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비가 내리는 4월,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4월은 분명 온 세상에 생기가 가득한 달이지만, 누군가에겐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달이기도 할 거예요. 특히 제주도민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제주도엔 4월에 제사가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제주 사람들의 삶을 빼앗았던 제주4·3. 이 비극이 일어난 지 7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그 과정에 더 힘이 될 소식이 유네스코로부터 날아왔어요. 바로 ‘제주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소식! 그래서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이번 기록유산 등재의 의미와 더불어 제주4·3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드릴까 해요.

유네스코 유산 팩트체크 ✅
진실을 밝히다: 제주4·3 기록물 (Revealing Truth: Jeju 4·3 Archives)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국제목록에 오르게 된 이번 제주4·3 기록물의 정식 유산 명칭은 ‘진실을 밝히다: 제주4·3 기록물(Revealing Truth: Jeju 4·3 Archives)’이에요.
•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를 검토하는 등재심사소위원회(RSC)와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3월 19일에 이 기록물의 ‘등재 권고’를 결정했고, 4월 11일(한국시간)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221차 집행이사회에서 등재가 최종 확정됐어요.
• 제주4·3 기록물과 함께 이번에 ‘산림녹화 기록물’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이로써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20건이 되었습니다.
+ 팀장님, 안녕하세요. 먼저 이번 등재 과정에 직접 참여하신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이와 더불어 이번 기록유산 등재의 의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2년부터 시작된 등재 노력이 13년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록유산 등재는 단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주4·3이 인류 보편의 인권과 평화의 가치로 공인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주4·3은 여전히 더 밝혀야 할 진실, 더 복원해야 할 기록이 남아 있는 ‘진행 중인 역사’입니다. 직권재심을 통해 수형인들이 무죄 선고를 받았고,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추가진상조사 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노력 속에서 이번 등재는 과거를 정리하는 마침표가 아닌, 더 깊은 대화와 성찰을 촉진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알리는 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주4·3의 진실과 평화 운동이 세계가 기억할 기록유산으로서 인정받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기쁨과 동시에 책임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시기부터 용기 있게 4·3 진상규명 운동과 화해 운동을 펼쳐온 분들께 작게나마 위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당해 왔던 제주도민들과 피해자들은 이번 등재 소식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그간 희생과 침묵을 강요당하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내 온 제주도민들과 유족들 덕분에 이번 등재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말 한마디로도 구금과 고문이 자행되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진실을 증언하며 기록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간직한 육성과 문서, 영상들이 포함된 기록물들이 이제는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인류의 공적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그분들도 특별한 감회를 갖고 계신 건 당연한 일일 거예요. 유족회는 등재 추진 과정 내내 큰 지지와 관심을 보여주셨고, 실제로 등재를 이끌어 온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어요.
+ 유네스코 기록유산 중에는 억압받은 피해자들의 기록이 적지 않습니다. 홀로코스트 기록물, 아프리카 노예무역 관련 기록물 등이 유명한 예인데요. 이러한 해외의 기록물들과 제주4·3 기록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꼽아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국가폭력과 구조적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기록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 기록물과 제주4·3 기록물은 모두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 생존자의 증언, 그 고통의 실상을 드러내는 자료들이 기록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억압받은 자들의 역사’라는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주4·3 기록물은 진실 규명의 과정이 아래로부터, 즉 유족들과 지역사회의 꾸준한 노력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거나 체제가 전환되는 등 특정 계기에 의해 위에서부터 조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건 직후부터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여론을 형성했고,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낸 끝에 결국 국가 차원의 사과와 제도적 해결로 이어졌다는 것이지요. ‘과거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해와 평화’라는 미래 지향적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는 점도 제주4·3 기록물과 함께 기억돼야 할 부분입니다. 유족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는 공동체의 회복과 상생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제주4·3 기록물에 포함된 기록물들은 수형인 명부와 군사재판 조서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신고서, 증언 영상, 위령비 등 다양한 형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기록물도 있고, 너무나 가슴 아프고 처절한 기록물도 있는데요. 제주를 찾게 될 일반인들이 꼭 한번 직접 보고 느껴봤으면 하는 기록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기록물은 ‘형무소에서 온 엽서’입니다. 당시 4·3 수형인들은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이유도 모른 채 형무소로 끌려갔었는데요. 이들이 보고싶은 가족들에게 보낸 짧은 엽서에는 그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금방 집에 돌아갈 테니 소와 말을 잘 부탁한다”는 말, “딸아, 보고싶구나…”라는 말들 속에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과 형무소 내에서의 집단 학살을 생각하면, 이 평범한 문장들이 얼마나 절절한 비극의 예고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또 하나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영모원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이 비석에 쓰여진 비문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껴안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지역사회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자문하게 합니다. 제주에 오신다면 꼭 한번 직접 마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이번 등재가 4·3 진실 규명의 끝이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완전한 진실규명과 위로, 피해회복, 더 나아가 진정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민·관 모두에게 앞으로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제주4·3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그 의미를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계속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4·3의 아픔을 단지 지역의 비극으로만 기억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역사로서 함께 성찰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기억’과 ‘교육’, 그리고 ‘기록’의 영역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의 제도적 지원은 물론, 시민 개개인의 관심과 참여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제주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속에 있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연대의 사례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