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네스코의 문화 분야 70년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문화적 성취를 쌓아 온 우리에게 문화란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혹한 일제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을 겪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에게 문화는 한동안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70년간 다른 분야에서 일구어 낸 기적 같은 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문화 분야에서도 예전의 자부심과 긍지를 되찾고 세계 속에 우뚝 서기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유네스코가 품어 온 이상과 공명하며, 문화로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토대를 만든 것이다.
상호 이해의 징검다리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과학과 경제 분야에서 해외 원조를 구하고 기술을 도입하는 데 발벗고 나서는 한편, 문화 분야에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는 한국 관련 서적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고 그나마 있던 몇 권의 책도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것들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잿더미만 남은 빈곤한 국가’라는 이미지 대신,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제대로 알리고 세계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것이 절실했던 이 시기에 첫 작업으로 시작된 것이 『유네스코 한국총람』이었다. 1957년 당대 최고의 학자 200여 명이 한국의 교육, 과학, 문화 등을 집대성해 발간한 이 책은 1960년에 950쪽 분량의 영문판(『UNESCO Korean Survey』)으로 간행돼 한국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한국의 전통공연예술(『Traditional Performing Art of Korea』), 역사(『The History of Korea』), 전통문화(『Sourcebook of Korean Civilization』)를 담은 영문 학술서적을 차례로 출간했고, 1980년대에는 한국 전통음악에 관한 가장 방대한 영문 학술단행본인 『한국전통음악 시리즈』를 발간했다. 단행본 발간 외에 국내외 한국학 연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기간행물도 등장했다. 1961년 9월에 창간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관되어 계속 간행되고 있는 최초의 한국학 영문 학술지인 『코리아 저널』(Korea Journal)은 한국 문화와 사상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모으고 이를 국제학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해외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선진 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식견을 넓히고 국내 문화예술의 국제화에 기여하기 위한 활동도 이어졌다. 당시 한국은 문화 및 교육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실정이었고, 일반인이 해외에 나가 문화 체험을 하는 것은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문화를 통한 세계평화’라는 이념에 부합하기 위해 1950년부터 명화를 복제해 세계 각국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오던 유네스코는 1955년 한국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언론으로부터 “문화계는 물론 교육계와 정계에도 신선한 자극제”라는 평을 들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유네스코는 이어 ‘세계아동미술전람회’(1960년)와 ‘세계명화전시회’(1962년) 등을 잇달아 개최하며 100만 명이 넘는 누적 관람객 수를 기록했고, 1980년대까지 ‘아프리카문명전’, ‘라틴아메리카문명전’, ‘오세아니아문명전’ 등을 열어 한국인들이 다양한 해외 문화예술에 눈을 뜨고 문화간 이해 및 교류의 바탕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네스코와 함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을 만드는 데 주력했던 한국은 경제 성장이 본 궤도에 오르고 세계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문화 교류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단순한 문화 전달자의 역할에서 상호 교류와 이해를 증진하는 역할로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이러한 활동은 특히 학술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냈는데, 1990년대에 참여한 ‘동서양 문화 비교 사업’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사업은 전통문화에서 현대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학문적 논의를 유도함으로써 국내 학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대중적으로도 미국과 유럽 중심의 문화적 편향에서 벗어나 ‘세계 속의 한국 문화’, 혹은 ‘한국 문화 속의 세계 문화’에 대한 개념을 익히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한 한국은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간 유네스코가 진행한 사상 최대의 실크로드 탐사 연구인 ‘실크로드 종합연구 사업’에 학계 및 방송사와 함께 참여하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함으로써 문화교류의 역사와 필요성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문화적 기반 닦기
경제개발과 군비확장, 자국 우선주의에 매몰되어 발생한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유네스코가 교육과 문화와 지성에 기반한 평화의 방벽을 만드는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 역시 경제 개발을 위해 전 국민이 치열하게 내달리던 시기에도 국민들의 문화와 예술적 역량을 기르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기획했으며, 유네스코는 한국에 다양한 문화정책 이론과 사례를 소개하고 보급하는 데 역할을 했다. 한국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한 데 이어 1981년 문화를 국가의 중요 정책목표 중 하나로 포함시켰고, 이후 문화를 사회 발전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주요 동인으로 여기는 유네스코의 관점을 수용한 중장기 문화정책 방향을 수립했다. 이와 관련해 1980년대 중반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당시 문화공보부와 함께 추진한 ‘한국문화통계 및 지표개발사업’은 한국의 문화정책 발전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화분야에서 국가 중장기 계획 수립 근거 마련을 위해 시행한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은 우리 문화 현실에 맞는 통계 및 지표 항목 10개를 개발했다. 문화현상을 객관화하는 방법론 수립이 매우 어려운 문화 분야의 특성상 이같은 모델은 당시 일부 선진국에서나 개발했던 것으로, 한국의 문화통계 및 지표모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최초로 마련된 것이기도 했다.
한편, 유네스코가 1988년부터 추진한 ‘세계문화발전 10개년 계획’(World Decade for Cultural Development)에 포함된 여러 계획과 목표들은 1990년 문화부 발족과 함께 추진한 국가 차원의 ‘문화발전 10개년 계획’(1990-1999)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이 이처럼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유네스코의 선진적인 의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한국사회의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부작용에 대한 해결 방안을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강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산업화, 도시화, 중앙 집중화, 물신주의 팽배 등의 사회적 문제를 정치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 진단하고 분석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학문적 수요가 늘어났으며, 각종 문화예술시설과 관련기관이 설립되면서 경영, 행정, 경제, 커뮤니케이션 등의 분야에 문화를 연계시킨 연구도 활성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예술경영에 대한 오귀스탱 지라르(Augustin Girard)의 번역서 발간을 비롯해, 예술가 지위, 예술교육, 문화촉매, 문화지표, 문화산업, 창의산업, 다문화 사회 등 관련 정보 등 현대 문화정책 담론의 핵심 주제들을 국내에 전파하는 데 힘을 보탰다.
