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관의 ‘왓츠인마이백(What’s in my bag?)’
혹시 아타셰 케이스(attaché case) 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주재관 가방’인데요. 손잡이가 있는 서류가방으로, 각이 잡히고 사이즈가 조금 큰 편입니다. 예전에 주재관들이 서류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운반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007 가방’도 아타셰 케이스의 일종입니다. 물론 저는 이곳에서 아타셰 케이스를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길에서 아타셰 케이스를 든 분을 만나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곤 한답니다. 이번 호에서는 주재관으로 일하면서 들고다니는 제 가방 안의 물건 몇 가지를 보여드릴까 해요.
지난 3월에 대표부가 새 건물로 이사하면서 대표부 출입증도 새로 발급됐습니다. 그 즈음에 유네스코 본부 회의에 참가하고 나서 대표부를 방문한 고등학생들이 이 출입증을 신기해 하며 사진으로 찍어가서 민망하기도 했어요.
유네스코 본부 출입증은 출입증 발급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발급을 받습니다. 카드에는 프랑스어로 나라명과 대표부라고 적혀 있네요. 대표부 직원용 출입증은 녹색, 유네스코 본부 직원들은 파란색이어서 출입증만 봐도 구별이 됩니다. 출입증이 없는 외부인은 들어갈 때마다 가방 검사를 해야 하고, 때로는 여권을 맡기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출입증은 주재관 근무 기간에만 사용 가능하니 아쉽지만 귀국 전에 반납해야 합니다.
유네스코 구내식당 카드는 충전해서 구내식당과 카페에서 쓸 수 있는데요. 대표부 직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제가 알려드린 적도 있습니다. 식당에서는 할인 혜택이 없지만 구내 카페에서는 커피에 한해 10% 할인을 받을 수가 있어요., 안타깝게도 여기 커피가 제 입맛에는 그다지 맛있지 않고, 구내식당 음식은 제 입엔 맛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아서 이래저래 잘 안 쓰게 되는 카드입니다. 이 카드는 유네스코 본부 직원과 대표부 직원 모두 같은 디자인을 씁니다.
전 세계 직장인들의 필수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유네스코 본부 직원 중에는 명함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꽤 있더라고요. 프랑스에서는 명함을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이유일 것 같아요. 한편, 대표부 직원들은 대부분 명함을 가지고 다닙니다. 다른 나라 대표부 직원들의 다양한 디자인의 명함을 받는 것도 작은 즐거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열쇠를 사용하는 문이 훨씬 많습니다. 저희 집도 건물 입구는 비밀번호로 통과할 수 있지만, 중문과 현관문은 모두 열쇠로만 열립니다. 특히 현관문은 무려 5중 잠금 장치가 돼 있어서 열쇠를 두바퀴 반을 돌려서 열고 집 안에서도 다시 두 바퀴 반을 돌려 닫아야 합니다. 우편함과 쓰레기 수거장용 열쇠도 별도로 있어요. 혹시나 열쇠를 분실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현지 사람들에게도 열쇠 분실은 큰 골칫거리인지 여분의 열쇠를 사무실에 두거나 친구에게 맡겨 놓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