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완전히 의견을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정치인들의 약속과는 달리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여전히 교육의 중심에 철옹성처럼 버티고 서 있으며, 바로 그 입시를 핑계로 우리는 오늘도 교육 변혁을 향한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대에 맞는 교육을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눈앞에서는 21세기 대전환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으며, 오래된 교육만으로는 이 전환의 시대에 맞는 사람을 길러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7일 국가교육위원회가 서울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2024년 제1차 대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미래 사회의 산업·기술, 인구·사회, 생태·환경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방향을 가늠해 보면서, 우리 교육이 현 시대에 맞는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을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지난해 4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연 바 있다. 올해에도 이번 대토론회를 시작으로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교육의 올바른 길을 모색해 볼 예정이다. 행사 시작과 함께 축사로 나선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올해는 국가교육위원회가 10년 단위 국가교육발전계획의 큰 틀을 정하는 의미 있는 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수호해야 할 이상과 감당해야 할 현실이 동시에 존재하는’ 교육의 양면적 성격을 감안하면서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나가고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보자고 이야기했다. 영상을 통해 축사를 전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및 교육부장관은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 지역소멸, 공동체의식 약화 등 사회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면서 “디지털 대전환과 노동시장 변화와 같은 경제사회적 환경에 대비”하는 데 있어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인재양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올바른 인재선발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육 제도가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러한 맥락에서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립하고 심도 있는 숙의를 진행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교육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본격적인 토론회의 시작을 알리는 기조강연을 맡은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유네스코가 발간한 ‘교육의 미래 보고서’의 내용을 설명하며 우리 교육계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는 가운데 명확한 목표를 찾아 용기 있는 변혁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꼽는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수의 몇 배나 되는 청년과 아이들이 매년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나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를 되물었던 한숭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의 일갈을 전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교육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 ▲배제와 차별이 아닌 포용 ▲경쟁과 서열화가 아닌 협력과 연대 ▲인간중심주의가 아닌 과학기술 및 자연과의 공존 ▲학교의 수호와 변혁 및 교사와 교직 다시 상상하기 등을 포함해 앞으로의 교육의 길을 모색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 길의 방향을 안내할 원칙으로는 ▲기본적 인권으로서 교육권의 재확인 ▲평생교육관점에서 교육의 틀 재검토 ▲교육기본법의 적극적이고 담대한 해석과 적용 ▲미래문해력(future literacy)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기조강연에 이어 ▲미래 산업·기술의 변화와 교육 ▲미래 인구·사회의 변화와 교육 ▲ 미래 생태·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먼저 미래 산업·기술의 변화와 교육에 대해 발표한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인공지능학과 교수는 산업·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했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순응하기 위해, 혹은 여기에 저항하며 고전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교육을 ‘수동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능동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한경구 사무총장이 기조강연에서 이야기한 ‘미래문해력’과도 맞닿는 부분으로, 이 교수는 우리가 “여러 가지 장단점을 갖고 있는 기술 발전이 인간과 바람직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이를 기술발전 당사자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하며, 우리가 그 기술을 잘 사용하기 위한 융합적이고 통합적인 문해력을 교육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래 인구·사회의 변화와 교육에 대한 주제발표를 한 서용석 KAIST 문술미해전략대학원 교수는 인구 변화를 중심으로 한 미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구 변화 양상의 다양한 가능성과 그 대안을 살펴보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양상에 대한 적응, 다문화 이민사회로의 전환, 나아가 남북통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인구구조 변화의 양상을 바꾸어 인구의 양을 늘리려 하기보다는 ‘인구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하며, “그 어떤 아이의 재능도 포기하지 않는”, 즉 단순한 경제적 관점에서의 ‘인력’이 아닌 ‘인재’를 길러내는 데 교육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고령 인구가 신체 건강을 유지하고 사회 변화에 맞는 교육을 받으며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버팀목으로 활동하게 해 줄 평생교육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 주제발표로 미래 생태·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선진국은 저탄소전환을 기후위기 대응책만이 아닌 경제성장 전략으로서 인식한 지 오래”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도 탄소중립 문제를 “위기로만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로 보아야 하며,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교육 역시 단순히 기후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행동하는 기후시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하면서, ▲생활 속에서 기후친화적 행동을 실천하고 ▲친환경적 시장행위자로서의 소비 행위를 확립하고 ▲법·정책적 측면에서 기후 해결 의지를 갖고 정치행위(투표)를 하며 ▲환경·에너지·기후 관련 단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함께 행동하는 시민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자유토론 시간에는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이수형 서울대 교수, 이선경 청주교대 교수, 박동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현석 한국교육학회장, 김재춘 한국교육과정학회장,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 등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정토론과 자유토론을 진행했으며, 이들은 현장에서 일반 시민 참석자들의 질의응답에도 응하면서 한국 교육의 미래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예정된 네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된 이번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변화하는 역사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희망을 찾고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라면서, 향후 이어질 토론에서도 우리 교육의 미래에 대해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내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