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호] 주재관 서신
읽고 쓰지 못하는 성인 세 명 중 두 명이 여성이다.
전 세계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다.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하는 소녀가 한해 천오백만 명에 이른다.
세계 500대 기업 CEO 중 4%만 여성이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인물 중 여성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함께 사는 지구촌에서 성차별의 벽은 여전히 높고 여성의 지위는 낮기만 하다. 폭력과 고정관념 앞에서, 그리고 제도와 기회 앞에서 여성은 취약하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운 곳일수록 사정은 더 열악하다.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은 인권과 발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여성이 겪는 폭력과 차별은 개인을 희생시킬뿐더러, 사회 전체를 약화시키고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남녀 불평등으로 2025년까지 세계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12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을 줄이면 이집트는 34%, 일본은 9%, 미국은 5%의 GDP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양성평등 사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좀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가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 역시 여성과 여아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어야 달성될 수 있다.
‘캠페인 없는 세상’을 위해
작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전 세계 30개국 여성 노동자들이 희생과 혁명을 뜻하는 빨간 색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섰다. 여성들은 ‘여성 없는 하루’를 선언하고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을 중단했다.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16일간 세계 각지에서는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 주간’ 행사도 열렸다. 세계 여러 도시의 하늘에서는 ‘여성 폭력, 더 이상은 안 돼’라는 메시지를 담은 오렌지 풍선이 날아오르고, 땅에서는 오렌지 우산이 펼쳐졌으며, 유적들은 오렌지 빛으로 밤을 밝혔다.
양성평등이 더는 여성의 문제가 아닌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이슈이자 지구촌 모두의 과제임을 생각하면, 국제기구는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구촌 가장 소외된 곳까지 닿기 위해 글로벌한 해결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이어지며 양성평등 캠페인이 필요 없는 그날이 올때까지, 캠페인은 이어져야만 한다.
양성평등 우선 10년, 유네스코
10년 전 유네스코는 유엔 기구로는 처음으로 양성평등을 글로벌 우선순위로 내세웠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Better Life, Better Future)라는 구호 아래 조성된 여아 교육기금인 말랄라 펀드(Malala Fund), 전 세계 여성교육 현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월드아틀라스, 언론의 양성평등 상황을 체크하는 미디어 지표(media indicator), 여성 과학자의 가능성을 지원하는 로레알 상(L’Oréal-UNESCO Awards)등, 유네스코는 전 분야에서 양성평등의 글로벌 현황을 진단하고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유네스코가 추진하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운영되는 메커니즘에서도 젠더(gender) 문제는 우선 고려사항이다. 유네스코 내 모든 부서와 지역사무소에는 양성평등 전담자가 있으며 양성평등 기준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확인하는 시스템과 교육 기회가 있다. 이 모든 노력은 양성평등종합실행계획(GEAP)에 맞춰 진행된다. 양성평등종합실행계획은 전 분야와 부서를 망라해 성과목표를 세우고 추진전략을 상세하게 담은 문서로, 현재GEAP II가 2021년까지 가동되고 있다.
지금, 유네스코는 여성시대
현재 유네스코의 최고 의사결정체인 총회 의장과 조직의 리더인 사무총장은 여성이다. 집행이사회 논의를 이끄는 6개 위원회 의장 중 4명도 여성이며, 유네스코 사무국의 국장급 이상 직원 중 여성 비율도 절반이 넘는다. 명실공히 지금, 이곳 유네스코를 작동하는 파워그룹은 여성이다. 양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오드리 아줄레 신임 사무총장이 써나갈 새로운 유네스코의 이야기에서도 양성평등은 핵심 키워드일 것으로 보인다.
“양성평등과 사회를 진전시키는 힘인 여성이 정당한 자리를 회복하는 데 전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아줄레 사무총장이 힘주어 말한 취임사의 한 대목이다. 지구촌 여성들이 마주한 근본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교육의 기회가, 존중의 문화가, 공정한 커뮤니케이션이, 그리고 과학의 가능성이 그렇다. 유네스코가 지난 10년 간 열심히 펼쳐 온 이 노력이, 새로운 여성 리더십과 함께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선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파견하며, 외교업무수행, 유네스코와 대표부와 한국위원회 간의 연락, 유네스코 활동의 조사, 연구, 정책개발 등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