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충남 서산 도비산 자락의 사찰 부석사. 5월 날씨답지 않은 스산한 비가 내리는 절 앞마당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산을 쓴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에 빗물이라도 들어갔는지, 몇몇은 촉촉한 눈가를 손수건으로 훔치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설법전에서 큼지막한 나무 상자 하나가 인부들의 손에 들려 나와 특수운송차량에 실렸고, 스님들은 상자가 차량에 고정되고 길을 떠날 때까지 눈을 떼지 않은 채 ‘관세음보살’을 외었습니다. 스님과 불자들이 이토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웅한 상자 속에는 약 50cm 높이의 자그마한 불상이 들어있었는데요. 원래 부석사에 있던 이 불상은 고려 말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상은 이후 일본 대마도의 간논지라는 사찰에 보관돼 있었고, 2012년 한국의 절도범들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뒤 당국에 압수된 상태였습니다. 부석사 측은 여러 기록을 근거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10년에 걸쳐 소송을 벌였지만, 2023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불상은 이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남아있는 역사적 사료, 그리고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라고 판결한 법원조차 이 불상이 왜구에 약탈됐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상이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약탈당한 게 분명한 문화유산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면, 유산을 보호하고 문화유산의 불법 거래를 막고자 하는 유네스코의 협약과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오늘은 여러 이유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과 유네스코를 둘러싸고 있는, 그 녹록지 않은 현실적인 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 647년 만에 돌아온 불상이 다시 떠나야 했던 이유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범들이 대마도의 간논지(観音寺, 관음사)에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훔쳐왔다 경찰에 붙잡혔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은 평범한(?) 국제 유물절도사건에 불과했습니다. 불상은 당연히 원 소유자인 간논지에 돌려줘야 할 ‘장물’이었죠. 그런데 불상 안에 ‘고려국 서주에 있는 부석사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결연문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서주는 서산의 고려시대 지명이었고 고려 전기에 이곳에서 창건된 서산 부석사가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가게 됐고, 2017년 1심 법원은 부석사의 손을 들어줍니다. 1330년 이후 서산 지역에 5차례에 걸쳐 왜구들이 침입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한·일 양측 모두에 남아 있고, 전체 구성이 완전하지 않으며 일부 불에 탄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불상이 약탈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반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2023년 2월에 있었던 항소심과 같은 해 10월의 상고심에서 뒤집혔고 간논지 측의 최종 승소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판결 결과가 바뀐 결정적 이유는 ‘취득시효’라는 민법상의 법리였습니다. 취득시효란 일정한 기간(20년) 이상 어떤 물건 또는 재산을 공공연하고 평화롭게 점유한 측에 소유권을 인정해 준다는 개념인데요. 이에 따라 법원은 불상이 비록 과거 왜구에게 약탈당한 것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1953년 법인 전환 이후 60여 년간 불상을 보유해 온 간논지가 취득시효를 완성함으로써 불상의 정당한 소유자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온 뒤 부석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부석사는 간논지 측에 송환 전 100일만이라도 불상이 원래 있던 곳에서 신도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았고, 불상은 지난 1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부석사에 머무르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4만여 명의 신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으로 647년 만의 고향 방문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 문화유산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들
이번 불상 송환 문제를 바라보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문화유산은 원래 있던 곳에 있어야 한다’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생각이 실질적인 문화유산 환수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제자리에 있지 못한 문화유산을 다루는 문제에서 전 세계 국가들은 비교적 뚜렷하게 ‘잃어버린 측’과 ‘가져간 측’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들은 이집트, 그리스, 멕시코, 한국과 그외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반출된 문화유산을 수없이 많이 갖고 있습니다. 유산을 잃어버린 측에서는 이들 문화유산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빼앗긴 것일 뿐만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함으로써 유산의 본래 가치도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유산을 보유한 측에서는 일부 부당한 사례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수의 유산들이 해당 시기에 정당하게 반출되거나 합법적으로 거래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유산을 ‘인류 전체가 함께 보호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말합니다. 앞의 주장은 문화 국가주의(cultural nationalism), 뒤의 주장은 문화 국제주의(cultural internationalism)라고 불리는데요. 이 두 주장은 오랫동안 문화유산 환수 논의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유산 환수 과정을 어렵게 만들어 왔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런 점은, 유네스코를 비롯해 문화유산을 다루는 주요 기구들은 오늘날 유산 환수 문제를 주로 문화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박선아, 『법학논총』 제34권 제3호 p.331). 특히 유네스코는 불법 반출 문화유산과 관련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국제적 약속이라 평가받는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이하 ‘1970년 협약’)을 채택하면서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유산 환수 문제를 다루는 최초의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는데요. 이 협약은 문화유산의 불법 반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과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및 환수,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 협력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 각국이 문화유산 불법 반출 예방을 위한 행정을 펴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협약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난당하거나 불법 반출된 문화유산의 환수에 있어 사법적 성격을 한층 더 강화한 협약도 마련했습니다. 