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생각을 디지털 신호로 곧바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을까요? 1984년에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사이버펑크(cyberpunk;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SF의 하위 장르)의 시초로 꼽히는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그런 세상은 상상의 영역에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41년이 흐른 2025년 현재, 그것은 이미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거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현실이 이미 공상의 영역을 뛰어넘은 수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컨대 오늘날의 과학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묘사된 것처럼 머리에 거추장스런 ‘플러그’ 같은 것을 꽂을 필요도 없이 두뇌의 신호를 스캔하고 있습니다. 신호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이렇게 뇌의 전기적 신호, 즉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들이고 해석하고 그것을 디지털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열린다는 것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그 변화란 모두에게 위협이 될까요, 아니면 새로운 삶과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기회가 될까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신경기술(neurotechnology)의 발전이 열어갈 미래가 모두에게 바람직한 미래가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술, 희망과 우려 사이
2018년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자유롭게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었더라면, 우주와 시간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었을까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일명 ‘루게릭병’)으로 돌처럼 굳어가는 몸 안에서도 호킹 박사의 뇌는 누구보다도 멀고 깊은 곳을 응시하면서 사색과 계산을 반복했을 텐데요. 그의 생각과 마음이 좀 더 자유롭게 말과 글로 바뀌어 세상과 만나도록 하기 위해 전 세계 과학계는—무엇보다 호킹 자신도—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인텔(Intel)과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자금과 도구를 지원한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호킹에게 주어진 최선의 방안이란 그가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는 뺨 근육을 컴퓨터가 인식해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고, 원하는 단어나 알파벳을 선택해 문장을 만들면 이를 컴퓨터 음성으로 변환하는 정도였습니다. 당연하게도 호킹은 생각을 두뇌 밖으로 즉시 ‘스트리밍’해줄 수 있는 기술, 즉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가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라 여기면서 그런 기술이 개발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한 기다림을 뒤로한 채 호킹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두개골을 열지 않고 뇌혈관 속에 삽입해 뇌의 신호를 읽어들이는 최초의 BCI 기기인 스텐트로드(Stentrode)에 ‘혁신 기기 인증(breakthrough device designation)’을 부여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읽어들이는 첫 번째 관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습니다.
+ 신경기술의 눈부신 질주
스티븐 호킹이 애타게 기다렸을 BCI 기술은 오늘날 신경기술(neurotechnology)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입니다. 신경기술이란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에 접근하고, 모니터링하며, 그것을 조사·평가·조작·모방하는 데 사용되는 일련의 장치와 절차를 포함하는 기술 영역”을 말하는데요(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 『Ethical Issues of Neurotechnology』). 달리 말해 뉴런에서 발생해 다른 뉴런으로 전달되는 전기적 신호를 읽어들여 이를 해석하고, 필요한 경우 적절한 전기 신호를 뇌에 기록할 수도 있는 방법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기술 분야입니다. 이처럼 뇌와 신경계의 전기적 신호를 효과적으로 읽고 쓰기 위해서는 신경과학뿐만이 아니라 공학, 데이터 과학, 정보통신기술(ICT), 그리고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의 융합이 필수적입니다. 이 분야가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 사이 전 세계 신경기술기업이 유치한 투자금은 7배나 증가해 총 332억 달러(약 46조 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미국은 2013년부터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를, 유럽연합은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발족시키는 등 신경기술분야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998년부터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하고 시기별로 전략을 마련해 시행해 왔는데요. 덕분에 2000-2020년 사이 전 세계 신경기술 분야 특허출원 건수에서 한국(11%)은 미국(47%)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유네스코 『꾸리에』 2022년 1-3월호).
각국이 이처럼 신경기술 분야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이유는 역시 무궁무진한 경제적 가능성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꾸리에』(2022년 1-3월호)에 따르면 편두통에서부터 뇌졸중과 뇌전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경 및 정신계 질환의 치료를 위해 유럽연합 국가에서 2014년 한 해 동안 지출된 비용만도 무려 8천억 유로(약 1288조 원)에 달합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알츠하이머 관련 치료비용은 연간 2조 유로(약 32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편두통을 포함한 신경 및 정신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뇌의 전기 신호를 읽고 쓰는 기술이 정말로 우리를 지긋지긋한 두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난 20여 년 사이에 신경기술이 이루어낸 성과는 실로 눈부십니다.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30세 청년이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여 컴퓨터로 멀티태스킹을 하게 됐다는 소식, 말을 할 수 없는 여성의 뇌 신호를 읽어들여 분당 62-78단어의 합성 음성을 내보낼 수 있게 됐다는 소식, 파킨슨병 환자의 뇌파 변화를 감지해 필요할 때마다 적응형 자극을 내보냄으로써 경련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의료기기가 공식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 등을 보노라면 인류는 머잖아 장애의 불편함이 없는 세상을, 두통의 성가심과 치매의 비극이 없는 일상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처럼 보입니다.
+ 인권과 윤리에 기반한 가이드라인이 지금 필요한 이유
하지만 세상의 모든 편리하고 좋은 기술들이 그렇듯, 신경기술 역시 그 무한한 가능성과 활용성이 의학적 치료를 넘어선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제 그 다음 단계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억, 감정, 판단 등은 개인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요소인데요. 이러한 요소들을 분석하고 심지어 변형시키는 게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면, 개발과 활용 단계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미리 설정해 둘 필요는 없을까요?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러한 선을 어디에, 어떻게 그어야 할까요?
