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종묘(宗廟),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난 몇 주 동안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구성원들이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바로 종묘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서울시가 종묘 근처의 재개발구역에서 건물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145m로 두 배 가량 높이기로 하면서 불거진 논란이죠. 여기에 대해 ‘세계유산 옆에 고층빌딩이라니 말도 안 돼’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서울시의 주장처럼 ‘더 개발된 환경에서 살기 원하는 주민들의 의견도 존중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유산 관리를 책임지는 국가유산청의 허민 청장이 (개발 강행 시)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종묘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어요. 세계유산은 정말 등재 취소도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왜, 어떤 절차를 거쳐서 그렇게 되는 걸까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세계유산인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와 관련된 사실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세계유산, 정말 취소도 가능?
- 일단, 한 번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 지위는 계속 유지될 수 있어요. 물론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당연히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약속했던 유산 보존 및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유산의 가치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는 경우를 말해요.
-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는 6년마다 유산의 보존 상태 및 보호 활동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정기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합니다. 이러한 보고서에서 세계유산 등재의 핵심 근거가 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위협하는 요소가 발견된 경우, 혹은 정기보고서를 통하지 않더라도 언론 보도나 신고 접수 등을 통해, 유네스코는 당사국에 조사 및 시정 조치를 요청할 수 있어요.
- 해당 문제가 OUV에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식적인 절차로는 ‘유산영향평가(Heritage Impact Assessment, HIA)’가 있습니다.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에 따라 유네스코는 문제 발생, 혹은 인지 시 해당국에 HIA 실시를 요청하고, 그 결과를 통해 유산 가치의 훼손 여부를 판단해요.
- 그러한 절차를 거쳐 유산 가치 훼손 우려가 타당하다고 인정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유네스코는 유산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 이하 ‘위험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어요. 유산의 훼손 위험성을 다시 한번 경고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시정 조치를 취할 것을 재차 요구하는 것이죠. 만약 여기서도 더 진전이 없다면, 해당 유산은 결국 세계유산 목록으로부터 삭제(delisted)돼요.
+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사례는?

- 세계유산 등재는 전 세계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환호하는 일이지만, 이후에 유산 관리 및 개발을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적지 않아요. 등재 신청을 하면서 한 약속들을 지키는 일, 유산의 보존과 지역 주민들의 개발 욕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죠.
- 세계유산 등재 취소 전의 관심 환기 및 경고 단계, 혹은 문제를 고칠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위험유산’ 등재 사례 중에는 세계적 명소인 오스트리아 비엔나 역사 지구나 독일 쾰른 대성당이 있습니다. 이들 유산은 각각 2017년과 2004년에 ‘위험유산’ 목록에 올랐는데요. 두 사례 모두 유산지구 내, 혹은 그 인근에 들어서기로 한 고층 빌딩이 문제였어요. 이들 세계유산이 위험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쾰른에서는 기존 계획을 중단하고 건물 높이를 제한하기로 결정하면서 위험유산 목록에서 해제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비엔나의 경우는 아직까지 해결에 이르지 못한 채 위험유산 목록에 올라 있는 상태입니다. 비엔나 시 당국은 해당 사업의 설계안을 계속 수정하면서 유네스코와 협의해 왔고, 올해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비엔나 시의 이러한 노력을 인정하면서 앞으로도 해결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1972년부터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유산 프로그램에서 등재 삭제가 이루어진 사례는 딱 3번 있었고, 그중 두 개 사례(독일의 드레스덴과 영국의 리버풀)가 세계유산 주변의 도시 개발과 관련된 이유였어요. 먼저 ‘드레스덴 엘베 계곡’ 유산의 경우, 도심 교통난 해소를 위해 엘베 계곡을 가로지르는 4차선 다리를 유산 지역 내 핵심 구역인 구시가 근처에 놓는 것이 문제가 됐어요. 유산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 대신 하저 터널을 건설하자는 안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시 당국이 주민 투표 결과를 근거로 다리 건설을 강행하면서 유네스코는 결국 2009년 해당 유산의 삭제를 결정했어요.
