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인프라와 개인 스마트 단말기, 그리고 인공지능 등의 발달에 힘입어 다양한 방식의 교육 도구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에듀테크(Edu-tech) 기업들이 그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수학, 영어, 문해 기초교육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에누마(Enuma)도 그중 하나인데요. 에누마의 ‘킷킷스쿨(Kit Kit School)’은 유네스코와 일론 머스크, XPRIZE 재단이 함께 개최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게임을 기반으로 한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스스로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 킷킷스쿨을 보면, 이 에누마라는 스타트업을 이끄는 리더의 면면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국내 유명 게임회사의 기획자였다가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자녀의 학습을 위한 교육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에누마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 이수인 대표를 만나보았어요.
+ 대표님, 안녕하세요. 에누마는 세계적인 인기를 끈 영유아 대상 수학 학습 프로그램인 토도수학(Todo Math)을 내놓았고, 이어서 ‘킷킷스쿨’로 전 세계 문해력 증진 학습도구 경연에서 우승하기까지 했어요. 그 비결을 ‘소프트웨어 업계 경력을 가진 대표 부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분석일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습이 어려운 아이’ 를 대상으로 한 제품을 만들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이에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IT 회사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이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런 아이들에게 유효한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더 많이 배우고 높은 수준으로 공감하려 계속 노력해야 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제 아이가 장애가 있어 학습이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 부분에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 과정에서 게임개발자 출신이라는 경험도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게임을 사용해서 아이들의 학습이 더 효율적일 수 있도록 돕고, 공부하는 시간이 덜 괴롭고 의미있기를 바랐어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몰입하게 하는 게임의 힘을 믿고 있었고, 이런 기술을 사용해서 아이들이 좀 더 잘 배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서 현지에 잘 맞는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지 파트너들과의 효과적인 협력도 무척 중요할 것 같은데요.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할 원칙이었어요. 우리 경험의 한계와 무지를 인정하고, 다른 세계의 문화를 존중하고, 파트너들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활동을 펼치려다 실패한 에듀테크 기술의 사례가 많아요. 이들의 사례나 파트너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기술을 밀어붙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저희는 교육과 개발협력 배경을 가지고 회사에 합류한 동료들이 다른 문화의 아이들과 환경에 최대한 많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파트너들로부터 최대한의 도움을 끌어내도록 노력했어요.
+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교육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에듀테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을 해야한다고 믿으시나요?
에듀테크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평생교육의 기반을 마련한다’라는 SDG 4(지속가능발전목표 4번)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학습콘텐츠를 지원하고 교사 교육을 실시하는 것에서부터,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보급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이들, 특히 장애가 있거나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학교 모델의 한계를 해결할 수도 있죠. 디지털 미디어의 높은 접근성은 학교 밖에 있는 사람들, 학교에서 배울 기회를 놓친 성인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평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 기술을 가르쳐서 이후의 직업을 준비시키는 것도 에듀테크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AI와 디지털 기술은 선진국의 학교에서 먼저 보급될 것이고, 이는 단기적으로 교육 격차와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킬 텐데요. 이런 부작용을 낮추고 모든 학생들에게 미래 기술을 접할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에듀테크 기업이 가져야 할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 “기술은 교육을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80%의 사람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표님의 발언은 유네스코의 2023년도 세계 교육 현황 보고서 『교육 분야에서의 기술: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와도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동의 개인정보 문제, 교육계의 특정 기업에 대한 기술 의존 문제, 라이센스 문제 등 ‘디지털 격차’ 혹은 ‘디지털 불평등’과 관련한 우려가 특히 교육계에서는 더 크게 느껴지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사실 디지털 격차와 불평등보다는 어린 나이에 제한없이 인터넷 콘텐츠에 노출된 학생에게 벌어질 수 있는 디지털의 부작용을 더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에게 중독적이며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담배나 술, 마약, 성적 접촉, 도박 등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많이 나와 있는 반면, 아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디지털 자극’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아직 별로 없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정보가 디지털화된 현재의 IT 기술이 인간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도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잘 디자인된 디지털 기술이 학습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는 것은 단지 도구일 뿐이므로, 그것을 잘못 활용할 때의 폐해도 이익만큼이나 잘 따져봐야 해요. 규제 없이 디지털에 노출된 아이들이 장기적인 손실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한 논의가 시급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디지털 기술은 학습 측면에서 이미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사람 간의 단절을 심화시켜 ‘협력성’과 ‘사회성 함양’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메타버스 같은 것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학습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할까요?
저는 인공지능이 많은 직업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최근에 와서야 그동안 늘 듣던 ‘역량 중심의 21세기 교육’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어요. 중요한 네 개의 역량, 즉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성 ▲협력 ▲상호작용은 디지털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에요. 프로젝트 기반 수업 등을 통해 교실의 많은 아이들이 함께 훈련해야 하는 것이지요. 미래의 교실에서는 교사의 주도 하에 학생들이 이런 역량의 훈련에 집중하고, 여기에 필요한 콘텐츠와 정보는 디지털을 통해 재빠르게 탐색해서 사용하고 표현하게 될 거예요.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혼자서 학습해도 괜찮은 지식은 디지털로 혼자서 공부하기도 할 겁니다.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이라 불리는 이런 형태가 앞으로 매우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교실 내에서의 단절과 소외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이런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지적할 수 있는 점인 것 같아요. 새로운 시대에 학교라는 장소는 디지털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역량을 극대화하고 학생들이 협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곳이어야 해요. 이를 모두가 이해한다면, 교사의 역할이나 디지털의 역할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메타버스나 VR이 인간에게 좋은 경험을 줄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인간이 생활하며 교류하는 주요 공간이 디지털로 옮겨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AI의 시대에는 인간이 자원 생산에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이고, 더 깊은 사고를 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물론 너무 이상적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제 아이가 디지털 안에서 더 깊은 자극을 찾는 미래보다는, 자기의 몸을 움직이고 더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미래를 바라는 쪽입니다.
+ “이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널려있는 공부 콘텐츠가 아닌, 사회적 기술”이라 말씀하기도 하셨어요. 이런 맥락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이 교육의 중심을 차지하는 세상에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많은 정의 중에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독립된 성인을 만드는 것’ 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콘텐츠를 읽고 보고 시험을 푸는 일은 교육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렇게 배운 것이 앞으로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상호작용과 협력을 이끌고 학생들을 바람직하게 기여하는 인간이 되도록 돕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전히 교사에게 있을 거예요. 미래의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미래의 역량을 함께 탐구하고 훈련해 나가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은 이를 위한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