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종묘대제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조선 왕조의 성장과 궤를 함께 해온 신성한 건축물, 종묘가 살아난다. 종묘 대제가 거행되며 기악과 노래, 춤이 함께 하는 종합예술인 종묘제례악도 울려 퍼진다.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조선왕조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조선의 정신이 깃든 건축물, 종묘
서울에는 조선왕조가 남긴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많다. 그중 조선의 정신을 담은 건축물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종묘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례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로, 태조가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가장 먼저 지은 건축물이다. 1395년 경복궁과 함께 완공된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이곳에서 거행되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종묘의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바람에 살랑이는 잎사귀와 새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중앙으로 난 길은 왕의 길이 아니라 신의 길이다. 그 길 옆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종묘의 중심, 정전에 발길이 멈춘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19명의 왕의 신주를 모신 정전은 한국에서 가장 긴 한옥이다. 강이 흐르는 듯 끝없이 펼쳐지는 101m 길이의 지붕이 눈길을 끈다. 단순하고 간결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아래에는 열주가 무한히 반복될 듯 늘어서 있다. 철저하게 치장을 배제하고 단순하게 지어 웅장함이 느껴진다. 처음 조선왕조가 탄생했을 때는 일곱 칸으로 구성됐던 정전은 왕조의 역사와 함께 그 숫자가 늘어나 헌종 때 열아홉 칸이 되었다. 그 옆에는 세종 때 지어진 별묘인 영녕전이 있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가,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 34위가 모셔져 있다.
음악과 노래와 춤이 함께하는 종묘대제
적막한 종묘가 깨어나는 것은 종묘제례 때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왕이 유교 절차에 따라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조선 왕실이 지낸 가장 크고 중요한 제례였기에 종묘대제라고 불린다. 조선시대에 종묘대제는 매년 4차례 행했다. 종묘제례보존회(전주이씨대동종약원)는 1969년에 이를 복원해 매해 5월 첫 번째 일요일과 11월 첫 번째 토요일마다 봉행 의식을 해 오고 있다. 올해의 종묘대제는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2년만에 다시 열려 더 기대가 컸다. 정전이 보수 중이어서 이번 종묘대제는 영녕전에서 진행됐다. 제향이 시작되자 ‘등가’와 ‘헌가’가 번갈아 연주된다. 상월대에 자리해 하늘과 양을 상징하는 악대는 등가라 부르고, 하월대에 배치돼 땅과 음을 상징하는 악대는 헌가라 부른다. 편경, 편종 등 타악기 위주의 주선율에 대금, 아쟁 등 현악기의 선율이 더해지고, 여기에 박, 어, 징, 태평소 등의 소리와 노래가 얹어져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이는 세종대왕이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당시 민간에서 향악을 주로 연주하는데 반해 왕실 제사 때 아악(중국 음악에 기반을 둔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두고 “살아서 향악을 듣다가 죽으면 아악을 연주하니 어찌된 까닭인가”라고 탄식했다 한다. 그러고는 막대기를 짚고 땅을 치는 것으로 박자를 맞춰 새 음악을 완성했고, 이후 세조가 이를 종묘제례악으로 쓸 것을 명했다. 약 2시간 반에 걸쳐 정성스럽게 제가 진행되는 동안 제례악도 계속된다. 연주와 함께 조상들에게 올리는 춤인 ‘일무’는 역대 제왕의 문덕을 기리는 보태평 11곡과 무공을 기리는 정대업 11곡을 바탕으로 구성한 고유한 형태의 춤이다. 오랜 세월 계승되어온 전통이 베어나오는 아름다운 몸짓, 그리고 음악이 장엄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행해지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이다.
종묘 여행자 노트
창경궁 | 종묘에서 가장 가까운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머물기 위해 지었다.
창덕궁 |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조선 5대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경복궁 |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지은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이다.
글, 사진 우지경 여행작가