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주포럼 유네스코 세션
따뜻한 봄바람이 잦아들고 여름이 시작되던 5월의 끝자락,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회복탄력적 평화를 향하여: 협력과 통합’을 주제로 열린 제 14회 제주포럼 현장에는 평화와 번영의 훈풍이 불었다. 이번 포럼에는 작년에 이어 유네스코 세션이 마련돼 ‘배타주의 확산 시대에 있어 평화를 향한 유네스코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최근 국제사회는 미국우선주의, 브렉시트, 극우정당의 부상 등 여러 급격한 변화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간 다져온 다자주의 기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교육, 과학, 문화의 지적 협력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평화의 방벽을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유네스코는 이러한 갈등과 분열을 어떻게 치유하고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2019 제주포럼 유네스코 세션의 기조발제를 맡은 한경구 서울대 교수는 유네스코가 진행하고 있는 지적협력의 한계를 지적하며 논의의 빗장을 열었다. 한 교수는 냉전을 거치며 변화된 유네스코에서의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개념과 개인에서 국가로의 유네스코 구성주체의 변화 등을 지적 협력을 통한 세계 평화의 달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조동준 서울대 교수는 이러한 유네스코 내부의 변화를 수치화된 그래프로 설명했다. 1960년대 유네스코는 ‘발전’의 개념이 대두되면서 이와 합치되는 교육과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고,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다양성’이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사업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네스코의 관심사는 근저의 사회, 정치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 교수는 중심 화두에서 벗어난 인문사회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의 지적교류도 놓치지 않아야만 균형있는 평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분야 전문가인 유성상 서울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이 개념화되어야 할 교육은 ‘사회정의를 위한 윤리적 실천으로서의 교육’이어야 하며, 전 지구적으로 지속가능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성을 함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보다 자율적이고 해방적이며 창의적인 지구 공동체 시민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위원은 사회의 발전에 따른 과학기술의 변화에 대해 발표했다. 과학기술의 민주화, 현장화를 통해 모두를 위한 과학기술 실현을 목표로 하는 ‘리빙랩’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과학기술의 공공적, 사회적 역할을 확보하고 취약계층, 빈곤한 국가들과 함께 나아가는 장기적 비전과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산·학·연이 지속가능한 호혜적, 포용적 혁신을 통해 박제된 과학기술이 아닌,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과학기술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크로드’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유네스코의 문화분야 활동 방향을 제시한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유네스코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각축장이 된 실크로드의 다양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므로, 한국이 그간 겪어온 역사분쟁에서의 경험을 살려 실크로드를 통해 유네스코의 이념을 확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는 강대국의 논리에 좌우되는 커뮤니케이션 질서를 비판하며 미국이 떠난 유네스코에서 한국이 다자주의를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션의 특별연사로 초청된 루츠 묄러(Lutz Möller) 유네스코독일위원회 부사무총장은 독일의 사례를 통해 평화 확산을 위한 유네스코의 역할을 강조하며, 유네스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국제사회에 재진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묄러 부사무총장은 또한 유네스코의 다자주의는 초국경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시민사회 이해관계자들이 국제 공론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을 제공하기에 세계가 범문화적 인식을 갖춘다면 평화를 구축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며 낙관적 시각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숙명여대 최동주 교수는 앞선 발표자들의 발언을 종합하여 정리하면서 유네스코의 평화가치 형성을 위한 노력과 문화다양성에 관한 글로벌 어젠다 확립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제주포럼 유네스코 세션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다양성’과 ‘다자주의’였다. 전 세계적으로 배타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깊은 지적 성찰과 시민사회 참여 확대, 회원국 국가위원회와의 협업을 통해 다자주의를 확립하고 평화를 회복하고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안신정 국제협력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