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목 전 네팔대사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국제기구를 잘 아는 한국인 전문가의 따뜻한 조언, 혹은 냉철한 ‘팩폭’을 듣고 싶어하는 청년도 적지 않습니다. 외교부 출신으로 유네스코 본부 정규 직원으로 일하면서 사무총장을 보좌했던 홍승목 전 네팔대사는 바로 그런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입니다. 청년기자단이 홍 대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공무원 출신으로 국제기구 고위직에 진출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계십니다. 대사님께서 다른 국제기구가 아닌 유네스코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유네스코는 외교부에서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외교부와 연관성이 높은 국제기구이면서, 그 업무 영역이 다양하다는 점도 매력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외교부에서 유네스코 업무를 담당하는 상사로부터 “유네스코 사무국에 공석이 생겼는데 지원해 보는 게 어떠냐”는 권고를 받았는데요. ‘국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외교관 업무에서 벗어나 ‘홍익인간’의 정신에서 인류 공동체를 위해서도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하게 됐어요.
+ 유네스코는 밖에서 생각하신 대로였는지, 혹시 유네스코의 한계를 느낀 사례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시기인 90년대 후반은 새로운 천 년을 앞두고 유네스코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안팎에서 많았던 때였어요. 유네스코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똑같이 ‘평화’를 위해 설립된 기구이지만, 안보리가 ‘평화 유지(peacekeeping)’를 강조한다면 유네스코는 ‘평화 증진(peace promotion)’이 더 중요한 목적이에요. 저는 당시 새로 부임하신 마쓰우라 고이치로 사무총장님께 이런 부분을 말씀드리면서 유네스코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한 적도 있어요. 예를 들어 유네스코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는 세계유산은 각국의 영토 내에 ‘점(spot)’으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사업이 정말로 지역과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수준에서 평화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세계유산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평화 증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예를 들어, 점이 아니라 국경을 가로지르는 ‘선’의 형태로 나타나는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시행하면, 이웃국가 간 더욱 긴밀한 협력이 불가피해지고 나아가 21세기의 평화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씀드렸어요. 사무총장께서도 처음에는 당황해 하시는 것 같았지만 제 본뜻을 알아들으셨다고 생각해요.
+ 한국은 현재 유네스코 정규분담금 세계 9위, 자발적 기여금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에 비해 유네스코 한에 한국인이 많이 진출해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먼저 국제기구에 진출한 한국인의 수가 적은 것이 한국인의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오히려 저는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면서 ‘국제기구를 한국인 직원으로 채우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된 쪽이에요. 대부분의 국제기구가 ‘개발’을 염두에 두고 설립됐는데, 그러한 ‘개발’의 경험과 기억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있어요. 그뿐인가요. 업무헌신도(work ethics) 면에서도 한국인들은 탁월하다고 봐요. 물론 이러한 강점들이 있다고 해서 국제기구가 한국인을 알아서 먼저 채용하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국제기구가 한국인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윈윈(win-win) 전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 한국인 채용을 늘리는 인센티브라니, 솔깃한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국제기구와 협력사업을 하기 위해 선진국 정부가 제공하는 신탁기금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어요.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 대부분은 선진국의 ‘예산동결정책’에 따라 인건비 등의 경상비를 제외하면 사업비가 거의 없는 실정인데요. 이 때문에 기금 마련이 기구 운영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결국 신탁기금을 다루면서 기금 마련 능력을 인정받은 직원이 승진 등의 인사고과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아쉽게도 한국정부가 신탁기금 설치를 이러한 세세한 전략과 연계하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의 적지 않은 기여에도 한국인 직원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별로 없는 거죠. 따라서 앞으로 한국정부가 국제기구에 신탁기금을 설치할 때, 이런 부분과의 연계를 고려한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앞서 한국의 개발에 대한 한국의 경험과 기억이 국제기구에 도움이 될 거라 하셨는데,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한국의 경제 발전 경험은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자산입니다. 또한 한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이러한 국제적 역할을 수행할 역량을 더욱 키워야 해요. 이를 위해 정책을 연구할 기관과 정부 내 담당부서도 마련돼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시대적 소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인류 전체의 복지를 위한 전략을 세우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한국인을 키워서 국제적 기여를 늘려 나갈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기구를 단지 ‘일자리’의 관점에서만 보자는 뜻은 아니에요. 인류 전체의 복지에 대한 비전을 갖고, 그러한 기구를 이끌어 나갈 리더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국제기구 안에서 한국인의 활약도 당연히 늘어나겠지요.
+ 마지막으로, 장차 국제분야에서의 활동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국제기구에 ‘입사’하는 것 자체만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좋아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분야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업무를 맡아야 일하는 것이 행복하고, 그것을 인정받기도 쉽거든요.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기 위한 언어능력을 꼭 갖춰야 합니다. 특히 영어의 경우, 책을 통해서 배우는 영어가 아니라 생활영어(colloquial English)를 많이 익혀서—제 경우에는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200-300페이지 분량의 사전이 큰 도움이 됐어요—외국인과의 소통에 지장이 없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키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김아진, 최어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청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