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에서 개혁이나 구조조정 같은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할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바로 ‘통합의 황금비율’을 찾는 일일 겁니다. 조직을 재구조화하면서 효율성을 확보하고, 그러면서도 각 조직에 부여된 임무가 더 잘 수행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유네스코 80’이라는 개혁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려 하고 있는 유네스코도 여기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은데요. 그 일환으로 지난 2월 17일 본부에서는 과학 부문의 조직개편 구상을 논의하는 정보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3개의 조직으로 흩어져 있는 유네스코의 과학 부문을 어떻게 통합하려는 것인지,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없을지,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해당 회의에 참석했던 주재관이 보고 느낀 바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현재 유네스코 과학 분야는 총 3개 부문으로 나뉘어져 개별적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SC, Natural Sciences), 인문사회과학(SHS, Social and Human Sciences), 그리고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 Intergovernmental Oceanographic Commission)가 그것인데요. 유네스코의 통합 계획을 살펴보기 전에 이 3개 부문이 각각 어떤 역할을 담당해 왔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 자연과학 부문은 물과학, 생태지구과학, 기초과학, 생물다양성, 오픈사이언스, 과학기술혁신 등을 주로 다루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하는 ‘인간과생물권(MAB)’ 사업,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을 지정하는 ‘세계지질공원(IGGP)’ 사업,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 및 연구를 담당하는 ‘정부간수문학(IHP)’ 사업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인문사회과학 부문은 첨단 과학기술 관련 윤리 규범 제정, ‘사회변동관리(MOST)’ 사업, 스포츠 반도핑, 청년, 인종주의 및 차별 철폐와 같은 활동을 수행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간해양학위원회는 해양자원 관리, 쓰나미 조기경보, 해양문해(ocean literacy) 강화 등을 위해 국제 해양과학 협력을 선도해 왔습니다. 모두 ‘과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면서도, 저마다의 전문분야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과학 부문 통합 움직임의 배경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이처럼 뚜렷하게 구분되는 각 사업 영역을 굳이 통합할 이유는 없을 것 같기도 한데요.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유네스코는, 더 나아가 유엔 전체는 지금 여러모로 창설 이래 가장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입니다. 모든 유엔 기구는 ‘유엔 80’이라는 개혁의 일환으로 혁신을 이뤄낼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역시 중복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해야만 하죠.
따라서 유네스코는 과학 부문의 통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부문을 통합함으로써 흩어져 있던 유네스코의 과학 활동을 하나로 모으고 이를 통해 활동 성과를 높인다. 둘째, 유네스코 회원국과는 별개로 자체 회원국과 사무국을 보유하는 등 기능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는 IOC는 이번 통합에서 제외한다. 셋째, 기존에 각 부문에 배정되어 있던 예산과 주요 프로그램은 변경 없이 유지한다.
물론 이러한 통합이 매끄럽게 완수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하고 심도 있는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회의에 참석했던 여러 회원국 역시 통합으로 인해 자연과학 부문이 약화되는 것은 아닐지, 반대로 이미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인문사회과학 부문이 일방적으로 자연과학 부문에 흡수되는 것은 아닐지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 통합을 넘어 함께 바라봐야 할 것
국제기구라는 국가 간 협력 수단이 지금 단순히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수준을 넘어 ‘존재의 이유’ 자체를 재검토 받고 있는 상황에서 유네스코 역시 통합과 효율화라는 길을 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제기구는 개별 주권국가 간 협력을 선도해야 한다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창설된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제기되어 왔던 국제기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이제는 전보다 더 진지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을 텐데요. 저는 인공지능(AI)이나 신경기술(neurotechnology)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의 윤리적 측면에 관한 규범을 만들어 내는 역할이 바로 그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설 이후 80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유네스코를 둘러싼 환경은 정말 많이 달라졌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 중심의 윤리 규범 제정 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유네스코만이, 혹은 유네스코라서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핵무기와 같은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물이 인류의 생존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목격한 유네스코 창설 멤버들은 유네스코가 과학의 윤리적 측면을 다루는 기구가 되도록 기획했습니다. 이때로부터 8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러한 유네스코만의 임무가 가진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중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접근법 역시 필요한 때이기도 한데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AI의 급속한 발전과 같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도전과제는 이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해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원래의 임무를 ‘현대화’하는 것 역시 ‘유네스코 80’ 개혁의 핵심 취지 중 하나임을 기억한다면, 유네스코가 통합과 효율화라는 과정을 거쳐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유네스코의 과학 부문 통합은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 경로가 어떠하든, 그 여정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든 결국은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기다리며, 또 다른 소식들이 들어오는 대로 여러분의 편지함을 찾아가겠습니다.
백영연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