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직무대행, 미래혁신본부장
(2025-2026 한국교직원 일본방문단 단장)
| 2001년 시작된 한일교사대화는 한국과 일본의 교직원들이 각국 교육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서로의 교육 현안에 대해 이해를 넓히고, 협력과 연대를 이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사교류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양국 교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유네스코아시아문화센터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한국 교육부와 일본 문부과학성의 지속적인 후원으로 25년째 이어져왔다. 올해 7월에는 일본 교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하였고, 11월에는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여 예년보다 앞당겨 한국 교직원들이 일본을 찾아 성공적으로 교류가 진행되었다. 11월 3일부터 9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일본 지바와 도쿄 지역에서 개최된 ‘한일교사대화: 2025-2026 한국교직원 일본초청연수’는 ‘새 시대의 새로운 배움과 이상적인 교사상 탐구’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번 연수에서 단장으로서 방문단을 이끈 윤병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직무대행의 후기를 전한다. |
18년 만의 재방문, ‘가까운 이웃’을 다시 생각하다
18년 전, 인솔자 중 한 명으로 처음 일본 학교를 찾았던 2007년. 기억은 어렴풋한 풍경이 되었다가도, 어떤 장면들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사카와 가까운 다카라즈카시의 가극을 관람할 때의 감동,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맑은 눈빛, 홈스테이 가정의 온기. 나는 그때 ‘가까운 이웃’이란 말이 지리적 거리만을 둔 외교적 수사가 아님을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2025년 11월 3일, 나는 ‘한국교직원 일본방문단 단장’이라는 묵직한 이름표를 달고 다시 나리타 공항에 섰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자, 양국 교사 교류 25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18년 전의 설렘은 ‘책임’이라는, 사뭇 다른 무게로 어깨에 내려앉았다.
첫날 저녁 환영 만찬에서 나는 1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가만히 포개어 보았다. 문부과학성 미야자와 다케시 국제협력기획실장과 기념 선물을 주고받으며, 선한 인상의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협력’의 의미를 곱씹게 했다. 그는 미국 월드 시리즈에서 활약한 세 명의 일본 선수와 한 명의 한국 선수(김혜성)를 함께 언급하며,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일본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야구 글러브를 기증한 일화를 소개했다. 학교에 방문하면 아이들의 야구 사랑을 실감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스포츠를 통한 교류가 교육 현장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연결 고리가 느껴졌다.
이 자리에는 야치요시 교육위원회의 미네기시 슈이치 교육장도 함께했다. 그는 환영 만찬뿐 아니라, 이후 우리가 방문한 오와다남(南)초등학교와 오와다 중학교 일정에도 동행하며 자신의 확고한 교육 철학을 들려주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율적으로 학교 생활과 배움, 행사를 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이를 야치요시의 학교에서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확신에 찬 신념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을지, 어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11월 4일, 야치요시에서 느낀 ‘진심’이라는 첫인상
다음날에는 A그룹 28명의 한국 교직원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첫 번째 방문지는 치바현 야치요시립 오와다남초등학교였다.
학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우리 방문단은 일순간 아이돌 스타라도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운동장과 좌우 양쪽 건물 교실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며 환영해 주었고, “안녕하세요!”를 연발했다. 그토록 순수하고 열렬한 환대라니. 이것은 일정표에 적혀 있지 않던 첫 감동이었다.
진심은 그런 거창함에만 있지도 않았다. 건물로 들어서자 입구뿐 아니라 복도와 교실 곳곳에 붙어 있던 작은 포스터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태극기와 일장기, 떡볶이 그림 옆에, 서툰 솜씨지만 한글로 또박또박 눌러 쓴 “오와다남초등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그림과 글씨에서 외교적 언어가 아닌, 사람의 마음과 꾸밈없는 ‘진심’을 읽었다.
다카하라 케이스케 교장 선생님은 이날 특별히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 차림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전날 만찬에서 보았던, 키 크고 성격 밝아 보이던 바로 그분이었다. 학생 수 718명, 27학급. 이곳이 ‘유네스코 학교'(ASPnet)라는 사실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일하는 나에게 더없이 반가운 공통분모였다.
학교의 진심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학교 방문 후 며칠 뒤인 토요일 폐회식에 참석한 다카하라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학교 홈페이지 화면을 직접 보여주었다. 우리가 학교를 떠나자마자 홈페이지에 그 소식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 세리머니, 학교 설명, 수업 참관, 아이들과 함께 급식 먹고, 한국 교직원과 아이들의 교류, 매우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그 한 문장에서 이 만남을 얼마나 소중히 준비하고 받아들였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교실 속의 ‘본질’, 급식 시간
내가 단장으로서 마지막 날 폐회식 인사말에 담은 ‘아이들과 급식을 함께 먹었다’는 한마디에는 사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깊은 감명이 담겨 있다. 그 순간은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번에 방문한 학교 점심 식사 시간에 손님용 식당이나 교사 휴게실로 안내받지 않았다. 오와다남초등학교에서 나는 4학년 1반 교실에서 아이들과 똑같은 급식판을 앞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단장인 나도,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도, 모두 그저 함께 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되었다.
교육의 본질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 이전에, 관계를 맺는 공간. 우리는 그날 점심, 단순한 급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관계’를 나눈 셈이다. 18년 전 느꼈던 그 ‘맑은 눈빛’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더 깊이 알 것 같았다.
