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까지 과제 제출’이면, 금요일까지 내라는 거 맞죠? 🤔
‘사흘’은 4일이라는 뜻 맞죠? 😵💫
SNS 등을 통해 잊을 만하면 다시 주목을 끄는 요즘 세대의 ‘문해력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때론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때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런 논란, 여러분은 어떻게 보고 계셨나요? 특히 이런 논란의 주요 ‘타겟’이 되곤 하는 청년 세대로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할 텐데요. 더 이상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쳐 주지도 않고 순우리말을 접할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데, 그런 어휘들을 알지 못한다고 ‘문해력’까지 의심받는 건 옳은 일일까요? 오히려 한글로 쓰여진 키오스크 앞에서 햄버거 하나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문해력’은 괜찮은 걸까요? 아니, 애초에 지금 우리가 말하는 문해력이란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걸까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문해력이란 무엇인지, 여기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볼까 해요.

금일(今日)을 금요일이라고 해석하는 사람과 디지털 기기에 쓰인 한글을 읽어도 읽었다고 할 수 없는 사람. 21세기 한국인의 ‘문해력’은 이처럼 한 줄기의 현상만으로는 오롯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두 갈래의 ‘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해력,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요? 어떤 오해를 풀고, 어떤 대책을 세울 때 문해력은 미래에도 모든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 젊은층의 문해력, 진짜 ‘논란’ 맞을까?
먼저 젊은 세대의 소위 ‘문해력 논란’부터 짚어보기로 해요. ‘가제(假題)’를 ‘랍스터’라고 오해하고, ‘중식(中食)’을 중국 음식이라고 오해하는 일들. 주로 젊은 세대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런 사례들이 공유될 때마다 어김없이 ‘너무 심하다’라는 반응들이 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비난처럼 이것은 정말 요즘 세대의 문해력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여러 통계들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2022년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은 읽기 영역에서 OECD 국가 중 1-7위를 차지하는 등 매 조사 때마다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물론 전 세계적으로 읽기 영역의 점수 자체의 하락세는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2023년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조사한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서도 18-29세 청년층의 97.3%는 일상생활을 위한 문해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뜻하는 ‘수준 4’를 기록했고,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수준 4’에 해당하는 인구의 비율은 오히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낮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우리가 ‘논란’이라 부르는 와중에도 정작 국가 차원의 조사에서 젊은층의 문해력은 멀쩡하게 나타나는 이 역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사고 있는 그런 사례들이 사실은 진짜 문해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뜻일 겁니다. 실제로 사례에 나오는 단어의 다수가 일상생활에서 늘 쓰는 단어가 아닌 한자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은 ‘문해력’이라기보다는 ‘(한자어) 어휘력’에 관한 문제라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학교에서 한자를 배울 기회가 없어진 한글 세대로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경험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라면서, “기성세대의 언어에 편입된 사람들이 아직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을 개탄하거나 조롱하는 방식”(김중수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러한 지엽적인 사례가 아니라, 나이와 상관 없이 주어진 텍스트와 정보를 습득하는 요즘 사람들의 ‘태도’라는 지적은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매 순간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문자보다 영상 위주의 콘텐츠 소비가 많아지면서, 현대인은 이전보다 더 대충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하루하루 방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지며 그 변화의 폭도 큰 21세기 디지털 사회의 근본적인 속성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문자 자체의 해석보다는 디지털 시대의 정보 전달 과정 전반과 관계되는 문해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래서 문해력이란 뭘까?
한자어 어휘를 둘러싼 문해력 논란이 다소의 과장 혹은 지나친 일반화의 산물이라면, 디지털 기기를 조작하고, 디지털화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이른바 ‘어른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보다 실질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를 잘 못 쓰는 것이 문해력 문제야?’라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텐데요. 여기에 대해 유네스코는 정보화와 디지털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해’의 뜻도 이전보다 더 확장되고 있다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구체적으로 문해력이란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요? 글자 그대로 풀어본다면 문해란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이지만 유네스코는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누릴 수 있는 권리)’에 집중하여 문해력을 정의해 왔습니다.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 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문해력이 단지 ‘글과 출판물’을 통해서만 발휘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유네스코는 ‘문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텍스트 매개로 이루어지며, 정보가 풍부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식별하고 이해하며 해석하고 창조하며 소통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우린 이미 음식 주문, 명절 기차표나 극장 공연 예매에서부터 일자리 검색과 복지혜택 신청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일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요. 이러한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뒤처지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의 문해력 또한 점검하고 보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문해력
수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이란 단순한 전산화나 디지털화를 넘어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하여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람들은 이들의 활용과 관련한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어야만 하죠.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기존에 정기적으로 조사·발표해 오던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더해 지난해부터 ‘성인디지털문해능력조사’를 추가로 실시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입니다.

