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뉴스레터에 실린 인류세 이야기가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도 다뤘듯, 인류세는 비록 공식적인 지질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논의에 담긴 의미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화두를 계속해서 던질 텐데요. 그래서 이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고, 누구보다 큰 열정을 갖고 있는 전문가인 박범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자연과학분과위원장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기대한 대로 박 위원장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류세에 대해 할 말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 교수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인류세 관련 사안을 다루어 온 국내 대표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으로서, 지난해 세계 지질학계가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공인하는 문제를 최종적으로 기각한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마디로 저는 “아쉽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세의 층서학적 증거를 모으기 위해 지난 수 년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찾아 헤맨 끝에 가장 유력한 대표 지층을 제시했던 과학자들은 무척 허탈했을 것입니다. 층서학회 제4기 소위원회에서의 토론 및 투표 과정이 그다지 공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 과정에서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어쨌든 인류세의 시작점이 1952년이라고 할 때 70여 년에 불과한 지질시대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지구시스템과학의 관점에서 본 행성적 변화의 증거를 지층의 암석 증거를 기반으로 하는 층서학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는 분야 간 장벽 문제도 있었습니다. 만약 인류세가 2024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인되었더라면 지구의 역사에 관한 초중고 교과서와 각종 전시물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언급했듯,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는 오히려 과학의 틀을 넘어 앞으로도 더 넓고 깊게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세연구센터는 이미 과학자뿐만 아니라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문인,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면서 이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해 왔는데요. 과학, 그리고 인문사회 및 문화계와의 협업이 인류세 논의에 어떤 시너지를 가져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애초에 파울 크뤼천이 이 개념을 제안한 이유는 단순히 인간이 지질학적 행위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너무 심대해져서 이 행성이 더는 안정적인 홀로세의 시대에 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문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내놓는 의견들은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저명한 환경사학자는 글로벌 차원에서 정말 크고 새로운 변화가 20세기에 일어났음을 연구해 인류세의 경험적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역사의 행위자가 된다는 이론을 만든 한 기술철학자는 인간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이 경제활동과 정치논의의 핵심으로 부상한 사실, 그리고 인간 활동과 무관하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전 세계가 영향을 받은 사실 등을 인류세 개념이 잘 포착해 준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생물종으로 통칭하여 이 문제를 취급하는 것은 오류이며, 현재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결과로 볼 수 있기에 ‘자본세’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죠.
직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데 익숙한 예술가들에게도 인류세는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전국의 주요 미술관의 인류세 관련 전시에 초대받아 강연을 많이 했는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예술가들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인류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일반 대중들에게 전하기 때문에, 그 힘이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세가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한 셈이죠.
+ 인류세 논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서도 유네스코가 안팎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이유는, 그것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평화’ 그리고 ‘미래 문제 해결’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환경 위기를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인류세 논의의 어떤 측면을 더 주의깊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안정적인 홀로세의 지구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일상화되고 불안정한 인류세의 지구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자연과 문화를 딱 나누는 이분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논의를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자연과 문화를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서로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존재 자체로 볼 때, 무엇을 어떻게 보존하고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매우 다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섬나라의 경우,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겠습니까? 유네스코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알고 계시겠지만 202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입니다. 작년 말 과학잡지 《에피》에 쓰신 글 ‘얽힘에서 이음으로’에서 굳이 ‘얽힘’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양자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핵심 기제가 ‘얽힘’이고, 동시에 인간과 지구 전체 시스템의 ‘얽힘’을 자각하는 것이 인류세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표현이었습니다.
100년 전에 정립된 양자역학은 물리학계에 지진과 같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죠. 그때까지 팽배했던 뉴턴식 세계관, 즉 사물의 초기 조건을 알면 운동 궤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원자나 전자나 중성자와 같은 것을 다룰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러한 불확실성의 원리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양자역학에 기반해서 만든 GPS는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한 기술이 됐죠. 최근에는 선진국들이 양자 컴퓨팅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세계에서의 얽힘 현상이 새로운 기술에 적용이 되고, 그 기술이 지구촌이 정치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및 문화 분야와도 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가 않아요. 언제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소유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격차가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은 커다란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얽힘이 하나의 ‘현상’이라면, 이음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런 갈등을 풀고 바람직한 얽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냉철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에 더해,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인류세연구센터에서는 새로운 연구를 해서 좋은 논문을 쓰는 작업을 하면서, 보다 실천적으로 시민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것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음이라는 말은 영어로 ‘engagement’라 부르는 그러한 노력과 다짐을 함축하는 것이지요.
+ 교수님께서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제들이 우리가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실존적인 부조리를 자각하고 반항해야 하는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저희 뉴스레터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반항’을 한 가지 제안해 주신다면요?
인간의 부조리라고 하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산꼭대기로 돌을 굴러 올리지만 거기에 다다른 순간 돌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그 돌을 찾아 다시 같은 작업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 형벌 때문에 시시포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인류세를 부조리라고 말한 이유는 인간이 점점 비슷한 상황에 빠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손상된 지구를 라디오 고치듯이 이전 상태로 쉽게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 희망을 둘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15년에 체결했던 파리협약은 이제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화석연료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오히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환경 변화가 유네스코 활동에도 영향을 줄 텐데, 바로 이때 유네스코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구조적이고 실존적인 위협을 깨닫는 것이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압박이 거세지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버티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반항’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와 연대의 끈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반항’이며, 조금씩 서로 희생하고 손해보면서 돌봄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반항의 스토리는 기록되고 전해질 것입니다. 저는 위기라는 말에 항상 기회가 내포되어 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항은 말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이라는 실체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옳은 일을 찾아 자기 자리에서 꿋꿋하게 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