11월 5일 & 6일, 현장에서 마주한 깊은 성찰
이번 방문은 내게 ‘살아있는 질문’ 하나를 던져주었다. 오와다남초등학교 자료에서 유독 눈에 띄던 한 단어, ‘소지지만(そうじじまん)’, 즉 ‘청소 자랑’이었다. 다음 날 방문한 오와다 중학교 역시 ‘청소’를 학생 활동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었다.
오와다남초등학교에서 우리는 급식이 끝난 후 그 ‘자랑’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뛰어나가는 대신, 익숙하게 빗자루와 걸레, 쓰레받기를 집어 들었다. 교실, 복도, 심지어 화장실과 야외 화단까지, 불평하는 아이도, 재촉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청소도 교육의 일부”라는 철학이 담긴, 자신들이 머문 공간을 친구들과 힘을 합쳐 가꾸는 ‘교육’ 그 자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모습을 보며 50여 년 전 교실 마룻바닥에 다 함께 초칠을 하고 걸레질을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이, 어쩌면 우리 교실은 가장 본질적인 교육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에 대한 비교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떠올리지 못했을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기술의 발전과 기후 위기, 저출생의 거대한 도전 앞에서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교실 바닥을 닦는 저 작은 행위 속에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존중이라는 교육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이야말로 이번 방문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러한 성찰은 청소 시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와다남초등학교에서는 15분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고학년과 저학년이 10명씩 그룹을 이뤄 함께 게임을 했다. 오와다 중학교는 전교생 90% 이상이 매일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유독 운동 동아리가 많았고 대부분 학교 체육복 차림이었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몸으로 부대끼며 배우는 교육이 이곳에선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우리가 목격한 청소 자랑, 고학년과 저학년이 어울려 놀던 15분의 게임 시간, 그리고 중학교의 활발한 동아리 활동. 이 모든 것은 그저 개별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이는 첫날 만찬에서 들었던 미네기시 교육장의 ‘학생이 주인 되는 교육’이라는 철학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일정을 넘어선 교감(交感), 사람, 그리고 관계
이런 감동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오와다 중학교 방문 일정에는 학생들과 함께 우리 한국 선생님들도 청소하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섞여 자연스럽게 빗자루를 들고 함께 땀 흘리는 모습은, 언어를 넘어선 진실한 교감의 순간이었다.
진심은 또 다른 진심을 낳았다. 11월 5일, 가정 방문의 날, 나와 A그룹의 유선희 진경여자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이근연 팔달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두 분은 아주 특별한 초대를 받았다. 바로 전날 만났던 오와다남초등학교의 다카하라 케이스케 교장선생님이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기꺼이 초대한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가족(역시 초등교사인 부인과 큰아들), 그리고 같은 학교의 젊은 교사 부부와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정성스러운 일본 가정식에 더해, 그 자리에는 특별한 메뉴가 하나 추가되었다. 다카하라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방문하기 전 미리 부침개 재료를 준비해 두고는, 우리 방문객이 직접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는 우리를 그저 손님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하는 과정 자체로 편안함을 나누려는 깊은 배려일 터였다. 마침 함께 가신 유선희 교장 선생님께서 “제가 잘합니다”라며 기꺼이 나섰고, 그 덕분에 우리는 정성스러운 일본 가정식과 한국의 부침개가 정겹게 어우러진 특별한 저녁을 나눌 수 있었다. 그 따뜻한 환대는 이번 방문에서 잊지 못할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에필로그: ‘살아있는 질문’을 안고 돌아오다
일주일간의 짧은 여정은 끝났다. 돌아오는 내 머릿속에는 ‘일본 교육은 이렇다’는 섣부른 답 대신,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어야 할까?”, “학교는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라는, 조금은 묵직한 ‘살아있는 질문’들이 맴돌았다.
이 질문들은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강의를 통해 더욱 깊어졌다. 11월 8일에는 도쿄가쿠게이대학 이와타 야스유키 교수의 강의와 교류회가 이어졌다.
이와타 교수는 ‘동아시아의 교사상’이 마주한 ‘포스트모던 정체성 위기’를 진단하며, 학교 폭력, 등교 거부 등 ‘배움으로부터의 도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교사의 역할 변화를 강조했다. 과거의 지식을 ‘가르치는(teaching)’ 존재에서, 이제는 학생의 배움을 ‘지원하는(supporting)’ 역할로, 나아가 상담사, 사회복지사 등과 협력하는 ‘팀 학교(School as a Team)’의 일원으로서 역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현장에서 본 아이들의 청소와 급식, 운동장에서의 달리기, 그 모든 장면이 교수님의 강의와 겹쳐지며 ‘교사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중요한 것은 교사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교류회 마지막, 우리 선생님들이 준비한 ‘강강술래’를 모두가 함께 펼치고 기념 촬영을 할 때, 나는 이 깨달음이 양국 교사들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8년 만에 다시 찾은 일본의 교실에서, 나는 25년간 3,300명의 교직원들이 오가며 가꾸어 온 ‘우정의 나무’가 여전히 푸르고 튼튼함을 확인했다. 이제 우리 위원회에 남겨진 과제는 이 프로그램의 한국측 주관 기관으로서 현장에서 얻은 이 귀한 질문들을 더 깊이 있게 나누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한일 양국 교사들의 상호이해를 굳건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의 우호 친선을 증진하며, 나아가 학교 교육 현장이 공통으로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는 소중한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을 기울이겠다.
끝으로, 이번 연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신 유네스코 아시아 문화센터(ACCU)의 구리야바시 다다시 부장님, 그리고 59명 참가자들의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주신 다시로 나리카 님과 야마모토 미쿠 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