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급속도로 확장하던 1990년대 후반에 ‘바이럴 미디어’, ‘디지털 네이티브’ 등의 용어를 제시하고 개념화한 세계적 미디어 이론가입니다.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스크린에이저’(screenager; 틴에이저와 ‘스크린’의 합성어로 ‘컴퓨터와 인터넷에 매달린 젊은이’를 일컫는 용어)라는 말을 언급한 지도 거의 30년이 되었는데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는 중요한 일로 여겨지고, 종이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네스코 『꾸리에』가 러시코프 박사를 만나 디지털 시대와 독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는데요. 2024년 4-6월호에 실린 기사의 내용을 발췌해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저서에서 ‘스크린에이저’를 언급한 것이 1996년이었는데요. 스크린은 그 이후의 새로운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스크린 세대입니다. 저 역시 일을 하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 제3의 부모와도 같은 브라운관 TV 앞에서 세상의 ‘양분’을 섭취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언급한 스크린에이저는 태어날 때부터 대화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말해요. 화면을 보며 타이핑하고 무언가를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죠. 제 생각에 2000년대 중반이 이러한 스크린 세대가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와이드스크린 TV가 가득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3-4살짜리 아이가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 ‘스와이프(쓸어넘기기 동작)’를 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죠.
+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의 아이들은 스크린에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문학의 인기도 여전한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독서는 뇌 안에 새로운 영역을 생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독서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경험이고, 아이들은 심지어 책을 읽을 때 숨 쉬는 방식도 달라진다고 해요.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도 ‘인터랙티브 미디어는 책과 같은 몰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어요. 책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따뜻한 매체’라면, 인터랙티브 미디어는 완결되지 않은 메시지를 제공하고 독자가 그 나머지를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차가운 매체’라 할 수 있어요. 디지털 기술은 여전히 책이라는 (고전적 형식의) 매체를 극복하지 못했어요. 책은 저자가 쓰고, 독자는 자신의 자율성을 저자에게 넘긴 채 저자가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원하는 형식이에요. 선형적인 내러티브 구조라는 이야기죠. 이러한 점에서 책을 읽는 독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극 관객과 다르지 않아요. 스스로 선택을 하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그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대리 경험하는 것이죠. 저는 각 매체들이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서 이용되기만 하면 각기 다른 긍정적인 부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 매체의 특징을 이해해야 해요. 책은 선형적인 스토리텔링에 강점이 있어요. 인터랙티브 미디어는 각자가 주체성을 개발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요. 소셜 미디어는 제한된 상황에서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데 매우 유용해요.
+ 그렇다면 종이책을 읽는 것과 스크린으로 책을 읽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차이가 있다고 보고, 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종이책은 3차원적인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에요. 서가를 직접 둘러보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에요. 독자는 종이책과 공간적으로도 연결이 되고, 그에 따라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져요. 한편으로 오디오북을 활용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저는 이것이 스크린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는 디지털 기술을 더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을 감고 내가 정말 그 현장에 있는 것을 상상해 보는 등, 오디오북은 또 다른 차원의 몰입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의 온라인 경험 역시 이처럼 공간과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메타버스가 그 좋은 예죠. 이제 우리는 가상 공간 속 무한의 터널로 들어가는 대신 우리 이웃, 우리가 익숙한 공간을 창조하고 있어요.
+ 스크린에 몰입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계속 경각심을 가져야 할까요?
아이들이 이용하는 그 무엇에든 부모는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아이가 하루 8시간을 소셜 미디어에 쓴다면 당연히 걱정을 해야죠. 또한 점점 우울하고 불안한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빅테크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도 지적해야 해요. 저는 우리 일상에 새로운 매체를 들이는 것에 대해 새 반려동물을 집에 데려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면서 어떤 것을 장려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아이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결국 주의해야 할 것은 스크린 자체가 아니에요. 대신 그것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편향된 플랫폼으로부터 아이에게 제공되는 것이 무엇인지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