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유네스코 가입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유네스코의 70년 동행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걸어 온 여정 곳곳에 유네스코와의 특별한 인연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 세계 속에 우뚝 서기까지, 한국과 유네스코가 함께했던 몇몇 순간들을 꼽아보았다.
1950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가입
1945년, 해방 직후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외국의 지식과 기술 도입이 시급했던 대한민국은 교육, 과학, 문화 분야의 국제 협력을 통해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유네스코 가입을 적극 추진했다. 이에 1949년 7월 5일 조병옥 대통령 특사 겸 유엔대표단장이 주미 유엔 연락관에게 신청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당시 유엔에도 가입하기 전이었던 한국은 「유네스코 헌장」에 따라 1950년 2월 8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심의를 통과한 뒤 같은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유네스코 가입을 승인받아 6월 14일자로 55번째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었다. 가입 이후 유네스코 내 활동을 위해 정부는 국가위원회를 설치해야 하지만, 불과 2주도 되지 않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설립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1954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창립 및 교과서 인쇄공장 건립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4년 1월 30일에 마침내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창립총회를 거쳐 설립되지만, 국내에서의 유네스코 활동은 이미 한국전쟁 중에도 진행되고 있었다. 1951년 제6차 유네스코 총회 결의에 따라 운크라(국제연합한국재건단, UNKRA)와 협력해 한국에서 교육재건 및 지원사업을 추진한 유네스코는 1954년 서울 영등포에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에서는 연간 3천만 부에 달하는 교과서가 쏟아져나왔고, 이는 전후 한국의 초등교육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반기문 전(前)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이 이 때 만들어진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일화는 유명하다.
1961 외화 없이 책 구입, 유네스코 쿠폰 사업
유네스코는 1948년 외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나라에서 자국 화폐로 외국의 학술간행물과 각종 과학기자재를 좀 더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국제통화인 ‘유네스코 쿠폰’을 창안했다. 한국은 1961년 8월에 유네스코의 서적쿠폰과 과학기재쿠폰 사업에 가입했다. 한국에서 유네스코 쿠폰은 해외의 책자나 기자재의 도입을 편리하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과 함께, 국제 이해와 교류를 통해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자유와 정의 실현, 세계 평화 추구 등 정신적인 문화교류의 차원에서도 의의가 컸다.
1967 ‘명동 시대’ 연 유네스코 회관 건립
1958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든든한 새집을 짓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유네스코후원회’가 출범했다. 후원회는 서울 중구 명동2가 현 유네스코회관 부지의 관리권을 기증받아 1959년 공사를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8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1967년에야 지상 13층, 지하 1층 규모의 유네스코회관이 완공됐다. 유네스코회관은 당시 서울의 몇 안 되는 현대적 고층빌딩이자 냉난방 설비 및 승강기가 완비된 최첨단 건물이었으며, 건물 전면이 알루미늄 커튼월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건물이기도 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건물 준공 이후 7층에 입주했고 1973년에는 대지 및 건물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으며, 1977년에는 김수근 건축가가 11층의 실내 설계를 맡아 국제회의장과 전시장 등의 다목적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1970 평생교육의 개념 자리잡기 시작하다
교육을 학교라는 제도 교육의 틀에 한정한 종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생애 전체과정 속에서 파악하려는 ‘평생교육’의 개념은 유네스코가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보급한 주요 교육 개념 중 하나다. 1970년 ‘세계 교육의 해’를 맞아 한국에서도 평생교육 개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이와 관련한 본부의 자료를 수집·번역하는 한편 1973년 ‘제1차 평생교육 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후 평생교육의 개념은 사회 각 층으로 널리 퍼져 1980년에 개정된 헌법에는 세계 최초로 ‘평생교육의 진흥’이 명문화되었으며, 1999년에는 「평생교육법」이 제정돼 ‘교육사회’를 향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1977 유네스코 청년원 개원 및 다양한 청년 활동
1965년 전국 13개 대학에 ‘쿠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학생회(Korean UNESCO Student Association, KUSA)가 출범하고 1974년 8월에는 학생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행진하며 이후 수많은 국토순례 프로그램의 원형이 되었던 ‘조국순례대행진’을 이끄는 등, 196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유네스코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에 한국 정부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청소년 교외 교육과 야외 활동을 위한 필요성을 절감해 1965년부터 자체 시설 마련을 추진했고, 1974년 경기도 이천군(현재 이천시)에 유네스코 청년원 건설을 시작해 1977년 7월 18일 ‘젊음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창의적인 청소년 대상 연수 프로그램의 기반 시설이 된 이곳은 유네스코문화원을 거쳐 2006년부터 유네스코평화센터로 개편·운영되고 있다.
