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60개국에서 중요한 선거가 치러졌던 지난해는 역사상 가장 큰 ‘슈퍼 선거의 해’였습니다. 유권자 수만도 약 42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에 달할 정도였죠. 공정한 선거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이고, 인류의 절반이 주권자로서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이는 분명 민주주의의 경사라 부를만한 사건이었을 텐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4년을 ‘번영하는 민주주의를 증명한 해’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어느새 선거는 더 나은 리더를 뽑는 축제이기보다는 상대방을 쓰러뜨려야만 하는 전쟁터가 되었고,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건 새로운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비방과 혐오, 왜곡과 거짓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긴 쪽도 진 쪽도 모두가 선거의 피해자였고, 사회적 합의의 과정과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는 점점 추락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확산하는 원인 중 하나로 ‘가짜뉴스’라는 말로 대표되는 허위정보(disinformation)의 범람을 꼽고 있는데요. 인공지능(AI)이라는 ‘날개’까지 달고 우리 마음을 파고드는 허위정보들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다가오는 6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너무나 절실한,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서 반짝이는 진실을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가까이 다가온 허위정보의 위협
허위정보가 민주주의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지나친 걱정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허위정보 확산이 ‘우려’를 넘어 ‘위협’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달 24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73%는 ‘조작된 뉴스’를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35개 조사 대상국 중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인데요. 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간 주요 선거나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불거진 음모론과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세계경제포럼(WEF)이 전 세계 분야별 전문가 900여 명의 의견을 정리한 『Global Risks Report 2025(글로벌 위험 보고서 2025)』에서도 허위정보의 심각성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계의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소로 ‘국가 간 무력 분쟁’을, 장기적(10년) 위협으로 ‘극단적 기후 이벤트’를 뽑았지만, 단기적(2년)으로 전 세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줄 요소로는 ‘허위정보 및 오정보의 확산’을 맨 위에 올렸습니다. 보고서는 “거짓 콘텐츠의 양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시민·기업·정부가 이를 진실과 구별하는 어려움도 함께 커지고 있다”면서, 특히 이 문제가 “정치적·사회적 양극화와 상호 작용하면서 알고리즘 편향(algorithmic bias)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짚었습니다. 허위정보가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양극화된 진영에서 서로에 대한 허위정보를 생산해 유포하고,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이를 빠르게 확산시키면서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 유발 하라리의 경고, “인류는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사실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거짓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었습니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 거짓 정보를 만들고 퍼뜨리는 것 역시 인류 역사에서 낯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말, 트럼프 미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시작을 앞두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말이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로 꼽히게 된 데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허위정보를 만들고 이를 빠른 속도로 확산시키는 데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었는데요. 21세기 이후 모든 사람을 연결하다시피 한 소셜네트워크 위에서 알고리즘은 허위정보를 확산시킬 대상을 효과적으로 찾게 해 주었고, 딥페이크(deepfakes, 매우 사실적으로 조작된 오디오·비디오·이미지)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은 사람들에게 퍼뜨릴 허위정보를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쉽고 정교하게 만들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3월 말에 자신의 새 책 《넥서스》를 들고 한국을 찾은 유발 하라리 교수는 바로 이 변화를 언급하면서 “인류는 이미 언론 권력을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에 넘겨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편집자에게 있었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얘기할지를 결정하는 일”을 이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맡고 있다고 말하면서, 지난 10년간 일어난 이 변화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혼란의 원인”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목표란 그저 사용자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오래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었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공포·분노·탐욕과 같은 사람들의 ‘감정 버튼’을 누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파악한 인공지능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건드리는 음모론, 증오, 적대감을 담은 콘텐츠들을 전 지구적 규모로 확산시켰다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권력이 이동한 시기와 인간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시점이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화인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한 정보 기술을 가진 인류는 이제 상대방을 향해 소리를 지를지언정 더는 대화를 위한 논리를 개발하거나 상대방이 제시하는 ‘사실’에 동의하려 들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 ‘정보가 나를 찾아오는 시대’의 선거
이처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기보다는 메시지 앱이나 소셜미디어 피드를 넘겨보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면서, 이들로부터 ‘표’를 얻고자 하는 선거운동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4년 유네스코가 발간한 『Elections in Digital Times – A Guide for Electoral Practitioners(디지털 시대의 선거 – 선거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의 정당과 후보자들은 선거운동 비용의 큰 부분을 디지털 및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지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유권자를 찾고 이들의 참여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선거운동은 큰 장점이 있습니다. 오프라인을 통한 기존 선거운동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시민들과 소통하고 정책과 정치적 견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대규모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특정한 정보만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마이크로 타게팅(micro-targeting; 관심사나 의견, 신념에 따라 동일한 집단으로 분류된 특정 그룹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하는 기법은 선거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에 비해 현행 규제 체계는 이러한 분야에 대한 자금 집행 한도를 정하고 그 내역을 확인하는 데 뒤처져 있다고도 했습니다(55쪽).
