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무한의 검은 공간 안에서 홀로 푸르게 반짝이는 점 하나가 보이나요?
지난 1990년, 지구로부터 60억km 거리에서 태양계 밖으로 날아가던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의 탐사선 보이저1호가 ‘고향’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우주 지식 대중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칼 세이건(Carl Sagan) 박사는 여기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란 이름을 붙였죠.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발 딛고 살아 온 지구가 얼마나 작고 소중한 보금자리인지를 일깨워 주는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사진 중 하나입니다.
겨우 점 하나로 보일 뿐임에도 우리 지구는 분명히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지구는 표면의 3분의 2가 바다로 덮인, ‘바다의 행성’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저 푸른 바다의 품 속에서 어느날 생명이 탄생했고, 생명체들의 진화와 멸종의 순환 속에서 인간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구 나이에 비하면 정말 찰나에 불과한 시간 만에 인간은 이 바다의, 나아가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를 영원이 품어 안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바다는 지금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릴 먹여 살리던 어종의 수가 급감하고,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산호초는 하얗게 죽어가고, 곳곳에 산소가 부족한 죽음의 해역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도 문제는 변화의 ‘폭’보다 ‘속도’입니다. 엄청난 적응력으로 자연의 변화에 스스로를 맞춰 왔던 생태계는 현재의 급격한 변화 추세를 견딜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더도 우주에서 본 지구는 여전히 푸르게 빛나겠지만, 생명이 없는 ‘창백한 푸른 점’은 더 이상 드넓은 우주에 그 어떤 이야기도 전해주지 못할 겁니다.
문제는 탄소 — 기후위기 대응과 ‘블루 카본’의 역할
유네스코는 바다를 지키는 길이 곧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중요한 길 중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유네스코가 산하에 바다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지혜와 자원을 모으는 정부간해양학위원회(Intergovernmental Oceanographic Commission, IOC)를 두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각국이 탄소배출권을 거래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씨름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열쇠는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의 양을 줄이는 데 있고, 바다는 바로 그 탄소를 흡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닷물을 비롯해 맹그로브 숲과 연안 습지, 바다 식물 등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계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를 ‘블루 카본(blue carbon)’이라 합니다. 바다가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저장하지 못했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웠을 겁니다. 사실 ‘탄소 흡수’ 하면 우리는 먼저 아마존 열대우림이나 북반구의 광활한 툰드라 삼림 지대를 떠올리지만, 과학자들은 바다가 블루 카본 형태로 포집하는 탄소의 양은 전체 숲이 흡수하는 탄소량보다 2-4배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건강한 블루 카본 생태계는 풍부한 식량 자원의 생산지이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해양 커뮤니티에 소속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보금자리 역할, 바다로 유입되는 오염을 정화시키는 필터 역할, 그리고 태풍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로부터의 방파제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다, 특히 해안 지대의 블루 카본 생태계가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하고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생태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연안 생태계의 면적은 현재 열대 우림보다 4배 이상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각종 개발과 기후변화는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19세기 이후에만 지구상 거의 절반에 달하는 연안 습지가 사라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약 0.5-3%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블루 카본 생태계가 사라지면 그간 바닷속에 포집돼 있던 온실가스도 다시 대기 중으로 되돌아갑니다. 이렇게 방출되고 있는 온실가스는 현재 전 세계의 삼림 파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분의 19%를 차지합니다. 유네스코 IOC가 무엇보다 블루 카본 생태계 보전 및 연구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막을 내린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보여주었듯, IOC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과 함께 블루 카본 이니셔티브(BCI)를 공동 운영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는 호주 정부와 함께 블루 카본 국제 파트너십(International Partnership for Blue Carbon, IPBC)을 설립해 전 세계 50여 개 국가 정부와 NGO, 연구소 등을 규합해 블루 카본의 역할과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산성화되는 바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줄 때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며 백두산 높이보다도 훨씬 깊은 3700m의 평균 수심을 갖고 있지만, 이 어마어마한 부피에도 불구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조금씩 산성화(acidification)되고 있습니다. 탄소 흡수가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으면서 중탄산염과 수소이온이 만들어지고, 이 수소이온의 농도(pH)가 높아지면서 바닷물은 산성화됩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 따르면 바다의 산성도는 산업혁명 이후 약 30% 증가했고, 현 추세대로라면 21세기 말까지 바닷물의 pH가 약 0.2-0.4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약염기성인 바닷물이 상대적으로 산성화된다고 해서 산성 바닷물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기 중 산소 농도가 5%포인트만 떨어져도 우리 몸에 산소 부족 현상이 나타나듯, 미세한 pH농도의 변화는 바닷속 생명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가장 우려되는 점 중 하나는 플랑크톤을 비롯해 산호나 조개, 게 등 바다 생물들이 뼈나 껍질 등의 조직을 구성하는 탄산칼슘을 생성하는 데 애를 먹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해수에 녹아있는 탄산이온을 바탕으로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드는데, 수소이온들은 이보다 먼저 탄산이온과 반응해 중탄산염을 형성함으로써 이를 방해합니다. 결국 탄산을 중심으로 한 바닷물과 해양생물군의 복잡한 평형 상태가 깨지게 되고, 이는 수많은 해양 생물종의 존속에 위협이 되는 동시에 바다가 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사이클이 망가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그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산호초도 해앙 산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수온 상승과 산성화 등으로 인해 다양한 해양 생물들의 서식지인 산호초가 소실된다면 생물다양성, 식량 감소뿐만 아니라 자연 재해로부터 해안 지대를 지켜주는 완충 지대가 사라짐으로써 지구 곳곳의 연안지역사회의 생존도 위협받게 됩니다.
