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총선이 몇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도 정치권의 공방은 뜨겁고, 몇몇 정치인들의 거친 말은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내뱉는 입과 글을 쓰는 손끝이 거친 쪽은 정치인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 공간에서 그 대상을 향한 비난과 혐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목격합니다. 모두가 무언가를 ‘극혐’하고 모두가 누군가에게 ‘OO충’으로 불리는 악순환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혐오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이후, 각국 정부와 주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나름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수준의 대책이 충분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유네스코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공동으로 미국을 포함해 2024년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전 세계 16개국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7%가 여전히 인터넷에서 혐오발언을 접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욕설 자동 필터링’ 정도의 대책으로는 혐오표현을 뿌리뽑을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민주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 안에서 누군가를 욕하고 미워할 자유,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퍼뜨릴 자유, 그러면서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해치지 않아야 할 의무 간에 그어지는 경계가 늘 뚜렷하지만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 모호한 경계 안에서 황급히 그어 놓은 최소한의 선이 욕설 필터링과 같은 대책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효용만 있을 뿐입니다. 유네스코는 우리가 혐오사회의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선 안에 안주하지 않아야 하며,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강력한 규제가 유일한 정답이 아닌 이유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욕설을 필터링하고 ‘고운말 쓰기 운동’ 등을 펼치는 것이 혐오표현을 뿌리뽑는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혐오표현을 규정하는 조건은 그 표현의 강도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 등이 마련한 국제기준과 해외 입법례 등을 종합해 혐오표현의 세 가지 요소로 ▲어떤 속성을 가진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물리적 공격이 아닌 언어 등을 사용해 ▲부정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대상집단이나 그 구성원을 모욕·비하·멸시·위협하거나 그에 대한 차별·폭력을 선전·선동하는 것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 기준에서 보면 “나는 네가 너무너무 싫어”라는 표현은 상대방을 향한 비난이나 모욕은 될지언정 혐오표현은 아닙니다. 반면에 “이주노동자들은 세금도 안 내면서 복지 혜택만 받는다”거나 “외국인의 범죄율이 높다”라는 말은 표현의 강도나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혐오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실제로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혐오표현 리포트』 작성에 참여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비난 강도가 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혐오표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효과’가 발생해야 혐오표현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차별의 효과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 “누군가의 정체성에 관한 속성을 가지고 누군가를 비난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혐오표현은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을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그런 말에 동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단순한 욕설과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혐오표현의 정의를 이처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면, 이 선에 맞춰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시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당연히 들기 마련입니다. 욕설이나 외설적인 표현과 마찬가지로 혐오표현 자체를 법으로—예컨대 ‘혐오표현금지법’ 같은 것을 제정해—막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이 표현의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에 비추어 볼 때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UC버클리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혐오 발언』(2022)에서 “(약자를 보호하려는) 입법 의도는 국가에 의해 불가피하게 오용된다”고 말하며 이 사안에 대한 국가 개입의 위험성을 경계한 바 있습니다. 혐오표현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그 표현을 국가의 힘으로 규제하는 것은 자유롭고 개방된 토론을 억제할 위험이 있을 뿐더러 권력자가 언론과 시민의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진실을 지키고 거짓을 가려내는 힘
개개인이 내뱉는 혐오표현 자체를 틀어막으려는 시도가 헌법적인 측면에서나 인권적 측면에서 능사가 아니라면, 유네스코는 혐오표현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역량을 높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며 퍼뜨렸던 소문, 남성이 여성을, 혹은 백인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면서 들었던 논리,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아시아인에게 테러를 저질렀던 사람들이 갖고 있던 혐오의 감정은 모두 거짓이거나, 왜곡된 진실이거나, 전후 맥락을 제거한 진실의 파편으로 구성된 허위정보 위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이런 허위정보는 마치 바이러스의 돌기처럼 혐오의 감정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확산되기 쉽도록 만들었고, 이제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앞선 유네스코-입소스의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7%는 허위정보가 이미 국내 정치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하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89%) 혹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91%)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유네스코는 허위정보 확산의 주된 경로가 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들이 그 운영 과정을 인권에 기반해 개편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신뢰의 인터넷(internet of trust)’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발간된 『Guidelines for the Governance of Digital Platforms(디지털 플랫폼 거버넌스 가이드라인)』에서 유네스코는 디지털 플랫폼들이 ▲인권에 관한 주기적 실사를 수행하고 ▲디자인과 콘텐츠 수정 및 큐레이션을 포함하는 전 과정에 국제 인권 기준을 적용하며 ▲데이터 수집 및 이용에 투명성을 제고하고 ▲운영 규정과 관련해 필요한 정보와 도구를 사용자들의 언어로 알기 쉽게 제공하고 ▲각 사용자 집단의 환경에 맞는 운영 원칙을 지키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갈 것을 요청했습니다.