예전의 유권자들이 주로 TV나 기존 언론에 나오는 토론이나 선거 광고를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를 습득한 반면, 오늘날의 유권자들은 각자의 스마트 기기를 통해 ‘내가 보고싶은 것’만을 전달받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선거 관리 당국이 개인의 메신저 앱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이들 콘텐츠를 규제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정당과 후보자가 매우 세분화된 유권자 집단별로 서로 다른—심지어 서로 반대되는—메시지를 내보내더라도 이를 잡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너무 늦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9년 유네스코가 발간한 『Elections and Media in Digital Times(디지털 시대의 선거와 미디어)』도 허위정보를 활용한 선거운동 사례들에서 소셜 메신저 앱을 통한 사적 통신 사용이 증가하고 있고, 이를 통해 허위정보뿐만 아니라 선거 관련 긴장을 고조시키는 혐오발언과 분열적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20쪽). 그러니 지금 내 눈앞의 개인 기기에 뜨는 정치 광고나 공약이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타인에 대한 내 심기를 ‘긁고’ 있다면, ‘좋아요’를 누르거나 이를 공유하기 전에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내 귀에만 대고 속삭이는 이 말은 ‘공적인 약속’이라 믿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내게만 보여주는 이 영상은 ‘보편적 진실’이라 할 수 있을까요? 길에서 “복이 많으시네요”라며 옷자락을 붙잡는 이의 말을 우리가 곧이곧대로 믿지 않듯, 오늘날 제 발로 먼저 찾아와 내 감정의 문을 두드리는 정보들을 진실이라 믿어버리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일 겁니다. 문자 그대로 정보가 흘러 넘치는 21세기,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말로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 숨어있을 작고 반짝이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 ‘비싸고 복잡하며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는 눈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오늘날의 정보 홍수 속에서 진실은 결코 저절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이란 대개 “비싸고(증거를 찾고 이를 분석·연구하는 데 투자가 필요하므로) 복잡하고(얽히고설킨 현실 자체가 복잡하므로) 때때로 불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진실에 ‘거짓’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쉽다는 말이 됩니다. 때문에 오늘날의 권력자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가짜뉴스’라며 손가락질해도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음모론자들은 명확하게 드러난 진실 앞에서도 되려 ‘내 말이 아니라 그것이 조작’이라 외치고 있습니다. 마치 온세상 사람들이 ‘마피아 게임(참가자들이 각자 진실 혹은 거짓을 주장하면서 거짓말쟁이를 찾아내는 역할 게임)’을 하듯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 외치는 상황에서, 유네스코는 진실을 가려내는 최후의 방법이란 결국 ‘우리 각자가 주어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평가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언론인의 팩트체크 활동을 보호·장려하고 플랫폼과 인공지능의 윤리적 활용 원칙을 정착시키는 것 등 ‘문제를 포착하고 억제하고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과 더불어, 각자가 ‘미디어·정보 문해력(Media Information Literacy, MIL)’를 갖춤으로써 범람하는 허위정보로부터 판단력과 선택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20세기의 문해력(literacy)이 그저 모든 이가 문자와 숫자를 읽게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았듯, 21세기의 디지털 문해력도 단순히 각자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습득하는 것에만 머무르는 개념이 아닙니다. 편파적이거나 유해한 콘텐츠를 판별하고 공적으로 반대를 표할 수 있는 적극성, 알고리즘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에 대비할 수 있는 지식, 그리고 개인 기기의 보안을 스스로 설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는 21세기 디지털 정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두루 아우르고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어쩌면 인공지능이!) 여러분에게 전해준 정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그 정보는 어떤 ‘의도’로 여러분에게 전달됐으며, 나아가 ‘왜’ 여러분을 콕 집어 호명하고 있나요? 이들 정보 속에 꼭꼭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먼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디지털 시대의 시민, 디지털 시대의 현명한 유권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