위 그림에서와 같이 2024년에 전국의 성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차 성인디지털문해능력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거의 절반(47.3%, 약 2026만 명에 해당)은 디지털 기기나 기술로 일상생활에서의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수준4’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아예 다루지 못하거나(수준1), 조작은 할 수 있지만 이를 일상생활에 활용하기에는 어려운(수준2) 사람은 각각 8.2%와 17.7%였고, 두 그룹을 합한 비율을 전체 인구에 적용하면 약 1109만 명에 달합니다.
무려 천만 명의 성인이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이 조사 결과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빠른 속도로 디지털 전환을 이루어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의 문해교육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지금의 디지털 전환은 정말 ‘모두를 위한 전환’이 되고 있는 걸까요? 더 빠르고 더 간편하고 더 효율적인 일상을 약속하는 이 변화가 ‘아직은 불편하고, 낯설고, 미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바람직한 변화가 되고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포용적이고, 더 공평하며, 더 나은 수준의 문해교육이 필요할 겁니다. 12월 중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선보일 『디지털 전환과 교육: SDG4 이행과 Post-SDG4 의제 설정』 보고서에서는 ▲포용성의 관점에서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문해교육 ▲형평성의 관점에서 비문해·저학력·성인학습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디지털 문해교육 ▲양질의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전문 지식과 교육 역량을 갖춘 디지털 문해교육 인력 확충을 제안하기도 했는데요(이은주·박민선, ‘디지털 전환 시대의 문해교육: SDG 4.6 달성을 위한 과제와 전략’). 이러한 노력이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질 때, 한글이라는 훌륭한 도구와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 덕에 오랫동안 ‘문해 모범국’으로서 빼어난 인적 자원을 배출해 온 우리나라는 21세기에도 계속해서 그러한 환경을 유지해 갈 수 있을 겁니다.
+ 21세기가 원하는 문해력이란?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의 문해력은 유네스코와 세계 각국의 노력 덕분에 분명 큰 진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유네스코 통계원(UIS)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86% 이상이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죠. 하지만 디지털 전환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때, 이 86%의 인구가 다가오는 미래에도 여전히 온전한 문해를 갖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살아갈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문해교육의 대상에도, 시기에도, 방식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문해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더 확장되어야 할 거예요. 유네스코가 오늘날의 문해력을 “일회성으로 습득하는 것(one-off act)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숙련하는 연속적인 과정(continuum of learning)”이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계속해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우리의 능력 역시 끊임없이 갱신되고 교육되어야만 합니다.
유네스코 문해교육 부문의 대표적인 상인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과 ‘공자 문해상(UNESCO Confucius Prize for Literacy)’의 최근 수상자(기관)들의 면면에서도 이처럼 더 넓어지고 새로워지는 문해의 관점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2025년도 세종대왕 문해상 수상 기관 중에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시각장애 학습자의 형평성 있는 문해력 증진을 위해 노력한 세네갈의 사례가 눈에 띕니다. 또 다른 수상 프로그램인 에콰도르의 INEPE는 학습자들의 문해력과 디지털 기술 함양을 동시에 겨냥하면서, 오정보(misinformation)와 온라인 폭력에 대처하는 어린이들의 비판적 디지털 활용법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공자 문해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공자 문해상 수상기관 중 하나인 아일랜드의 e-러닝 웹사이트는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디자인을 통해 16세 이상의 개인에게 문해력, 수리력 및 기타 기술에 대한 포괄적인 과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방식의 문해력 향상만으로도 갈 길이 바쁜 개발도상국에서 그러한 디지털 교육은 아직 시기상조 아니냐고요? 유네스코는 2025년 세계 문해의 날 주제를 ‘디지털 시대의 문해 증진(Promoting Literacy in the Digital Era)’으로 설정하면서, 오히려 기초 문해교육이 닿지 않는 지역의 사람들이 디지털 전환으로부터도 배제되는 ‘이중 소외(double marginalisation)’가 교육의 포용성과 형평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Enuma)’와 함께 동티모르와 탄자니아 등지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확산해 나가고 있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활동 역시 또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와 개인화된 디지털 기기, 그리고 학습과 경쟁력의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고 있는 인공지능. 이러한 시대에서 변화하는 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습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바르게 읽고, 이해하고, 셈하는 ‘고전적인 형태의 문해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방대한 정보의 바다 앞에서, 그리고 나날이 새로 등장하고 변화하고 있는 기술 앞에서, ‘21세기 관점의 문해력’을 모두가 갖추도록 해 주는 일도 소홀히 여겨선 안 됩니다. 읽고 쓰고 셈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자원을 활용해 내게 필요한 것을 검색하고, 그 사이에서 ‘진실’을 가려내며, 동시에 나에 관한 정보를 안전하게 지켜낼 줄 아는 능력을 모두 갖출 때, 우리는 스스로를 21세기에 맞는, 미래 세상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문해자’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