1995년 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와 함께 내놓은 「문화재의 도난 및 불법 반출에 관한 유니드로와 협약」(이하 ‘1995년 협약’)은 불법 반출 문화유산의 실질적 환수를 가능케 하는 강력한 규정을 담고 있으며, 문화유산을 취득하는 측에서 해당 문화유산이 합법적인 경로로 유통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의무를 명시하고, 문화유산 소송과 관련한 각국의 국내법과 국제법 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1970년 협약의 한계를 잘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한계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문화유산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문화 국가주의가 보다 우세한 관점으로 자리잡았고, 1970년 협약이나 1995년 협약과 같이 문화유산 약탈과 불법 반출을 예방하고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협약이 있음에도, 이와 같은 합의가 부석사 불상 사건과 같은 현실 속 문제들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들 협약이 모두 ‘협약 발효 이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네스코가 1970년 협약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이른바 문화유산 시장국(타국 문화재를 많이 소유하고 있으며 문화재 거래 역시 활발한 국가)들은 문화유산의 반환 및 협약의 소급 적용 등의 내용에 강하게 반발한 바 있는데요. 당시 회원국들은 이들 국가를 배제한 반쪽짜리 협약을 만들기보다는 불법 반출 문화유산의 환수 원칙을 담은 최초의 국제적 합의를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적용 범위 등에서 일정부분 양보한 끝에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협약을 채택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불법 반출 문화유산의 환수를 위한 보편적 원칙을 확보하는 대신, 과거에 일어난 불법 반출 문화유산 환수 문제를 일단 덮어두기로 한 셈이었는데요. 덕분에 협약은 너무 늦지 않게 발효될 수 있었고,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문화유산 파괴 및 약탈 사건과 관련해 국제사회는 하나의 목소리와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협약들이 문화유산의 약탈과 불법 반출이 가장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사건들을 배제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협약의 유효성과 효과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기 문화유산 환수 논쟁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엘긴 마블(Elgin Marbles; 영국의 엘긴 경이 오스만 치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영국으로 가져온 조각 작품)이 여전히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전 세계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힘으로 과거를 소유하고자 했던 욕망의 그림자가 오늘날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요. 물론 유네스코가 이러한 협약의 한계에 대해 마냥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78년 제2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설립된 ICPRCP(불법문화재반환촉진 정부간 위원회)가 그 대표적인 대응책 중 하나입니다. 유네스코는 다자간 협약에서 풀어내지 못한 문제는 양자 외교와 정치적 협상을 통해 각기 다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협약의 적용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분쟁에 대해 당사국 간의 대화와 협상 플랫폼을 제공하고 이를 중재하는 상설 정부간위원회로서 ICPRCP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유네스코는 국제사회가 문화유산의 반환 및 배상을 위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대화를 꾸준히 이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요. 2022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몬디아컬트(MONDIACULT; 문화 정책 및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유네스코 세계 회의)에서 도출된 최종 선언문에도 이러한 내용이 담겼고, 그러한 대화와 협의에 “1970년 협약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도 포함”시킬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제17항). 특히 문화유산을 돌려달라는 회원국들의 요구가 “민족과 지역 사회가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향유할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윤리적 의무”임을 강조한 부분에서는 현재의 법적인 한계를 넘어서 보다 능동적인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데요. 그저 ‘더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불법 반출 문화유산의 환수 논의를 멈추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전 세계 회원국들이 함께 약속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 ‘당연한 우리 것’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지난 2011년 프랑스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를 기억하시나요? 우리 정부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이 유산을 돌려받기 위해 사실상의 ‘영구 대여’라는 형식을 취하기로 프랑스 정부와 합의했습니다. 원래 우리 것임에도 형식상 프랑스로부터 ‘대여’를 해 왔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치열한 협상과 현실적 양보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소중한 기록유산인 의궤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은 ‘영구 기증’의 형태로 환수됐었는데요. 이때도 ‘기증’과 ‘반환’과 ‘환수’라는 표현을 두고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습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영국과 그리스 간의 엘긴 마블 환수 문제는 ‘영국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장기 임대만 허용할 수 있다’는 영국의 제안을 그리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른지를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유산의 환수 문제가 현 체제 안에서 그 자체로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반출 경로가 합법적인지 아닌지부터 시작해 그것을 돌려받는 방식과 표현, 나아가 유산 자체가 인류 공동의 자산인지 특정 민족의 정체성 요소인지에 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당연한 우리 것’을 되찾아오는 일은 역설적으로 결코 당연하게 이루어지지도, 한두 번의 합의로 원만하게 해결되지도 않는 일입니다. 유네스코 ICPRPC의 법률자문을 맡았고 문화유산 소유와 환수 문제 관련 대표적인 전문가인 송호영 한양대 교수가 지난 3월에 펴낸 책 『누가 과거를 소유하는가?』에서 “문화재 환수 문제는 단순히 ‘우리 것이니까 되찾아야 한다’는 감정적 접근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외에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은 약 24만 점 이상. 한국을 떠난 경위도, 환수의 필요성과 가능성도 제각각인 이들 유산을 그저 ‘빼앗긴 내 것’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오늘날의 답답한 현실을 뚫고 유산의 귀환길을 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신 우리는 더욱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소재와 반출 경로를 파악하고,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법적·제도적 논리를 개발함으로써 각 유산들이 돌아오는 길을 차근차근 밝혀나가야 할 텐데요. 그러한 노력,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우리 모두의 관심이 더해질 때, 고향을 잃은 유산들은 다시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와 한참을 기다렸다고, 다시 만나 정말 기쁘다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넬 것입니다.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