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 이미지를 만들고, 몇 초짜리 ‘햄찌’ 영상을 만들어 보면서 전기요금 걱정을 해 보신 분, 혹시 있으신가요?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에어컨이나 보일러와 달리 AI 서비스는 사용한 만큼 에너지 요금이 부과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사용자에게 에너지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게 반드시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사실, AI 관련 데이터센터가 쓰고 있는 에너지 양이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데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유네스코도 여기에 관심을 쏟는 그룹 중 하나입니다. 굴뚝도 배기가스도 없는,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AI 관련 시설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요? 그리고 AI의 에너지 효율성은 AI가 주도하는 미래 모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오늘 뉴스레터는 소리없이 조용한, 그렇다고 마냥 깨끗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AI의 숨겨진 에너지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 이번 뉴스레터에 언급된 주요 수치들은 유네스코 보고서 『Smarter, Smaller, Stronger: Resource Efficient AI and the Future of Digital Transformation』와 《MIT Technology Review》의 기사 “We did the math on AI’s energy footprint. Here’s the story you haven’t heard”를 참고했습니다.
+ 쉿, 우리 AI가 얼마나 먹는지는 비밀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책상 위 컴퓨터에서, 혹은 기업의 데이터센터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소리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AI의 모든 작동 단계에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은 분명할 텐데요. 그 비용이 사용자에게 직접 청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불하는 AI 사용료(구독료)의 일정 부분을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죠. AI 사용료 자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상되지 않는 한, 적어도 당분간은 사용자들이 그 구체적인 에너지 비용을 궁금해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AI와 시시한 농담을 주고 받을 때, 혹은 AI를 활용해 보고서를 요약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 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있습니다. AI는 일상의 모든 영역에 더 긴밀하게 통합될 것이고, AI를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거기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누적되어 이전에 없었던 환경 발자국을 지구에 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AI 기업들은 저마다 사용자들에게 AI가 그려나갈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사의 AI모델이 얼마나 큰 환경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는 명확히 밝히려 하지 않습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똑같은 명령어라도 AI 모델의 유형과 크기, 생성물의 종류, 데이터센터가 연결된 전력망이나 명령어가 처리되는 시간대 등 수 많은 변수에 따라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 배출량은 수천 배나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AI에 들어가는 에너지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과 예측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정보 공개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앤트로픽의 클로드 등 오늘날 AI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사의 AI 모델을 폐쇄형으로 운영하고 있고, 사용자가 내린 명령어가 데이터센터로 넘어간 이후의 과정은 영업비밀이라며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도 아직까지는 여기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업별로 에너지 사용 현황을 집계하고 예측치를 제공하는 미국의 에너지 정보국은 2025년 현재까지도 AI 업계의 에너지 사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나 연구소들은 오픈소스로 공개된 일부 AI 모델의 측정치, 그리고 이미 공개된 여러 보고서로부터 실마리를 찾아 AI의 에너지 사용량을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 AI의 ‘환경 할부금’은 이제 시작일 뿐
자선 모금 활동을 준비하는 사람이 AI 모델에 질문을 15번 던져 원하는 자료를 얻고, 10번을 시도해 마음에 드는 전단지용 이미지를 만들고, 3번 시도 끝에 5초 짜리 짤막한 홍보 영상을 만들 경우 전체 AI 시스템이 사용한 전력 사용량은 약 2.9kWh(킬로와트시)다.
이 시뮬레이션에서 도출한 2.9kWh는 스탠드형 에어컨을 약 3-4시간 정도 쓰는 정도의 전력 소비량입니다. 이 정도면 많다고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원 기사에서도 밝혔듯 추정에 추정을 거듭하여 도출한 이러한 시뮬레이션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 그리고 유네스코의 「인공지능 윤리 권고」에서도 AI 기업들이 좀 더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추정에 기반한 데이터만으로는 현상에 대응하는 명확한 해결책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효과적인 예방책도 도출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기업들이 세부적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음에도 AI 업계 전반의 전력 소비량이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통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AI 관련 설비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2017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추세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에 따르면 2016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폭발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데이터센터의 전체 전력 소비량은 매우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이 기간에 스트리밍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적지 않은 데이터센터가 지어졌음에도 센터 설비의 에너지 효율성이 개선되면서 에너지 소비 증가폭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AI 관련 인프라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7년부터 그래프의 기울기는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해, 2018-2023년 기간 동안 미국 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76TWh(테라와트시)에서 176TWh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연구소는 그 원인으로 “에너지 집약적인 고성능 GPU 칩을 중심으로 한 AI 특화 데이터센터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해 그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AI 업계를 콕 집어 언급했습니다. 나아가 보고서는 2024년에 미국의 데이터센터들이 태국 전체 1년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약 200TWh의 전력을 사용했으며, 그중 53-76TWh가 AI 전용 서버의 몫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더 걱정되는 부분은 지금까지의 증가세가 미래의 증가세를 예측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AI기업들은 자신들의 서비스가 그저 ‘재미로 한 번 써볼 만한 것’, ‘기초적인 검색과 요약을 써 보는 것’으로 머무르길 원치 않습니다.