산성화와 더불어 탈산소화(deoxygenation) 역시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변화입니다. 경작지에 쓰인 비료나 공장에서 배출된 화학물질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바다의 부영양화가 진행되면 바닷물 속 산소 용존량이 줄어들고, 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상승하면 해양에 용해되는 산소량 자체도 줄어듭니다. 2019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유네스코 IOC 등과 협력해 발간한 보고서 『Ocean Deoxygenation: Everyone’s Problem(해양 탈산소화: 우리 모두의 문제)』는 1960-2010년 사이 지구 바닷속 산소량이 약 2%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실었습니다. 이러한 탈산소화의 원인은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해양 온난화와 산성화, 그리고 인간 활동으로 인한 바다의 부영양화에 기인한 생물화학적 작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면서, “미래 바다의 변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바다에 스트레스를 주는 서로 다른 요인을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바다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무지합니다. 기후위기를 상쇄하는 바다의 세부 매커니즘에 대해서도, 산성화나 무산소화 같은 위기 징후의 정확한 원인과 추세 및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탈산소화는 지구 대기 및 해수 온난화와 관련이 있고, 산성화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관련이 있으며, 이와 같은 바다의 변화는 다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대기 온도를 상승시키면서 불균형이 더욱 악화됩니다. 이 거대한 전 지구적 균형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가장 쉽고도 효율적인 대책을 인류는 아직 내놓지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바다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더 잘 알기 위해, 더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이전과 같지 않기 위해
바다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이며, 이 광대한 해역을 포괄하는 전 지구적 변화를 추적·관찰·분석하기란 현대 기술로도 버겁습니다. 따라서 바다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 바다를 더 많이 연구해야만 합니다. 유네스코 IOC가 바다에 관한 더 폭넓고 과학적인 연구를 강조하는 이유도, 유엔이 2021년부터 2030년까지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유엔 해양과학 10년’으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지난 COP28의 합의문 결정 과정에서 각국 대표들은 ‘화석연료 퇴출’이란 표현을 두고 예정된 폐막일을 하루 가까이 넘기면서까지 격론을 벌였고, 결국 해당 문구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으로 바뀌면서 가까스로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류는 아직까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일사불란하게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은 각기 그들대로, 경제개발과 각국 국민들의 삶과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정말 다양한 시각과 우선순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기후위기가 당장의 실체적인 위협임에도, 공동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을 정치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가 하는 일은 명확합니다. 복잡한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하나된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기브앤테이크’의 냉정한 정치적 계산을 넘어 왜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을 제공하고 지혜를 모으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유네스코는 그러한 회의가 있을 때마다 보다 과학적인 지식을 들고나와 세계에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따뜻한 상호 이해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마지막 프론티어(frontier)인 바다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더 잘 알게 될 때,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푸른 바다를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는 같지 않게 되겠죠. 사랑에 빠지는 방법도 정말 다양합니다. 플라스틱 빨대가 목구멍에 걸리고 온몸이 그물에 칭칭 감긴 펭귄이나 물개의 안타까운 영상을 접하며 여전히 화석연료에 기반한 우리의 생활 패턴을 한번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바다를 사랑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입니다. 바닷속에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으로부터 새로운 영감과 공존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으며, 균형잡힌 해양 개발 및 환경에 대한 고민을 통해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바다의 미래를 모색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관심과 호기심이, 이 바다의 행성을 향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따뜻한 연대의 파도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될 겁니다. 바다에 주목하는 유네스코의 활동에 함께해 주실 거죠?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