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와 같은 다자 국제기구에서 회원국들은 일반적으로 기구 내 영향력을 확대하여 의제를 선점하고 각국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한다. 이러한 외교적 목표를 성취하는 주요한 방법 중 하나는 부속 위원회 선거 등을 통해 위원국이 되고 나아가 의장단에 진출하여 이너서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특히, 세계유산 등재와 같이 지정 제도를 다수 운영하는 유네스코에서는 해당 국제협약이나 정부간위원회 규정에 따라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위원국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한 외교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최근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제27차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 총회에서 한위 자연과학분과위원장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변상경 박사가 IOC 의장으로 연임 선출되었고 우리나라의 IOC 집행이사국 진출도 확정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유산위원회(WHC), 정부간수문학위원회(IHP), 불법소유문화재반환촉진위원회(ICPRCP) 등 일련의 선거들이 올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선거가 지역별 쿼터를 두고 있어 지역 그룹들은 무경합 선거에 도달하기 위해 연초부터 협상을 거듭하고 있다.
금년 선거 일정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유네스코 사무총장 선거이다. 현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역사 상 최초로 동구권 출신 사무총장인 동시에 최초 여성 사무총장이다.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총회에서 최종 선출되지만, 58개국으로 구성된 집행이사회에서 과반수(30표) 득표로 사실상 결정된다. 1-4차 비밀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상위 후보 2명만을 대상으로 5차 투표에서 당락을 가른다. 불가리아 외교장관 경력의 보코바는 당시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파룩 호스니 이집트 전 문화장관을 5차 투표에서 31:27로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제192차 집행이사회에서 치러질 이번 사무총장 선거는 다수 후보가 난립했던 2009년과 달리, 현임 보코바 사무총장을 제외하면 후보자가 2명(지부티, 레바논)에 불과하다. 4년 간 뚜렷한 이정표가 될 성과를 내놓지 못한 현 사무총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여론도 있지만, 사실상 1960년 이후 사무총장 연임이 관례로 정착된 데다 재정위기에 따른 제반 사무국 개혁 조치들의 연속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어 이번 선거는 이른바 현직 프리미엄이 주요한 요소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무총장과 함께 유네스코의 주요 권능을 이루는 총회 의장 및 집행이사회 의장은 유네스코 6개 지역그룹이 돌아가면서 수임하는 분명한 패턴이 있다. 금년 제37차 총회 의장은 아태그룹(ASPAC)의 차례로, 하오 핑 유네스코중국위원회 위원장이 이미 내정되어 있다. 집행이사회 의장직의 경우는 4년 후 2017년에 아태그룹에 순번이 돌아온다. 유네스코 내 위상 제고에 따라, 한국은 최근 IOC, IHP, MAB, ICPRCP 등 주요 정부간위원회 의장국 지위를 경험했다. 이제 총회나 집행이사회 의장직 수임, 나아가 한국인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기대해 볼 때가 되었다.
역대 유네스코 사무총장
강상규 주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 주재관
강상규 주재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직원으로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주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