신경기술이 치매 환자에게서 시시각각 사라져가고 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지켜줄 수 있다면, 일생일대의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기억력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신경기술이 사랑과 애착을 나타내는 뇌 활동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다면, 절대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신제품을 내놓고 싶은 기업들은 마케팅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려 할 것입니다. 2022년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IBC) 의장이었던 에르베 슈네이바이스(Hervé Chneiweiss)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소장은 이런 이유로 인간의 뇌 데이터가 “의료 분야를 훨씬 넘어서는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말하면서, 비의료적 분야에서 신경기술의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윤리와 인권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업계 일부에서는 현재의 신경기술이 정말로 인간의 뇌를 조작하거나 조종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엄청나게 많이 남았기에 벌써부터 ‘규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합니다. 실제로 괄목할만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은 아직 보편적인 수준에서 인간의 뇌 신호를 읽어들여 해석하거나 뇌에 특정한 정보를 입력해 행동을 유발하는 방법은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Electric Brain》 등 다수의 관련 저서를 펴낸 미국의 신경과학자 더글라스 필즈(Douglas Fields) 박사는 “특정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뇌 신호를 발견했더라도 인간 뇌 안에 있는 수십억 개 뉴런 중 어떤 것을 자극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하며, 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효과가 있는 뉴런이 다른 사람의 뇌에서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할 수도 있다”는 등의 한계도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대중들 사이에서 ‘두뇌 해킹이 가능해진다’라는 식으로 퍼지고 있는 두려움은 적어도 당분간은 “현실이 아닌 판타지에 가깝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 진보를 방해하는 장벽이 아닌, 모두가 공유해야 할 안전한 출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는 지난 몇 년간 각국 정부와 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인간의 두뇌 및 그 속의 모든 정보가 완전하게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신경기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왔습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최고·최후의 보루인 뇌를 완전하게 보호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너무 늦기 전에 해 두어야 할 일”(라파엘 유스테(Rafael Yuste) 뉴로라이츠 재단(NeuroRights Foundation) 의장 겸 컬럼비아대 신경과학 교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와는 별개로, 그리고 뇌 조종이나 생각의 해킹에 대한 우려가 정말로 환상에 불과한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이미 전 세계는 의료 목적을 넘어서는 영역에서 신경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는 1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억력을 향상시켜 줄 뇌 임플란트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메타(Meta) 등의 다른 기업들 역시 신경기술, 인공지능, 가상현실 분야의 최신 성과들을 접목해 마케팅과 게임, 교육 등의 분야에서 인간의 뇌를 더 잘 활용할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술은 일차적으로는 뇌가 아픈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간격을 메워주게 되겠지만, 더 나아가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혹은 활용할 수 있는 자와 그럴 수 없는 자 사이에 결코 건널 수 없는 골짜기를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우리 두뇌 속의 가장 내밀한 정보의 유출이나 허락받지 않은 사용 등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도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 기업들 스스로에게도 더 안전한 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4년 전, ‘인공지능 윤리 권고’를 마련할 때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는 이 새로운 기술이 모두에게 이롭게,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 발전을 뒷받침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바람직한 출발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것은 진보를 두려워해서 세우는 장벽이 아니라, 진보의 달콤한 결실 앞에서 흔들리게 될 인간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안전장치로서 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 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이 먼저 그 소유자의 인격과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자는 약속. 그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약속 위에서만이 우리는 한없이 신비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머릿속 세상으로의 여정을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슈쿠키 돋보기🔎 I 유네스코 신경기술 윤리 권고 (Recommendation on the Ethics of Neurotechnology)
오는 11월에 열릴 유네스코 총회에서 유네스코는 지난 2021년에 채택된 인공지능 윤리 권고에 이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권고안인 ‘신경기술 윤리 권고’를 채택할 예정입니다. 이 권고안은 최근 몇 년간 상당한 발전을 이룬 신경기술 분야가 신경 질환 및 정신 건강과 관련된 의료적 필요를 해결할 잠재력과 실제적인 이점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 발전이 인권 및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강력한 존중을 기반으로 윤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입니다. 전 세계 24명의 독립적인 전문가로 구성된 임시 전문가 그룹(AHEG)이 몇 년간의 연구와 논의를 거쳐 마련한 초안은 신경기술이 ▲뇌/정신적 완전성 및 인간 존엄성 ▲개인 정체성 ▲사고의 자유, 인지적 자유 및 자유 의지 ▲정신적 프라이버시 및 뇌 데이터 기밀성 ▲분배 정의 ▲아동의 권익 ▲사전 동의의 측면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각 회원국과 연구 공동체, 산업계, 미디어와 대중에게 각각 필요한 권고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각국의 실행을 보장할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지만, 이러한 유네스코의 권고는 새로운 기술 연구와 적용이 인권과 윤리의 틀 안에서 더 안전하고 공평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등대’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회원별 의견 수렴 및 수정을 거쳐 마련될 최종 권고안이 집행이사회를 거쳐 총회에서 채택되면, 그 소식 역시 여러분께 발빠르게 전해드릴테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