1982 환경문제에 관한 첫 관심,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유네스코는 환경과 개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인간과생물권계획(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MAB)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도 MAB 사업의 이행을 통해 환경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72년 환경문제연구협의회를 개최하고 1973~74년 『MAB 자료집』 11권을 번역·완간해 환경문제에 대한 학술 자료가 부족하던 시기에 우수한 연구 자료를 공급했다. 1980년 6월에는 MAB 한국위원회가 설치돼 한국에 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하는 일이 시작됐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되는 구역으로, 한국에서는 1982년 6월에 설악산 생물권보전지역이 처음으로 지정받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제주도’(2002년), ‘신안 다도해’(2009년), ‘광릉숲’(2010년), ‘고창’(2013년), ‘순천’(2018년)에 이어 지난해 ‘강원생태평화’와 ‘연천 임진강’까지 모두 8곳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1990 희망을 ‘수출’하는 첫 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한국 정부는 세계 평화와 새로운 국제 협력을 통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지기 위한 해외교육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1989년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설립했다. ‘Korean Youth Volunteers’로 명명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은 평화, 발전, 참여를 기본 이념으로 인류의 보편적 복지 증진과 국가 발전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하는 한편, 세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인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선발된 봉사단원들은 4개월간 소양 및 자질을 기르는 훈련을 받은 뒤 1990년 10월 제1기 단원 44명이 해외로 파견됐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은 1991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로 이관되어 ‘KOICA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2600여명의 봉사자가 56여개국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다.
1995 우리의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첫 등재
199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키로 결정했다. 이는 한국의 문화유산이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이후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화성’과 ‘창덕궁’(이상 1997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과 ‘경주역사유적지구’(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에 이어 지난해 ‘한국의 서원’까지 모두 14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한편 한국은 ‘씨름’을 비롯한 20건의 무형문화유산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1997 다문화 사회 방향 제시한 한국유네스코문화교류센터
1990년대 들어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주한 외국인과 한국인 간 상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주한 외국인들의 한국문화 이해를 돕고 국내 청소년들이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과 개방된 자세를 갖도록 돕기 위해 한국유네스코문화교류센터(Korean UNESCO Cultural Exchange Services, KUCES)를 설립했다. 1997년 10월에 설립된 센터는 이후 주한 외국인과 한국 사회를 잇는 문화교류의 창구로 큰 역할을 하는 한편, 1998년에는 전국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화교류 프로그램인 ‘외국인과 함께 하는 문화교실’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1997 동아시아의 역사 화해를 위한 노력
동아시아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둘러싼 갈등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다양하게 추진된 정부의 노력에 발맞추고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97년 ‘21세기 역사교육과 역사 교과서 국제포럼’을 개최한 이래,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으로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포럼’을 개최하며 국가 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상대방의 견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역사화해가 단기간에 실현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닌 만큼 특히 청년층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보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유네스코 청년역사대화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2000 상호 이해의 다리,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설립
1990년대 후반 유네스코에서는 세계 곳곳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른 문화 간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1995년 국제이해교육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이 센터를 대학이나 지역사회, 시민단체, 기업 등과 협력하에 국제 센터로 발전시키고자 했고, 유네스코 본부 역시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를 강화하고 있고 세계적 상호 의존을 향한 역동적이고 비폭력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며 2000년 8월 정식으로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설립 협정에 서명했다. 이후 아태교육원은 세계시민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최초의 카테고리2 센터인 아태교육원과 더불어 한국에는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등 5곳의 유네스코 카테고리2 센터가 있다.
2009 지속가능발전 뿌리내리기 위한 ESD한국위원회 출범
지속가능발전의 정신은 21세기 지구촌 국가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되어 가고 있다. 2009년 6월 18일에는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한국위원회(ESD위원회)가 설립되어 국내외 지식 자원과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일종의 기관 간 협업 체제가 마련되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2011년부터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 인증제’ 를 실시해 지속가능발전교육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앞서 1965년 전후 문해교육사업(제주도 비문해퇴치사업)에서부터 시작해 문해교육, 직업기술교육, 평생교육에 이어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에 이르기까지, 유네스코의 주요 의제와 결을 함께하며 시대에 맞는 교육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13 60주년 맞이한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
학교 교육을 통한 국제 협력과 평화의 문화 증진을 위해 1953년 11월에 탄생한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UNESCO Associated Schools Network, ASPnet)가 탄생 6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경기도교육청과 공동으로 2013년 9월 7일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 60주년 기념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유네스코학교는 유네스코 사업 중 가장 오래되고 꾸준히 발전해 온 네트워크로, 처음 16개국 33개 학교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1만1500여 개 이상의 학교들이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1년에 유네스코학교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0년 1월 현재 620개교(예비교 73개교 포함)가 모두를 위한 교육, 국제이해교육, 지속가능발전교육, 세계시민교육 등을 통해 유네스코의 이념과 가치를 교육 현장에 확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15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자발적 기여 업무협약 체결
유네스코는 정규 분담금 외에도 회원국들의 자발적 기여를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며, 한국은 2015년에 유네스코와 자발적 기여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양자 업무협약을 체결해 업무 채널을 외교부로 일원화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유네스코 회원국 중 상위 10위 이내에 드는 총 6천만 달러 규모의 신탁기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원조공여국이며, 교육부와 한국국제협력단,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양한 공여주체들이 관련 사업을 곳곳에서 펼치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 2010년부터 브릿지 사업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교육지원을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