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유네스코는 ‘UNESCO 80’ 이니셔티브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유네스코의 또 다른 개혁 시도로, 유네스코 사무국과 회원국, 국가위원회,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통해 기구의 핵심 임무(mandate)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규명하려고 합니다. 1945년 기구 창설 당시 설정되었던 유네스코의 임무는 2026년에도 유효할까요? 8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사회 환경, 특히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고려할 때, 기존 임무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네스코가 ‘유네스코’로서 존재하기 위해 변치 않아야 할 가치도 분명히 있을 텐데요. 파리에서 독자 여러분께 보내온 올해 첫 번째 편지에는 유네스코의 역사 속에서 찾아본, 이 질문에 대한 주재관의 대답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네스코의 기원을 되짚어 가다보면, 유네스코가 해 온 활동들은 1945년 11월 16일 기구 공식 창설일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그 전신(前身)으로부터 이어받은 ‘국제 지적 협력’의 움직임은 1945년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되었던 최초의 국제기구는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1920-1946)’이었습니다.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국제기구였습니다. ‘지적 협력’에 관한 규정은 국제연맹 규약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맹 이사회와 총회는 프랑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적 협력 분야에서 국제적 협력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1921년 9월 프랑스가 제시한 구상은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지적 협력을 통해 국제적 연대 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연맹의 평화 증진 노력을 보다 공고히 하자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 국제연맹 산하 자문 기구인 국제지적협력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ICIC)가 1922년 1월에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ICIC는 과학자, 연구자, 교사, 예술가 등 전 세계 지식인들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조언을 국제연맹에 제공했습니다. 이후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국제 지적 협력 체계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앙리 베르그송, 토마스 만, 폴 발레리 등 다양한 과학자, 철학자, 문인들이 당시 ICIC의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23년 이후 국제연맹의 여러 회원국에서는 이러한 지적 협력을 담당하는 국가위원회가 잇따라 설립되었고, 1926년에는 ICIC의 행정 사무국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할 국제지적협력기구(International Institute for Intellectual Cooperation, IIIC)가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IIIC의 설치 이후 국제 지적 협력의 범위는 학술과 교육, 문화 영역 전반으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기구가 평화를 추구하는 방식이 정치·외교적 차원을 넘어 지식과 교육, 문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지적 협력의 제도적 실험은 훗날 유네스코로 이어지는 국제 지적 협력의 토대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발발로 국제연맹의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맹의 뒤를 잇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이 창설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활동이 중단되었던 국제지적협력기구(IIC)의 모든 자료와 임무는 1945년 11월 16일에 국제연합 전문기구로서 창설된 유네스코가 이어받았습니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국제연맹 산하 국제지적협력기구(IIIC)를 중심으로 한 지적 협력 제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그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유산은 바로 ‘국제 지적 협력’이라는 핵심 임무입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유엔 내에서 유일하게 ‘인류의 지적·도덕적 협력을 통한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전문기구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유산은 바로 유네스코의 사무국이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정부의 제안에 따라 IIIC 사무국은 파리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에 자리잡았고, 그 임무를 이어받은 유네스코의 사무국 역시 여전히 파리(퐁트누아, Fontenoy)에 있습니다. 마지막 유산은 바로 국제연맹 시절 국제 지적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각 회원국에 설치되었던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제도입니다. 각 회원국의 학자와 작가, 예술인, 철학자, 연구자 등 지식인이 국제연맹이라는 다자외교의 틀 내에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국제연맹과 각 회원국 사이를 이어주고 조정하는 활동이 필요했었는데요. 이를 위해 운영했던 국가위원회 제도는 오늘날 유네스코가 유엔 체제 내에서 유일하게 국가위원회 제도를 운영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네스코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여러 개혁과 변화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가 변함없이 유지해야 할 기구의 핵심 임무는 바로 ‘국제 지적 협력’이라는 점을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됩니다. 아울러 그러한 기구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회원국에 설치된 ‘유네스코 국가위원회’의 활동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UNESCO 80’을 통해 새로운 개혁을 시도할 유네스코는 이러한 유산을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고 또 다듬어 나갈까요?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기대하는 ‘새롭지만 변함없는’ 유네스코는 어떤 모습인가요? 보다 구체적인 모습이 나오는 대로 또 여러분께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참고자료
Renoliet, J.-J. (1981). L’UNESCO oubliée : La Société des Nations et la coopération intellectuelle (1919–1946). Publications de la Sorbonne.
백영연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