정보 수용자 입장에서 전달받는 정보의 진실성을 스스로 가려낼 줄 아는 능력, 즉 미디어 정보 문해력(Media Information Literacy)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네스코는 특히 “오늘날의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에서는 소비자의 공동체 의식을 쉽게 고취하고 메시지의 도달 범위를 극대화하기 위해 혐오표현 내러티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면서, 학습자가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의 이러한 경향을 이해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지난 1월 24일 세계 교육의 날을 맞아 ‘혐오표현에 대항하기(Countering Hate Speech)’를 이번 기념일 주제로 소개하면서 “다른 모든 평화를 향한 노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교육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혐오표현을 해체하고 포용적이고 민주적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의 근간을 마련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라고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네스코는 지난해 3월 『Addressing Hate Speech through Education(교육을 통해 혐오 표현 대처하기)』를 발간해 혐오표현 대응을 위해 학교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교육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는 학교가 학생들로 하여금 커리큘럼 안에서 혐오를 조장하고 배제를 정당화하는 내러티브에 대해 더 많이 토론하고 그 문제점을 인지하도록 하며, 보다 안전하고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교실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구축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차이를 포용하고 다양한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참여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개발하게 해 줄 세계시민교육의 중요성도 언급했습니다.
‘두껍고 얇은 피부’로 포용하고 연대하기
‘힘’(법)만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보다는 진실을 통해 혐오가 자라날 토양을 없애고 교육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혐오에 대한 면역력을 기른다는 유네스코의 전략은, 1945년 창설 이후 80여 년 가까이 ‘인간의 마음 속에 평화의 방벽을 쌓고자 노력해 온’ 유네스코의 지난날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27일 국가교육위원회 대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언급했듯, 비록 정치적으로 힘도 없고 지금 이 순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막아내지 못하면서도 유네스코의 활동은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옳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한 인식은 이제 대부분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갖는 보편적인 인식이 됐고, 따라서 설령 전쟁광일지라도 공공연히 전쟁을 옹호하지 못하고, 설령 위선일지라도 입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해야 하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혐오표현을 물리치기 위해 밝은 눈으로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배우고 실천하자는 유네스코의 활동 또한 때론 답답할지라도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혐오가 뿌리내릴 공간을 줄여나갈 것입니다. 그 노력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두껍고도 얇은 피부’로 둘러싸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두껍고도 얇은 피부’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면서도 혐오표현을 입막음하고 싶은 손쉬운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네이딘 스트로슨(Nadine Strossen) 뉴욕 로스쿨 교수가 쓴 표현으로, 나를 향한 혐오표현에는 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타인을 향한 혐오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함께’ 싸울 수 있는 내공을 기르자는 주문입니다.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혐오표현을 내뱉는 이들은 그들이 목표로 하는 대상이 소외되고 위축되길 바라며, 동시에 대중들 역시 두껍고도 얇은 피부를 갖지 못한 채 서로를 외면하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권을 존중하는 신뢰받는 인터넷 환경,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체화한 교육받은 시민들은 ‘그건 틀렸어’라는 당당한 외침(대항표현, counter speech)으로 그들의 그릇된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혐오표현은 마치 우리가 협력과 연대의 힘으로 물리쳤던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 마침내 침묵하고 말 것입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