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큰 불이 났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 그것도 세계유산을 관장하는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곳에서 세계유산(1991년 등재)이 불타버린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그로부터 5년 반이 흐른 지난해 12월 8일, 마침내 노트르담 대성당은 복원 공사를 마치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다렸던 주재관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지난 5년 간의 복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타버린 유산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요.
+ 5년의 타임라인
- 2019년 4월 15일 대화재 발생 저녁에 발생한 화재는 순식간에 성당 지붕으로 번졌습니다. 파리 소방대가 총출동해 불길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대성당 첨탑과 지붕은 무너지고 말았죠. 화재 원인은 아직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 개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던 첨탑 근처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실화나 전기 합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 2019-2020년 기부금 모금 및 복원 계획 수립 충격적 화재 이후 전 세계에서 한화로 약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고, 대성당이 1991년에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만큼 유네스코도 그 과정을 주시했어요. 특히 유네스코는 이번 복원 과정이 건축물과 그것을 만든 장인들의 전통 및 문화의 연결성을 더욱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복원 과정을 적극적으로 살펴보면서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 2023년 첨탑 복원 시작 복원 방식 및 설계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19세기 건축가 비올레 르 뒥(Viollet-le-Duc)의 원래 설계 그대로 첨탑 및 지붕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 2024년 2월 주요 구조물 복원 완료 파리 올림픽 개막을 몇 개월 앞두고 첨탑과 목조 지붕을 비롯한 성당의 주요 구조물 복원이 마무리되었습니다.
- 2024년 12월 8일 재개관식 개최 마침내 대성당이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이제 관광객들도 성당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고 미사도 다시 열리고 있지만, 정원 및 일부 공간의 복원은 2026년까지도 이어질 예정이라 해요.
+ 더 나은 모습으로? 원래 그대로? 유산 복원의 딜레마
- 성당 지붕에 수영장을(?!) 대성당 복원 과정에서 가장 큰 논쟁은 복원의 방향을 두고 벌어졌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현대적 모습(으로의 복원)”을 언급하고 대성당 재건자문위원장이 여기에 호응하면서였죠. 하지만 2013년부터 노트르담 총괄건축가로 일해온 필리프 빌뇌브 등은 대성당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돼야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전 세계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요. 심지어 스웨덴의 한 건축회사는 성당 지붕에 루프탑 수영장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유산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한 조건들 노트르담 대성당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일부인 만큼, 이러한 논란에 대한 유네스코의 시각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유산의 보존 및 복원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베니스 헌장(기념물과 사적지의 보존, 복원을 위한 국제헌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64년에 만들어진 이 헌장은 유산 복원 과정에 현대적 기법을 가미하는 것에 엄격한 시각을 갖고 있는데요. ‘전통 기법이 부적합하다고 판명된 경우, 그 효능이 과학적인 자료에 의해 밝혀지고 경험으로 검증된 현대적 보존 기법과 건축 기법을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10조). 하지만 반영구적인 석조 건축물이 다수인 유럽에 비해 목조 건축물이 많은 동아시아 등지의 유산에는 이와 같은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그 결과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994년에 채택된 ‘진정성에 관한 나라 문서(Nara Document on Authenticity, 이하 ‘나라 문서’)’를 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을 판별하는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세계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 II.E.79장). ‘베니스 헌장의 정신을 기반으로 전 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증대에 발맞춰 그 내용을 확장’했다는 내용이 전문에 실려 있는 이 문서는 문화유산의 진정성 조건에 다양한 지역적 맥락과 문화가 반영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고정된 기준에 따라 그 가치와 진정성을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다’(10조. 「세계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 부록4) 라고 규정합니다. 복원된 대성당에 당대의 문화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다는 쪽도, 원래의 모습을 완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쪽도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때문에 화재 직후 프랑스 정부와 면담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대성당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그것이 꼭 이전과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진짜 문제는 협의와 시간 이렇게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고, 어느 쪽이든 파리 올림픽 전까지는 복원이 완료되기를 원했던 프랑스 정부는 결국 원형 그대로의 복원을 결정했습니다. 다수의 유산 전문가들과 프랑스 국민의 과반수 이상(54%)이 원형 유지를 선호하기도 했죠. 설령 수백 년간 보존해 온 문화유산의 복원에 현대적 관점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일을 공동체 내에서의 충분한 협의 없이 마감 시한을 정해두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에 있어 문화적 다양성과 상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나라 문서에도 ‘문화적 가치가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려면 모든 당사자가 해당 문화적 가치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10조)고 명시돼 있으니까요.