- ‘리버풀 해양무역도시’ 유산 역시 등재 삭제의 핵심 사유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었어요. 이곳은 ‘18-19세기 세계 무역 중심지로서의 항구 도시 가치와 선구적인 부두 기술’을 내세워 2004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리버풀이 ‘리버풀 워터스(Liverpool Waters)’라는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2012년 위험유산 목록에 올랐어요. 이후에도 시 당국은 19세기부터 있었던 유서깊은 브램리 무어 도크(Bramley Moore Dock)를 허물고 새 축구장까지 짓기로 하면서 유네스코의 시정 요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네스코는 2021년 세계유산 목록 삭제를 결정했고, 이 결정 직후 조앤 앤더슨(Joanne Anderson) 당시 시장은 “이곳을 그저 버려진 지역으로 남겨 두는 게 옳다는 유네스코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죠. 세계유산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개발 이익’이라는 달콤한 열매 사이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종묘를 허물겠다는 것도 아닌데, 문제가 될까?
-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 계곡과 리버풀의 사례를 보면 이런 의문도 들 수 있을 거예요. 18세기 궁전과 공원 등이 어우러진 ‘문화 경관’으로 등재된 엘베 계곡에는 유산 지역을 관통하는 거대한 다리가 놓였고, 리버풀은 해양 산업 유산을 허물고 축구장까지 지었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종묘 정전 앞마당도 아니고 그 바깥에 좀 높은 빌딩을 세우는 건 양호한 편 아니야?’라는 의문입니다.
-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1995년 종묘가 한국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던 당시에 인정받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등재 당시 종묘는 유네스코 등재 기준 (iv), 즉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축물,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를 충족시켰음을 인정받았는데요. 등재 심사를 관장한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1994년 10월에 제출한 평가보고서에서 “세계유산 부지 내의 시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지역에 고층 건물 건설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면서 ‘시각적 무결성(visual integrity)’의 보호를 특히 강조했어요.
- 이는 종묘의 가치가 단지 정전과 영녕전 등 건축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수백 년간 조선 왕실의 제례의식(종묘대제,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이 수행된 영적인 공간으로서 ‘고요한 공간 질서’와 ‘시각적 통일성(sight-lines)’의 유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니 유산의 직접적인 훼손 여부만이 아니라 그 주변 환경과의 시각적 관계나 공간적 맥락 역시 종묘라는 세계유산의 가치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에요.

+ 세계유산 종묘, 그럼 정말 위험한 거야..?
- 유네스코가 이 사안을 주시하고 있고, 인근 재개발이 종묘에 미칠 수도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WHC)는 이미 2023년 8월에 한국 정부(당시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내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한 바 있고, 올해 10월에도 재차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공식 서한을 보내면서 유산영향평가(HIA) 실시를 요청했어요.
- 물론 이러한 요청이 곧 ‘너네 잘못하고 있으니 이러다 삭제될 수 있어!’라는 경고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HIA는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에 따른 공식적 절차로서 해당 국가에 경고나 벌을 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유네스코가 인지한 문제에 대해 올바른 외교적·절차적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제안이기 때문이죠. 당사자인 서울시, 그리고 유네스코 권고를 집행할 책임을 지는 국가유산청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이고 올바른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뜻이에요.
+ 바람직한 해결 방안, 있을까?
-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전 세계에 했던 약속, 즉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호할 국제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나가느냐에 달려있어요. 세계유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네스코의 요청에 성실히 응하면서, 대립과 충돌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사 및 대화를 통해 적절한 해답을 찾는 것이죠.
- 그러한 소통과 연구, 고민의 과정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지역 개발을 비롯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정책에 적절히 반영해야 하는 서울시, 주무부처로서 유산의 보호와 관리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유산청, 그리고 세계유산 사업의 운영 주체인 유네스코를 오가면서 이들 간의 ‘연계’와 ‘협력’을 촉진하는 연락기구이자 자문기구가 바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더 많은 지식과 전문가들을 모으고, 솔직하고 건설적인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자리를 마련하면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종묘와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