물론 안보적 관점에서 지금 워낙 제재가 강하고,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협상 구도를 깨지 않기 위해서 국제기구들의 대북사업이나 정부의 대북협력을 컨트롤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비핵화가 되면 제재가 해결되고 교류 협력이 활성화된다는 식의 발상이 아니라, 비핵화 과정을 좀 더 공고히 하는 기제로서 북한과 다양한 관계자들 간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북한에게 비핵화가 완전히 이뤄지면 북한이 원하는 경제적 발전 등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