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일을 맡길 수 있는 ‘에이전트’로서의 AI는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이미 엄청나게 커진 AI라는 거인의 보폭은 갈수록 넓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AI의 환경 발자국은 역사상 가장 작은 AI의 환경 발자국일 것”이라는 주장(MIT Technology Review)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 AI 환경 발자국의 진짜 의미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 그리고 타국에 종속되지 않는 ‘AI 주권’을 확보하려는 각국의 노력은 이제 이익 창출을 위한 경쟁을 넘어 생존을 건 ‘군비경쟁’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AI 업계에 ‘성능’이 아닌 ‘환경’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AI 반도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어렵다면,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더 많은 친환경 발전을 통해 조달하는 것도 방법일 텐데요. 하지만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데이터센터는 여전히 친환경 에너지보다 화석 연료에 훨씬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간 전통적인 ‘굴뚝산업’과 대비되는 친환경 이미지를 누려온 메타, 아마존, 구글과 같은 기업들은 앞으로 폭증할 자사의 AI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대안으로 아예 원자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재생에너지 산업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전체의 20% 수준인 자국의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40년까지 4배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원전 자체의 위험성은 차치하고라도, 부지 선정부터 허가, 발전소 건설에 소요될 최소 수 년 이상의 기간 동안 이들 기업은 폭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더 많은 화석 연료 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AI의 높은 에너지 의존성이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걱정거리입니다. AI의 개발과 활용 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인구의 32%(약 26억 명, 2024년 기준)는 인터넷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전체에서 AI에 관심이 있는 인재 중 단 5%만이 필요한 컴퓨팅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이들 지역의 국가들이 그나마 최소한의 AI 관련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적은 전력을 소모하면서도 적절한 성능을 내며 가동될 수 있는 AI 모델이 필요합니다. 마치 대규모 정수 시설을 짓는 것보다 단순히 물을 길어 나를 수 있는 가볍고 편리한 물통을 보급하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 특정 사회의 정치·문화·환경적 조건을 고려하여 그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생산 및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의 사례처럼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고성능·고발열의 GPU가 집적된 데이터센터의 열을 식히기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수자원 문제도 짚어야 하는데요. 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촌의 물부족 현상과 맞물려 물 안보를 둘러싼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일부 선진국의 시민들에게 이와 같은 우려들은 ‘당장 나와는 상관 없는 먼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좀 더 가까이 느껴질 수 있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몇몇 주들은 대규모 전력 단가 할인을 약속하면서 AI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하버드대 전력법 이니셔티브(Harvard’s Electricity Law Initiative)는 그러한 인센티브가 결국 일반 가정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은 굳이 알리려 하지 않고 대중은 관심을 갖지 않는 사이, AI의 숨은 에너지 비용의 청구서는 우리 모두에게 직·간접적인 경로로 부과될 수 있습니다. AI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는 일이 곧 “혁신의 혜택을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하는 포용성과 공공성의 문제”(유네스코 보고서)인 이유입니다.
꼭 엔지니어가 아니라도 성능과 지속가능성(에너지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어려운 일을 더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둘 다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대개 ‘성능’이나 ‘비용’이 우선시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은 모두가 고통을 겪은 뒤에야 고칠 수 있었음을, 우린 지난 역사를 통해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환경을 도외시한 무분별한 개발 우선 정책들…. ‘함께’의 가치를 도외시했던 그러한 선택들의 청구서는 언제나 뒤늦게 발송되었고, 그 부담은 근본적 변혁이 이루어질 때까지 모두가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AI의 시대에는, 먼 길을 돌아가기 전에 첫 단추부터 잘 끼우는 방법을 모두 함께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다행히 아직 출발선에서 그리 멀리 오지는 않았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더 치열하게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다면, 설계와 배포, 그리고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훨씬 더 깨끗하고 공평한 AI를 만들 기회가 아직 우리 앞엔 있습니다.
이슈쿠키 돋보기🔎 I 유네스코가 제안하는 AI의 ‘저탄고지’ 방법
지난 7월 유네스코가 발간한 보고서 『Smarter, Smaller, Stronger: Resource Efficient AI and the Future of Digital Transformation(더 현명하고 작고 힘센, 자원 효율적인 AI와 디지털 변혁의 미래)』는 정부와 업계 및 AI를 사용하는 대중들이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속가능한 AI 생태계를 꾸려나가는 데 힘을 보탤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비교적 간단한 개선만으로도 AI의 에너지 효율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 사례들이 실려 있는데요. 이를 통해 ▲용도와 목적에 맞는 더 작고 효율적인 AI 모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효율적인 작은 모델들 간 연결성을 높여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성능을 높이고 ▲양자화(quantization)와 같이 AI 모델의 몸집을 줄이고 프롬프트의 압축률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지금보다 더 효율적인 AI를 만들 여지가 충분하는 것을 실증해 보였습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유네스코는 ▲AI 발전과 혁신 단계에서 대담한 투자와 전략적 파트너십 및 협력을 통해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깨끗한(Clean by Design)’ AI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가전제품의 에너지 인증과 같이 알기 쉬운 공개 지표를 마련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면서 친환경 표준을 제정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고 ▲대중들이 AI 자체의 장점과 위험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고 자신의 필요에 맞는 AI를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AI 문해력’을 높일 교육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