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회관은 1967년 준공 후 약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서울의 중심 명동의 랜드마크로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다. 그러나 주변에 대형 상업건물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이제는 랜드마크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퇴색하고, 유네스코 활동의 중심으로서의 역할도 축소되었다. 2014년 60돌을 맞게 되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유네스코회관의 정체성 재확립 및 명소화를 추진하고자 사무처 내부에 실무추진단을 구성하고 전문가들을 모아 실천 방안을 연구하였다.
유네스코회관 설립시의 비전과 정체성
유네스코회관은 1959년 3월 30일에 기공(기공식은 4월 11일)하여 1966년 12월 20일에 준공(준공식은 1967년 2월 17일)되었다.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회까지 조직되었으나 자금이 부족하여 7년 반여 만에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회관은 그 규모가 지상 13층 지하1층 연건평 4,109평이었고 공간은 외국귀빈을 위한 숙소와 대강당(3,4,5층 극장), 백화점, 사무실, 스카이라운지(11층) 등으로 구성되었다.
국내 최초로 건물전면이 알미늄 커튼월로 만들어졌고 냉난방 설비와 승강기가 완비된 당시 최첨단 건물이었다. 준공 후 곧 건물 7층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실이 입주하여 한국 유네스코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1967년 준공식 당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장인 문홍주 문교부장관의 식사에 나오는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전당으로서 그리고 국제이해 증진의 교량으로서 깊이 공헌하게 될 회관의 건립”(유네스코뉴스 1967년 3월호)이라는 표현에서 당시 유네스코회관의 비전과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유네스코 활동 재원으로서의 회관, 정체성의 퇴색
그러나 유네스코회관의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다. 건축비의 부족으로 한일은행이 맡아서 지었기 때문에 관리권이 한일은행에 있었고 건축비 회수를 위해 임대 위주로 건물이 사용되었다. 유네스코 아세아지역 대회장으로 준비되었던(조선일보 1959년 4월 11일자 유네스코회관 기공식 기사 참조) 강당은 극장으로 임대되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입주한 7층만이 유네스코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1973년 한일은행으로부터 관리권을 이수하고 이후 회관 대지를 매입하여 한국위원회가 회관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지만 유네스코회관은 유네스코활동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역시 임대 위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1977년 11층 스카이라운지 일부를 회수하여 국제회의장과 전시장 등 다목적 공간을 조성(김수근 건축가가 실내 설계)한 것은 회관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겠다. 11층 유네스코 회의장은 2010년 유네스코홀로 다시 복원되어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2002년 조성된 옥상 생태공원 ‘작은누리’이다. 도심의 녹색 쉼터로서 또한 환경과 지속가능발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학습공간으로서 ‘작은누리’는 잊혀져 가는 유네스코회관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였다. 유네스코회관은 재원의 확충을 위하여 로비의 일부까지 임대되고 임차자들의 화려한 간판에 묻혀 유네스코회관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퇴색하게 되었다.
새로운 비전과 명소화를 향하여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회관 정체성 확립 및 명소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하여 전문가 팀(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김주경 오우재 건축사무소장, 채정우 서울대 미대 초빙교수)을 구성하고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연구사업을 수행하였다.
연구팀은 사무처의 환경개선 추진단(단장 김승윤 사업본부장)과 함께 과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구체적인 추진 방안들을 정하였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회관은 준공 후 약 50년에 가까운 나이를 먹어 노후되었지만 아직 물리적인 수명이 유효하고 탁월한 입지조건과 함께 건물이 근대 건축 문화유산으로서의 조형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어 여전히 명소화의 가능성이 있음에 견해를 같이 하였다. 따라서 건물을 파격적으로 리모델링하거나 신축을 하는 방향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서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공공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리고 유네스코회관으로서의 인지도를 높이고 상징성을 회복하는 방안들을 도출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도출된 구체적인 방안들은 다음과 같다.
회관 전면과 로비 활용
80년대 중반에 관리 문제로 철거된 유네스코회관 전면 ‘UNESCO’ 간판을 복원하고 현관 입구의 유네스코 간판을 재정비하여 유네스코회관의 인지도를 높이기로 하였다. 이 부분은 이미 시행되었다. 유네스코 간판을 현행 법에 맞게 복원 설치하고 지난 7월18일에 복원 기념식을 가진 바 있다. 그리고 회관 전면 모서리 부분을 활용하여 미디어 파사드를 조성하고 유네스코 홍보 영상 및 미디어 아트 작품을 상영하여 대중들에게 유네스코 활동에 관해 알리고 새로운 예술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
공하고자 한다.
이 미디어 파사드는 그 운영비용과 유네스코 활동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시간대에는 상업용 광고를 표출하게 될 것이다. 이 밖에도 출입자가 많은 1층 로비 부분을 상설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자 한다. 그동안 실험적으로 몇 가지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현재는 이이남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을 전시하고(9월 중순까지) 있다. 로비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시공간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옥상생태공원의 활용
유네스코회관 옥상 생태공원 ‘작은누리’(‘작은 생태계’ 혹은 ‘작은 세계’라는 의미)는 2002년 조성되고 2003년 봄 개장하여 언론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졌고 또 서울의 숨은 명소를 소개하는 책자에 소개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관리 문제로 일부가 철거되고 폐쇄된 상태이다. 금년 봄부터는 도심의 희귀한 생태공간인 ‘작은누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다시 형성되어 철거된 일부 공간을 직원들이 텃밭으로 활용하고 작은누리의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작은누리’를 명소화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제안한 방안들은 접근성과 활용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11층 유네스코홀(회의장) 앞의 테라스로부터 12층 작은누리로 통하는 계단을 신설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11층 테라스 역시 녹색의 공간으로 만들어 12층 ‘작은누리’와 연결되는 오픈스페이스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훼손된 부분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늘이 있는 휴식공간을 추가하고 텃밭과 같이 참여형 녹지를 확보하고자 한다.
또 생태공원과 인접해 있는 작은 실내 공간을 다목적 모임 공간으로 만들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작은누리’의 핵심 생태구역은 특별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정해졌다. 작은누리의 핵심 생태구역은 사실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사업(MAB: Man and Biosphere Programme)의 생물권보전지역(BR: Biosphere
Reserve) 개념을 빌려 핵심지역(보전지역)으로 구획한 곳이다.
이 공간은 인간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는 식으로 관리되어 다른 옥상 정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태적 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식물 외에도 잠자리 나비, 메뚜기 등 많은 곤충이 서식하고 있으며 곤줄박이, 직박구리 등 새들도 찾아오는 공간이다. 리모델링 작업이 완료되면 접근이 쉬우면서도 많은 생태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명소화 방안들의 추진과 아울러 앞으로 유네스코회관이 더욱 지속 가능하게 관리되고 또한 사회적 수명이 연장되어 일반 대중들에게 열려있는 국제적인 문화 공간으로 거듭 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