+ 불타버린 유산을 되살린 장인의 손길
- 대성당을 복원할 장인을 찾아라 대성당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자,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불타고 훼손된 부분(목재 지붕과 첨탑 등)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대성당은 1345년에 처음 완공된 이후 700여 년에 걸쳐 파괴와 복원, 수리와 증축이 반복돼 왔는데요. 특히 이번 화재로 완전히 무너진 첨탑을 포함한 주요 부분은 프랑스 중세 고딕 건축양식의 권위자였던 비올레 르 뒥이 1844년부터 1864년에 걸쳐 시행한 대규모 개·보수 공사 때 지어진 것이었기에 이 시기에 대한 자료와 건축 지식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 ‘콩파뇨나주’, 대성당 복원의 마지막 한 점 마침 프랑스에는 특정한 지식과 정체성을 작업장에서 전수하는 일종의 직업 훈련 네트워크인 ‘콩파뇨나주(Compagnonnage; 미숙련 직인조합)’가 무형유산으로서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석재와 목재, 금속, 가죽, 섬유, 식품 등과 관련된 지식과 노하우를 전승하는 독창적인 방식인 콩파뇨나주는 2010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죠. 이 네트워크를 통해 프랑스가 자랑하는 요리와 명품, 건축 등의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잘 이어져 왔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과 장식 및 예술품에 관한 지식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지식과 전통과 기술을 보전해 온 이들 네트워크 소속 장인과 제자들은 대성당의 다양한 재료를 용도에 맞게 가공하고, 다양한 전통과 문화적 의미를 지닌 장식물을 원 모습 그대로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에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다 현대적인 방재 체계까지 갖추고, 대성당은 마침내 파리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유네스코는 벅찬 마음으로 그 소식을 전하면서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이번 복원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됐다”라 평가하고, “올 한 해 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복원 과정에서 새로 배운 내용을 정리해 전 세계의 유산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삼을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알쓸U잡 더보기 I 유산이 서로를 돕다 – 수원 ‘화성’의 사례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과정에서 드러났듯, 전 세계의 공동체들이 지켜온 다양한 형태의 유산들은 저마다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어떤 유산이 재난으로 파괴되었을 때, 이를 완전성과 진정성을 갖춘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다른 형태의 유산들이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유형유산과 무형유산, 그리고 기록유산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복합적인 ‘총체’로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이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그러한 예는 멀리 프랑스까지 갈 것 없이 우리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의 성곽 유산, 수원 화성(華城)이 그 사례입니다. 화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는데요. 상당 부분이 현대에 와서 복원된 화성이 유산으로서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의궤(儀軌)」의 일부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였습니다. 화성은 기존의 조선 시대 성곽과 구분되는 새로운 모습과 사상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충분하지만 6·25전쟁과 6-70년대의 난개발의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파손됐었는데요. 다행히 ‘기록 덕후’ 조선 왕실은 화성 축조의 전 과정을 담은 일종의 공사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를 남겨 두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사용된 기술과 재료 및 성곽의 위치와 모습이 정확하게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사에 참여한 장인과 인부들의 인적사항, 예산, 임금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토록 상세한 기록 덕분에 화성은 현재 복원된 모습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오롯이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당 기록물에 쏟아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사보고서”라는 극찬이 과장이 아닌 이유이며, 문화유산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우리의 오늘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이유일 거예요.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