문화로 과거와 미래를 잇다
한국과 유네스코의 70년 문화 분야 활동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분야는 역시 문화유산 관련 활동일 것이다. 이는 ‘세계유산을 등재해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는 일차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개발과 보전의 균형, 유산의 가치 제고 등 문화유산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한 단계 높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유네스코는 유산의 보호와 활용 문제를 지속가능발전, 창의성 증진 등과 같은 주제와 연계시킴으로써 유산경제학, 유산경영학, 유산관광학 등의 새로운 학문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고,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이하 세계유산협약)을 통해 문화유산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여기는 획기적 인식전환의 계기도 마련한 바 있다. 한국도 1988년 세계유산협약 가입 이후 여러 관련 사업을 시행하면서 과거 미학적, 역사적, 고고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문화재’(cultural property)의 개념에 사회적 가치를 통합시킨 ‘유산’(heritage)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를 정부에서 추진하는 문화재 발굴 사업과 유산교육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또한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해 등재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무형유산과 기록유산 부문에서 지속적인 등재 성공 사례를 만들었고, 1999년에는 국내 문화재 분야의 대표적 권위자, 전문가, 기관 등 25명으로 구성된 국제기념물유적위원회(ICOMOS) 한국위원회도 창립했다. 기존에 유형문화유산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던 유네스코가 무형유산 분야의 활동을 개선하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한국은 1993년 제142차 집행이사회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에 ‘인간문화재’(Living Human Treasures) 제도의 보급을 권고했고, 이를 계기로 회원국들은 무형문화재의 단순한 보전을 넘어 그것이 후계자를 통해 후대에 전승되도록 국가가 지원·육성하는 한국의 제도에 주목했다. 이에 한국이 2002년에 전 세계 회원국과 대학 및 연구소에 발송한 영문판 『인간문화재 제도 실무지침서』 (Guidelines for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Living Human Treasures Systems)는 문화 분야에서 한국의 제도를 전 세계에 보급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무형유산 분야에서 펼친 한국의 이러한 선도적인 활동은 이후 한국이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ICHCAP)를 국내에 설치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
문화 위에 꽃피우는 다양성과 평화
70년에 걸쳐 한국은 유네스코와 함께 해외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고,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며, 다양한 문화 관련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 문화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점차 다가섰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한국과 유네스코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문화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2005년 채택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을 바탕으로 문화다양성을 보호·증진하고, 지역의 문화적 자산에 기반한 지속가능발전을 이루어내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또한 우리나라가 그간 축적한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보다 포용적이고 열린 국가로 한 발 더 내딛는 이정표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는 2005년 이후 스크린쿼터 축소 논의 등과 관련해 ‘자유 시장’ 경제 질서로부터 문화 상품 및 서비스 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논거로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문화다양성 관련 담론은, 2010년 한국이 문화다양성 협약을 세계 110번째로 비준하고 외국인 이주민 관련 다문화 정책을 본격 시행하면서 ‘공존’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에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이행을 위한 문화다양성법 및 관련 법률들이 제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도 마침내 소수자의 표현 증진 및 문화적 접근성 기회를 높이는 ‘문화권 보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한국은 또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문화다양성 협약 정부간위원회 아태지역 대표로 선출되어 국제 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2010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제2회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는 문화다양성 증진과 문화적 측면에서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한 목표와 전략을 담은 ‘서울 아젠다’를 채택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리나 보코바 당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예술교육은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해 인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노력 중 하나”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문화다양성 분야에서 한국의 활약을 격려한 바 있다. 유네스코는 2011년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매년 5월 넷째 주를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으로 선포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채택해, 매년 이 시기에 전 세계 회원국들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관련 인식 제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문화가 탄생되고 소비되는 가장 주된 장소라 할 수 있는 도시 단위에서 문화의 육성과 다양성 확보를 돕기 위해 2004년 10월부터 시작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도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 건설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도시 및 지역 단위에서 문화 산업의 창의적, 사회적, 경제적 가능성을 확대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네트워크에는 2019년 11월 현재 전세계 85개국(준회원국가 1개 포함) 2460개 도시가 가입해 있으며, 한국에서는 서울(디자인), 이천(공예와 민속예술), 전주(미식), 광주(미디어예술), 부산(영화), 통영(음악), 부천(문학), 대구(음악), 원주(문학), 진주(공예와 민속예술) 등 총 10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다.
수천 년간 이어내려온 우리의 마음 속에 깃든 전통과 문화, 소중히 간직하고 후대에 전해야 할 문화유산,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마을과 도시에 이르기까지, 유엔 전문기구 중 유일하게 문화 분야를 다루는 유네스코의 활동은 이처럼 우리의 문화와 삶 구석구석에 적잖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침략과 정복보다는 교류와 협력과 상생의 문화를 강조해 온 우리에게 유네스코가 남긴 이러한 흔적은 결코 낯설지 않다. 문화가 ‘사치’일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시절부터 문화가 ‘대표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근 70년간 우리가 유네스코와 함께 일궈온 문화 분야의 발전상을 돌아보면서 지금껏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만들어갈 길에 더 큰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
[참고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이행 국가보고서 작성 연구」, 2018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에서 지구촌 나눔의 주역으로』(2014), 『교과서 한 권의 기적: 유네스코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꿨나』(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